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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남종석의 문화 산책] 초국적 미디어와 소수자..
오피니언

[남종석의 문화 산책] 초국적 미디어와 소수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11/03 16:16 수정 2021.11.04 13:49
영드 <브리저튼>과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이야기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오늘날 영미의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문화산업에서 흑인 인권, LGBT(성적소수자를 이르는 말. 레즈비언: lesbian과 게이: gay, 양성애자: bisexual, 트랜스젠더: 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딴 것) 주류화, 페미니즘은 어떤 급진주의가 아니라 ‘공기’와 같은 기본 전제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적으로 시대에 뒤처진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오늘날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 씨를 찬양하면 ‘국민의 힘’과 같은 정당에서도 난타당하는 것과 같다.

다르게 보면 미디어 공간 내에서 LGBT나 흑인 주류화, 다문화주의를 옹호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단히 급진적인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오늘날 성적 취향, 형식적인 인종적, 성적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에 맞서는 반동’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1위 기록을 갖고 있던 <브리저튼>(영국 빅토리아조의 섹스-로맨스 드라마)의 남성 주인공은 매력 가득한 흑인 귀족이고, 여성은 전형적인 빅토리아조의 요조숙녀(착하고 마음씨 따뜻하지만, 성적 욕망에 눈뜬)다. 남성은 이지적이고, 결혼을 경멸하며, 외디푸스적인 갈등을 심하게 겪은 이다.

둘 관계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로맨틱 소설의 공통 장치를 그대로 닮아있다. 매력적이지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성과 미인이고 착한 여성이라는 흔해 빠진 설정 말이다. 드라마에서 19세기 후반기 영국 여왕은 능구렁이 같은 ‘흑인 여성’이다.

이와 같은 캐릭터는 물론 19세기 영국 제국주의 아래서 흑인들 지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전통적인 인종주의 드라마에서 재현하는 흑인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런던광역시 주변부에서 생계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다수 노동자계급 흑인들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드라마 <브리저튼>의 여성 주인공은 착하고 미인인 점에서 ‘그렇고 그런 로맨스 소설’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며, 남성 주인공의 외디푸스 증후군을 해소하는 데 능동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일반 로맨스 소설의 여성 캐릭터와 다르다.

더불어 이 여성 주인공의 오누이들은 오늘날 초국적 문화산업에서 ‘돈 되는 캐릭터’는 다 모아놓았다. 주인공의 여동생은 ‘나이 어린 지식인 페미니스트’다. 작은오빠는 빅토리아조의 억압된 문화계에 반항적인 기질을 지닌, 예술을 선호하는 청년이다. 그는 당대 지하세계 데카당스 문화와 어울리며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일탈적인 욕망을 깨닫는 존재다.

큰오빠는 가계를 계승하는 경영자적 태도를 가졌지만, 당대 사교클럽에서 유희의 대상인 오페레타에 출연하는 소프라노 여성을 마음에 두고 있다. 오페레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당대 귀족들의 ‘오락거리’이기도 했기에 귀족 자녀의 상대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여성 주인공이 속한 이 백인 귀족 가문의 아이들은 19세기 영국의 맥락에서 모두 소수자이자 ‘문화적 급진주의자들’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시청하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이들 문화적 급진주의자들이야말로 문화산업이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다. 반면, 21세기에 국제주의자가 되려면 백인우월주의(인종주의)나 이성애에 대한 집착 따위는 시궁창에 버려야 한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귀족 흑인 남성 주인공과 흑인 여왕이라는 장치는 21세에 인종주의적 편견을 극복한 세계도시에 토대를 둔 초국적 문화자본의 ‘밈’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밈이란 문화유전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흑인을 비하하는 어떤 내용도 문화산업은 거부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디어 공간에서 재현하는 이러한 흑인과 영국 사회 현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이는 계급적ㆍ인종적 불평등이 극단화한 후기 자본주의와 ‘LGBT, 흑인 주류화, 다문화주의’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미디어 세계에서 수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영드인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원제 성교육)는 런던 근교 사립 ‘퍼블릭 스쿨’에서의 섹스 에피소드를 다루는 소프 드라마다. 코미디와 포르노그래피가 첨가되니 영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했다. 드라마의 주된 스토리 라인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영국 사회가 가진 청소년 섹스에 대한 편견을 교정하는 내용이다.

남자 주인공은 양부모 모두 백인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간계급 아이다. 여자 주인공은 19세기부터 문학사에서부터 비평이론(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적 내공을 쌓은 똑똑이지만, ‘해체된 백인 노동자계급 가구’의 아이다.

남자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이지리아로부터 이민 와서 중산층 대열에 이르게 된 흑인 가구 아이다. 이 게이 소년은 자기 집에서 13세에 커밍아웃했고, 가족들은 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존중하며, 행여 사회로부터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따뜻한 합리주의자들이다. 아프리카 출신이라고 해서 시대에 뒤처졌다는 편견을 버렸다면 당신은 이 드라마를 시청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학교에서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꼽 만큼도 없는 부자 아이들 셋 모두 남아시아계다. 이 친구들은 섹시하고 부티 나게 입고 다시며 같은 학교 백인 중산층 아이들을 발아래로 본다. 식민지 출신 아이들이 부자이자 밥맛 떨어지는 잘 난 척하는 이들이고, 백인 중산층 아이들은 찌질이들이 포함된 그렇고 그런 아이들이다.(인종적ㆍ제국적 질서의 전복!)

가장 매력적이고 많은 학우로부터 사랑받는 총학생회장은 부모가 레즈비언이고(두 명의 엄마, 한 명은 가부장적인 백인 여성, 한 명은 온정적인 흑인 여성), 자신은 학교의 수영 챔피언으로 마음에 든 모든 이들과 섹스를 즐겁게 하는 흑인 소년이다. 영국 중간계급 사립 고등학교에서 흑인이 학생회장이라니!

시즌 2에 나오는 프랑스에서 유학 온 매력 만점의 남학생은 게이이자 서아시아(아랍계) 출신 자영업자의 조카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끼고 다니면서, 고등학교에서 규율화된 통제와 권위주의를 냉소하는 좌파 똘똘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남친에게 선물하는, 무신론자 아랍계 소년을 영국 드라마에서 볼 것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상상하겠나. 아랍계 학생들은 모두 코란을 숭배하고, 남성 중심적이며 보수적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리기에 좋은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문화산업이 포르노그래피가 포함된 청소년 섹스 에피소드와 유머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마케팅을 위해서는 다문화주의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섹스 파트너 관계는 만나다가도 서로 견해가 다르면 쿨하게 헤어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라도 한 쪽이 그 관계를 그만두고자 하면 이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옛 애인에 대한 스토킹 같은 것은 할 생각도 말라는 경고다. 전반적인 내용은 킨제이보고서 대중서쯤 된다.

이렇게 오늘날 다문화주의, LGBT의 주류화, 인종적 질서의 전복이라는 장치를 활용하면 넷플릭스 1~2위를 달리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 미디어 환경 내에서 게이ㆍ레즈비언ㆍ페미니스트ㆍ흑인 주류화에 대해서 초국적 문화자본이 불편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런 쿨한 태도는 시대에 뒤처진 멍청한 보수주의자, 혐오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백인 중심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날 세계 시민이 갖춰야 할 소양이다.

계급적ㆍ인종적 불평등이 극단화한 후기 자본주의와 ‘LGBT, 흑인 주류화, 다문화주의’는 미디어 공간 내에서 언제나 공존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해 불편을 느낀다면 당신은 아직 ‘문화적 국제주의자’에 미달하니 새로운 감성을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유연하고 문화자본은 시대를 앞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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