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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명상생활]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初發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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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명상생활]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初發心)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12/21 10:10 수정 2021.12.21 10:10

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우울하고 당겨올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하다. 지혜로운 수행자만이 영원한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다. 지나간 날에 발목이 잡혀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속아서 현재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상의 시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익숙한 대상이나 상황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잣대로 판단,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옛사람들은 이때를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 옷을 조심하여 입다가도 때가 묻고 구김이 지면 그 주의를 놓아버리는 것과 같다”(원불교 『대종경』 인도품 38장)는 비유로 알려주고 있다.

일상에 매몰돼 초심에 대한 주의를 놓아버리기 쉬운 것이 우리의 삶이다. 불가에서도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곧 처음의 그 마음을 오롯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른 깨침을 얻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초심을 놓지 않는 것은 수행의 중요한 비결이 되는 이유다.

내가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판단이 단단하게 되면 곧바로 그것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차단돼 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자녀에 대해서 부모인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서면 아이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즉각적으로 차단돼 버린다. 특히 ‘내 자녀는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 개념까지 함께 주입된다면 자녀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둘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생길 수도 있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진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나’만큼 교리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며 자신 있게 장담하고 있다면 정신적인 향상이나 진급(進級)은 고사하고 영생의 제도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바로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 영적인 허풍 앞에 ‘나(Ego)’라고 하는 무서운 단어가 마음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초심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유지하는 사람만이 진급하고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위장 내벽 세포는 두 시간 반 정도면 살다가 죽어 새로운 세포에 자리를 내주고 적혈구는 삼 개월을 살고 교체된다고 한다. 체세포는 25~30일 정도 살며 1년 정도면 몸에 있는 대부분의 낡은 세포는 죽어 없어지고 새 세포로 교체된다. 적어도 1년 안에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우리 육체가 아기 때 첫 마음을 잃고 낡은 세포를 고집하며 새로운 세포의 성장을 거부해 변화 주기를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곧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의학적으로 암(癌)이다. 사람의 정신도 이와 같이 고정관념에 찌들어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와 변화에 순응하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경우가 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일 시시(日日時時)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진급하게 된다.

잘 알려진 소설 『삼국지』에는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古事)가 전해지고 있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 중 여몽(呂蒙)이라는 장군은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학문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공부를 권하는 손권의 충고를 받아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얼마 후 손권의 휘하에서 뛰어난 학식과 지혜를 자랑하는 노숙이 여몽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과 달리 그가 매우 박식해져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에 여몽이 “선비는 헤어진 지 삼 일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라고 한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손권의 충고를 받아들여 변화로 진급을 맞이한 여몽처럼 여러분도 초발심으로 괄목상대하시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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