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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6] 통도사 보타암..
오피니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6] 통도사 보타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9/24 09:56 수정 2021.09.24 09:56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통도사는 사찰 규모나 명성만큼이나 부속 암자가 많다. 통도사 부속 암자들은 대부분 본사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접근성이 제일 좋은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으니 ‘보타암’이 그것이다.

보타암은 통도사의 산내 암자로 통도사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무풍한송로를 지나 일주문을 향해 걷다 보면 일주문 가기 전에 난간 없는 소박한 돌다리를 만나는데,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다. 삼성반월교는 1937년 당시 통도사 주지였던 경봉 스님이 놓은 것으로 마음 심(心) 자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다리 전체의 커다란 반월(半月) 모양은 마음 심(心) 자의 휘어진 획이고, 세 아치는 점획으로 삼성(三星)이다. 달리 일심교(一心橋)라고도 하는데. 깨끗한 한 가지 마음으로 건너라는 뜻이다. 다리에 난간이 없고 폭도 넓지 않아서 마음이 일심이 아니어서 어지러우면 개울에 떨어질 수도 있다.

삼성반월교를 지나 300m쯤 가면 보타암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부속 암자 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건물이며, 또한 통도사 내에서 유일하게 비구니가 주석하며 법등(法燈)을 이어오고 있다.

2.
보타암은 1927년 신오당(信悟堂) 영춘(永春) 스님이 통도사 부도원 뒤편에 있던 동운당(東雲庵)을 경봉 선사 권유로 현 위치로 이전 불사해 보타암(寶陀唵)이라 했다. 이전 당시 경봉 스님이 관음보살상을 시주했는데, 현재는 좌 협시로 봉안돼 있다. 이와는 달리 비구니인 재덕과 호전이 원동의 토굴로부터 옮겨 지은 암자로 정운과 호전이 증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약사전, 요사채 2동 식당, 창고 등이 ㅁ 자형으로 배치했고, 주위로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대웅전은 작은 둔덕 위에 건립했다. 자연석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내부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했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돼 있다. 불상의 뒷면에는 ‘석가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건물 정면에는 일제강점기에 통도사 주지를 지낸 구하 스님이 쓴 ‘보타암’ 현판이 걸려 있다. 약사전은 대웅전 왼쪽에 있는 불전으로, 예전에 칠성전이 있던 자리에 지었는데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맞배집이다. 이 약사전은 칠성전 내부의 탱화가 도난당한 뒤 ‘약사후불탱화’를 새로 봉안하면서 전각 명칭도 약사전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약사여래불과 1986년에 조성한 ‘산신탱’과 ‘독성탱’을 봉안했다. 절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있고 입구에서 법당에 이르는 길에는 걷는 이들을 배려한 박석(薄石)이 놓여 있다.

3-1.
보타암의 ‘보타(補陁)’는 향내가 많이 나는 작은 흰 꽃이라는 뜻으로 보타락(補陀落/普陀落) 또는 보타락가(補陀洛伽/普陀落伽, 산스크리트어: पोतलक potalaka)나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의 준말이다. 보타락가산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상상의 산으로 이곳에는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성자(聖者)가 살고 항상 밝은 빛이 나고 꽃은 만발하며 그 꽃내음이 온 누리에 퍼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연못가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어 중생을 위해 설법하며 설법을 듣기 위해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방문하는데, 이러한 형상을 그려놓은 것이 고려 불화에 나타나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난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존재다.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관음보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부름에 응해 중생을 구원해 줬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53명의 스승을 만났던 선재동자의 구법(求法) 여행이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선재동자가 찾아간 스물여덟 번째 스승이 바로 관음보살이었다. 선재동자가 도착한 보타락가산 서쪽 산골짜기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나무숲이 우거져 있었으며 가지각색 아름다운 꽃으로 찬란하게 장엄돼 있었다. 관음보살은 암석 위에 앉아 여러 보살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선재동자는 보살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가르침을 구했다. ‘수월관음도’는 경전에 나온 이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구법 여행을 담은 수월관음도는 중국 당나라 궁정화가 주방(周坊)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험준한 바위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구도의 수월관음도는 중국뿐만 아니라 고려에서도 그려졌다.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이 서화에 대한 자료를 모아 저술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는 주방의 수월관음도에 표현된 보살의 원광(圓光)과 대나무가 언급돼 있으며, 이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수월관음도는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한 관음 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다.

3-2.
보타락이라는 이름의 지명이 여럿 있으니. 우리나라 낙산사, 중국 푸퉈산(저장성)과 포탈라궁(티베트), 일본 후다라쿠산지가 대표적이다.

낙산사의 ‘낙산’은 보타락가산의 줄임 말이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양양으로 향했다.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아래서 목숨을 건 기도와 정진 끝에 의상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웠다. 지금의 낙산사 홍련암이다. 낙산사 홍련암은 우리나라 대표 관음 성지이다. 중국 푸퉈산은 중국 저장성 저우산 군도의 한 섬에 있는 불교 성지로 티베트의 라싸의 포탈라궁과 더불어 중국에서는 관음시현(觀音示顯)의 땅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된 곳이다. 우타이산(五臺山)ㆍ어메이산(峨眉山)과 더불어 중국 3대 명산(名山)으로, 주화산(九華山)을 넣어서 4대 도량(道場])으로 치기도 한다. 후다라쿠산지 또는 후다라쿠산사(-寺), 후다라쿠산 사는 일본 천태종 사찰로, 와카야마현 히가시무로군 나치카쓰우라정에 있다. ‘후다라쿠’는 관음정토를 의미하는 보타락(補陀落)의 일본어 발음이다.

3-3.
‘보타암’이라는 말은 『석보상절』에 나온다.

“세존이 보타암에 가시어 십일면관 자재경을 말씀하시었다. 보타는 작은 흰 꽃이라 하는 말이니, 이 산에 이 꽃이 많이 있어 향내가 멀리까지 나니, 관자재보살이 계신 땅이다. -『석보상절』 권 제6, 42장 앞쪽~44장 앞쪽-

조선 전기 대학자 최항(崔恒)의 시에 ‘보타락가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속세에서 공경하고 좋아하는 것이 옛 인도의 파나국과 같아 / 절간이 보타락가산과 비슷하네. (俗尙猶波奈 禪居似洛伽) -최항, 「贈日本僧」-

유학자인 최항이 관음 신앙에 바탕을 둔 보타락가산과 같은 불교 용어를 사용한 것이 이채롭다. 사연인즉, 세조가 경기 지방을 순수(巡狩)하고 지평(砥平) 상원사(上院寺)에서 유숙하던 날 밤, 관음보살이 나타나 상서로운 빛이 온 누리에 비치고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만에 흩어졌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해 그 절에 우상(優賞)을 내리고 죄인들을 사면했으며, 정부 관원들은 축배를 올렸다. 훈부(勳府)에서는 관음상을 만들고, 불전(佛殿)을 세웠다. 또, 왕은 그때 장면을 그린 그림을 국내에 두루 반포하게 하고, 최항에게 명해 관련 책을 짓게 했으니 그것이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다.

4.
보타암은 기와에 그려진 그림이 유명하다. 봄가을에 꽃들이 이쁜데 특히 가을이 이쁘다. 보타암 약사전에 서면 멀리 영축산에서 함박등을 지나 채이등과 죽바우등을 거쳐 시살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햇볕 좋은 오후에 보타암 반석에 앉아 가을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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