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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15] 홀로코스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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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15] 홀로코스트 비극은 책에서 시작됐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10/01 09:44 수정 2021.10.01 10:14
히틀러의 비밀 서재/ 티머시 W. 라이백

이기철
시인
1
베를린 아우구스트 베벨 광장 중앙 바닥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책을 불사르는 곳은 인류를 불태워 온 곳’이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이다.

이곳은 나치 독일 시절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났던 장소다. 1933년 나치 추종자들이 훔볼트대학 도서관에 소장돼있던 수만권 책을 끄집어내 불태웠다. 이스라엘 출신 작가 미카 울만 작품이다. 지하 5m 깊이 그 안에 빈 책꽂이를 세워 뒀다. 이 서가(書架)에 들어갈 수 있는 장서가 2만권. 투명한 유리 상판 아래 텅 빈 서가라니. 쿵 하며 가슴이 내려앉을 만하다. 이 광장은 원래 오페라 광장이었는데, 프리드리히 대왕 때 만들었다. 그는 문화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랐지만, 역사 수레바퀴는 그가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굴러가지 않았다.

2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의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치가 작성한 정치사상범 명단에 자신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망명길에 오른다. 체코,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러시아, 스위스 등 유럽 각국으로 무려 15년간 떠돈 삶이었다. 이 시는 1939년 덴마크에서 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란 시 부분이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동을 쓸 것인지, 아니면 처절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시로 쓸 것인지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눈앞 펼쳐진 현실에 음풍농월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고백하며 쓴 시다.

‘히틀러의 비밀 서재’ 책 표지

브레히트가 말하는 엉터리 화가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 한때 화가를 꿈꾼 청년. 실제 그가 그린 평범한 수준인 풍경화도 남아있다. 그는 권력 정점에 도달한 후 잔인한 예술 심판관이 된다. 문화 장관이었던 괴벨스를 앞장세워 기획한 ‘퇴폐미술전’. 공교롭게도 근처에서 같은 시기 열리고 있던 ‘위대한 독일 미술전’. 이곳에는 히틀러가 좋아하던 조각품이 주를 이뤄 전시됐다.

‘공교롭게도’에 이은 아이러니. 퇴폐미술전 전시 작품은 그가 압수해 온 유대인 정신이 깃든 것, 비독일적인 것, 정신병적이고 사악한 것들을 알려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여기에는 바실리 칸단스키, 케테 콜베츠, 마르크 샤갈, 빌헬름 렘브루크 등 112명 작가 작품이 전시됐다. 하지만 위대한 독일 미술전은 썰렁했고, 퇴폐미술전은 하루 2만 명 이상이 인산인해처럼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수제 가죽 소재 셰익스피어 전집. 책등 아래에 히틀러 이니셜이 박혀있다.

3
‘나치의 바이블, 게르마니아’. 서기 98년 로마제국 역사가 타키투스는 여행자 보고와 자료를 모아 게르마니아 지역에 사는 이민족 기원과 관습을 기록했다. 수백년 뒤 게르마니아 필사본이 발견된다. 독일 지식인들은 순혈성, 충성심, 강인함에 대한 설명에 주목,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오독과 조작이 시작된 시점이다. 20세기 나치 독일에서 게르마니아는 나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 책은 인종주의를 만들었고 홀로코스트를 위한 서곡이 됐다.

4
히틀러는 독서광이었다. 그가 소장한 책은 1만6천여권에 달했다. ‘히틀러의 비밀 일기’는 ‘히틀러 알기’ 혹은 ‘히틀러 읽기’로 생각하고 페이지를 열어야 한다. 괴물은 어떻게 탄생 되고 성장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지 단서를 제공한다. 맹목과 자신이 선택한 독서가 가져온 폐해를 여실히 볼 수 있다.

1, 2, 3은 4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책이라는 도구로 아이디어를 각색, 아우슈비츠를 세웠고 기어이 홀로코스트를 완성했다. 그에게 있어 책은 몸과 마음을 더욱 살찌우는 양식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책이라는 이름을 빌려.

기막힌 일은 그가 가진 1만6천여권 책 중 단 열권이 역사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 저자 라이백은 히틀러가 자살한 후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책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책들은 가까이로는 이웃집에 있었고 미군, 소련 병사들 손에까지 쥐어졌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을 만나 책에 대한 진술을 받아냈다. 이 열권을 중심으로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 작품을 등장시킨다. 이 중에는 그를 세뇌(洗腦)시키는 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중대(二中隊)도 한몫했다. 심지어 그는 전쟁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데 책을 이용했다.

퇴폐미술전을 시찰하는 히틀러(1937년)


1에서 간단하게 흘리고 간 이야기에 주목. 전쟁 말기, 그는 흥미롭게도 토머스 칼라일 책,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에 집착했다. 영웅숭배론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 필요성을 역설했던 탓에 칼라일이 써 내려간 영웅 인식을 답습한다. 결과는 프리드리히 대왕도 히틀러도 목적 달성에는 실패한 셈이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고 사건 연속이 이뤄지는 삶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것을 접하든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이름은 존경받고 어떤 이름은 영원히 비난받는다. 히틀러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인 책. 저자는 의회도서관 희귀본 서고, 공공기록보관소, 민간이 보관하고 있던 책들을 찾아 흔들어 깨웠다. 또 장서표, 그가 남긴 연필 자국 하나까지 추적해 시대 종언(終焉)을 기록했다.

책은 함부로 대할 대상이 아니다. 특히 악마를 만나려는 자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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