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그 선택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치관과 판단이 담겨있다. 그러한 가치 판단들은 자동으로 하나의 습관과 에너지로 변화해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수히 많은 판단(망상)을 거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것은 ‘나’에게 좋은 것, 어떤 것은 ‘나’에게 나쁜 것, 이와 같이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명상 공부의 첫발을 잘 내딛는 것이다.
나(我相, Ego)라는 판단의 색이 칠해진 안경을 벗고 객관적으로 자신과 주위를 그저 바라만 보는 것, 그것이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思量)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고 한 옛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필자가 처음 명상을 배울 때 많은 스승이 일관되게 가르치신 것 중 하나가 ‘생각에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생각에 속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면, 또다시 그 생각에 속아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에는 환희롭고 신비한 체험이 와서 그 체험을 놓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고 번뇌 망상에 발목이 잡혀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 꼬리를 무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 ‘퇴굴심(退屈心)’은 명상 그 자체에 대한 회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이러한 마음의 변덕보다 이 작용에 대한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주와 합일을 하던, 번뇌에 발목이 잡히던, 어떠한 경험이 내게 오더라도 그러한 경험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근본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것이 바로 선ㆍ명상을 공부하는 여러분께 드리는 중요한 당부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참선이나 명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어떤 상황을 대할 때, 순간마다 자동으로 올라오는 시비와 이해에 대해 평가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명상이 인생의 기술이기도 한 중요한 대목이다.
필자가 명상을 지도할 때 자주 던지는 물음 중 하나가 “당신이 겪는 그 현상은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라는 질문이다.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당황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 머릿속이 급격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라는 이중 구속(Double Binding)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그 현상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현상일 뿐입니다”라고 답변을 한다.
예를 들어 명상할 때 어제 본 영화에 생각이 머물러 있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이것은 선을 방해하는 ‘나쁜’ 현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저 ‘영화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자리 잡게 되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수렁에 한 발을 내딛게 된다. 그 판단을 내려놓아야 ‘영화에 대한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훨훨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