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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2] 무엇을 드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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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2] 무엇을 드실 건지 ‘일단 멈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1/21 09:42 수정 2022.01.21 09:42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글ㆍ그림

이기철
시인
살아가면서 종종 선택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놓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상태가 되면 시쳇말로 ‘멘붕’을 겪기도 한다. 자신이 모르는 답은 도움을 받거나 ‘옳은 쪽’ 일을 하는 이를 만나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 공식만 잘 푼다고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방식, 습관이나 버릇 등을 고치지 않으면 매우 어렵다.

수많은 문제 가운데 먹는 일만 해도 그렇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식품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음식을 고르거나 가려 섭취한다는 일은 민감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시점에 ‘비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관련 제품을 찾는 이도 점차 많아지고 인기도 높다. 이유가 뭘까? 아무거나 먹는 시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거창하게 동물권 보호, 환경 위기, 유기농 등 이런 복잡한 단어를 먼저 꺼내지 않아도 된다. 본능으로 알아차리는 몸이 먼저 움찔거린다.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식이라 해서 평소 즐겨 먹던 음식들에 제동이 걸린다. 이때 지시를 어기고 멈추지 않으면 회복이 더뎌지거나 망가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회복은 원래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말한다. 비건은 채식주의자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단순히 건강 문제나 취향이 아니라 삶을 바꾸려는 노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더 깊숙하게는 나로부터 시작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차별을 뛰어넘는 용기다. 이런 결심은 그간 가져온 가치관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하다.

돌고래쇼를 보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일, 어항 속 금붕어를 즐거움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더 할 말은 없다. 그들이 살아야 할 곳이 어딘지 이런 환경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한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 책 표지

보선 작가가 그리고 쓴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타자(他者) 고통에 아픔을 느끼며 더 많은 존재가 덜 고통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건을 설명하고 있다. 첫 출발은 동물도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는 고백. 또한, 살면서 의심 없이 먹어온 음식들과 이별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결심일 수 있었다는 자백. 이들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 책을 쓴 이유는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슬퍼지더라도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며 살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

오래돼 굳어진 버릇인 타성(惰性)을 버린다는 문제는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경각심을 전하는 일도 만만하지 않고. 만화로 굳이 이 사실을 알리려 한 결심이 독자에게 은근히 부담을 줄 수 있다. 외면하고 싶은, 또는 뭘 이런 일까지 알아야 해? 라는 반발심이 분명 존재하기에 말이다. 맞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이를테면 산란계 부화장에서 태어난 병아리를 보자. 암평아리는 마취도 없이 부리가 잘린다. 수평아리는 죽여서 사료로 쓰인다. 이 문장만 들어도 아찔한데 그러한 장면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보는 이는 가슴이 떨린다. 알 수 없는 죄책감까지 생긴다.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송아지는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아 일부러 빈혈 상태로 만든다. 이렇게 해야 소위 때깔 좋고 식감도 부드럽게 된다는 이유다. 이걸 우리는 맛있다고 즐겨 먹는다. 수없이 많은 동물이 비정한 방법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차라리 외면 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 의도한 공포는 아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자 변화를 바라는 몸부림이다.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목소리다.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는다. 단박에 비건이 돼 달라는 재촉은 더더욱 아니다. 실천 가능한 일이라면 동참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바람이다.

채소, 과일, 해초 따위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비건을 위해 한 걸음씩이라도 동의한다면 관심을 가져달라는 절박한 메시지다.


사실 채식주의자 범주는 꽤 다양하고 넓다.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뿐 아니라 채식을 하지만 달걀을 제외한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락토(lacto), 생선, 달걀, 유제품은 먹는 페스코(pesco), 붉은 살코기는 입에 대지 않는 폴로(pollo), 채식을 지향해도 때에 따라 육류와 생선도 먹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식물 생존을 방해하지 않는 열매, 잎, 곡식 등만 먹는 프루테리안(fruitarian) 등 다양하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동물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쓴 게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채식주의자들만을 위한 참고서가 돼서는 안 된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은 타인에게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나부터 실천이 필요하다.

가수 이효리 씨는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 채식을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수족관 안 물고기가 노니는 평화로움을 바라보다 결국 채식주의를 결심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비거니즘을 버거운 짐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불완전하더라도 완전한 쪽이 멀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실천하는 일, 바로 ‘사랑’만 있으면 된다. 또 하나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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