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병을 이겨내기 위한 선조들의 의약생활 들여다보기..
오피니언

병을 이겨내기 위한 선조들의 의약생활 들여다보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12/07 16:42 수정 2021.12.07 16:42

서용태
인문연구공동체 로두스 대표
육군3사관학교 인문학처 강사
요즘 들어 부쩍 여기저기 아픈데도 생기고 몸이 예전만 못하단 걸 많이 느낀다. 코로나 펜데믹과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운동 부족이 주요한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만약 조선시대에 살았더라면 몸이 아플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전체 인구의 30~40%가 노비였고, 양반은 고작 5~10% 수준이었으니 확률상 나는 노비나 상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하층민인 나는 과연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점은 의학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일상사 측면에서 ‘의료의 역사’는 민중들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음에도 코로나19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 역사학이 이와 같은 질문들을 깊이 있게 다루려고 시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차에 이문건이 남긴 『묵재일기』를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이문건(1495~1567)은 41세 때인 1535년부터 시작해 73세로 죽기 수개월 전인 1567년까지 일기를 썼다. 일기 대부분은 귀양지에서 쓴 것으로, 승정원 부승지를 지내다 을사사화로 인해 경상도 성주로 유배돼 쓴 17년 8개월 분량 중 11년 11개월 치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묵재일기』는 전체의 약 3분의 1 이상이 질병과 의료 관계 기사이기 때문에 16세기 양반사족, 특히 지방사회 의료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고대 우리나라에서 의학이 형성되기 시작해 조선 전기까지 의약생활에 관한 내용은 사료에 나타난 의학 관련 기록의 양이 워낙에 적고 단편적이다 보니 그 전모를 살피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묵재일기』에는 이문건 자신의 병 앓이부터 무속, 의료인, 의서 편찬, 약의 수급, 국가의 역병과 재앙에 대한 대책 등 비교적 의료 관련 내용이 풍부해 이러한 단면을 통해 당대 의료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에 그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

골수 성리학자이자 당상관 벼슬까지 지낸 사대부 이문건과 그 가족이 점을 자주 보는 장면은 신선하다. 집안 여성들은 병이 들면 맹인 판수나 무당을 불러 굿을 벌이기도 하고, 승려를 찾아 초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문건이 무속을 전적으로 믿거나 의지하지는 않았지만, 가장으로서 천연두와 같은 역병이나 난치병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안 아녀자들이 그들을 찾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특히, 나의 눈길이 쏠린 곳은 노비들과 관계된 기사들이었다. 이문건은 100여명의 노비를 거느린 상당한 재력가로, 귀양살이하면서도 여러 명의 노비를 부리며 살았다. 그는 노비들에게도 자신이 지닌 의학지식과 약물을 베풀기도 했지만, 가족이나 친지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이 책에서는 병과 마주 선 다양한 계층의 환자들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이 비록 남성 중심 신분사회였지만, 그 사회의 타자였던 노비와 여성 환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이 의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음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즉,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노비들도 주인에 의해 최소한 의료 혜택을 받았고, 때로는 경제력이 없는 일반 상민들보다 오히려 의료 혜택을 더 입기도 했다.

이문건은 노비들에게도 여러 가지 처방과 약재를 내줬고, 아끼던 노비가 죽었을 때는 가족을 잃은 것만큼 슬퍼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한 병을 앓아 위독해진 노비는 사정없이 집 밖으로 내쳤다. 『묵재일기』 곳곳에는 노비들에 대한 구타 장면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구타 이유도 상세하게 서술돼 있는데, 밥상에 수저를 늦게 올렸다고 신발로 노비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나, 이문건의 어린 손자가 노비의 세 살배기 아이를 몽둥이로 때리려 해서 부모 노비가 이를 말렸다가 도리어 주인에게 심하게 얻어맞는 장면에서는 조선시대 노비들의 고단한 삶이 엿보인다. 나이 어린 계집종을 강간하고도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강변(强辯)하는, 그것도 모자라 그 계집종을 자신의 조카가 강간하자 간통했다며 계집종을 구박하는 이문건을 보며 겉으로 고귀한 사대부의 이율배반에 분개했다.

『묵재일기』에는 자손들 이름을 짓고, 글을 가르치고,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손자를 훈육하는 모습이나 조카와 종손자뿐 아니라 손녀사위까지 데리고 살며 돌보던 모습 등 단지 의료활동을 살펴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사ㆍ생활사 전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의약 관련 기사 말고도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은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재미라 하겠다. 다만 『묵재일기』는 분량이 방대하고, 축약본조차 출간되지 않아 전공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지난 2년간 일상인 듯 일상 아닌 일상 같은 비일상을 살고 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나아가고 있다지만, 실상은 확진자 급증에 따른 심각한 병상 부족으로 의료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덧 12월이다.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우울하게 새해를 맞이하게 생겼지만, 병을 이겨내기 위한 선조들의 의약생활을 들여다보며,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역병을 견뎌낸 옛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내가 『묵재일기』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새해엔 희망을 가져 보자.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