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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기재부의 고상한 핑계
오피니언

기재부의 고상한 핑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2/09 17:00 수정 2022.02.09 17:00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연초부터 ‘추경’이 적네, 많네, 논란이다. 추경이란 정부의 올해 지출 계획에 없던 지출을 추가로 마련하는 절차다. 지난해 예상보다 너무 많은 세금(총 약 60조원)이 걷혔으니,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정부의 방역정책(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 제한)으로 손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대통령선거를 의식해서인지, 의외로 두 거대 정당과 기획재정부 모두 추경에 합의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기획재정부가 딴지를 걸고 있다.(어쩌면 대통령의 의중일 수도 있다) 한 달여 논의 끝에 지난 2월 7일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39조원 추경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조원 이상은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정부(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 국회는 추경을 편성할 수 없다. 국회는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증액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기획재정부 반대 이유가 너무나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중 금리가 오른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올라 경제에 부담이 되는데, 정부까지 나서서 금리 인상을 부추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일부 보수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금리가 너무 (빨리) 오르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에는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이 정도 국채를 더 발행한다고 금리가 오를까?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너무 난해한 질문이다.

먼저,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금리가 오른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부터 살펴보자. 우선, 국채 가격과 금리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부터 이해하자. 예를 들어, 1년 뒤 만기가 돼 1천원(액면가)을 돌려주는 국채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1년 후 1천원을 돌려주는 국채의 현재 가격은 대개 1천원 이하다. 900원이라 가정하자. 이 국채를 지금 900원에 사서(투자) 1년을 기다리면 1천원을 돌려받아 100원의 이익을 얻는다. 9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의 이익을 얻으니, 수익률로는 약 11.1%(100×(100원÷900원))고, 이것이 금리다. 그런데, 1년 후 똑같이 1천원이 지급되는 채권이라도 시중에서 거래되면서 가격은 오르내린다. 만약, 이 채권 가격이 950원으로 오르면 이익은 50원으로 줄어들고 금리는 약 5.3%(100×(50원÷950원))로 하락한다. 반대로, 같은 채권 가격이 850원으로 하락하면 이익은 150원으로 늘어나고 금리도 약 17.6%(100×(150원÷850원))로 상승한다. 한마디로, 채권 가격이 오르면 금리는 내리고, 채권 가격이 내리면 금리는 오른다.

정부 방역정책으로 손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보상하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하면 금리가 상승한다는 주장의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국채 발행은 국채 공급 증가이니, 그 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한다는 의미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이 현실에서도 사실일까? 백문이 불여일견! 과거에는 어땠는지 우선 살펴보자.

<그림 1> 국채 발행액과 금리(자료: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그림 1>은 2007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만기 10년 국채 발행액과 해당 국채 시장 금리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국채 스프레드란 시장 금리에서 기준금리를 뺀 값이다. 기준금리는 정책적으로 결정되는 외생변수이니, 이 효과를 제거하고 시장 변화만 보기 위해서는 스프레드를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획재정부 설명대로라면, 두 그래프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예: 국채 발행 및 공급 증가 → 국채 가격 하락 → 국채 금리 상승) 실제로 그러했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런 패턴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국채 발행이 많았던 달에 시장 금리가 오히려 하락한 경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참고로, 두 변수의 상관계는 –0.0908로, 두 변수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과거 경험은 국채 발행을 좀 늘려도 금리가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림 2> 기준금리와 다양한 만기의 국채 금리들

이런 증거는 또 있다. <그림 2>는 시중 금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보여준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해할 점은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정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기준금리(하늘색)는 시장이 아니라 정책이 정한다. 첫째, 익일물 콜금리(은행끼리 하루 동안 빌리고 빌려줄 때 적용하는 금리, 주황색)는 거의 언제나 기준금리와 같다. 그래서 하늘색 선과 주황색 선이 거의 겹친다. 단기 금리는 시장이 아니라 정책 변수인 기준금리가 결정한다는 뜻이다.

둘째, 국채 금리는 만기가 길수록 더 높다. 가령, 대개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높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보다는 낮다. 이를 장단기 금리차라 부른다. 그런데, 장단기 금리차는 일정하지 않다. 2018년 중반에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년 만기 국채 금리보다 약 0.5%p 높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8월에 그 차이는 겨우 0.09%p로 축소됐다. 이후 그 차이는 다시 점점 확대돼 2021년 5월에는 최대 1%p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시장의 투자 심리’를 반영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족하다. 가령, 시장 투자자들이 국채보다 주식 투자를 선호하면, 국채 수요가 감소해 그 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오른다.

셋째, 장단기 금리차 등락에도 불구하고, <그림 2>는 모든 금리가 ‘추세적으로’ 기준금리를 따라 변동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지속해서 하락했고, ‘만기와 무관하게 모든 국채 금리’도 따라서 하락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른 말로, 금리의 큰 흐름은, 시장이 아니라, 기준금리를 정하는 ‘정책’이 결정한다. 물론, 기준금리가 하락할 때, 장기 금리는 상승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전체 추세를 결정하진 못한다.

<그림 3> 우리나라 정부채무비율과 국채 금리(%)

이제 국채 발행량과 금리의 관계를 이해할 준비가 됐다. <그림 3>은 국채 발행(정부부채)과 금리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정부채무비율이 지속해서 증가(국채 발행 증가)하는 동안, 금리는 오르긴커녕 오히려 하락했다. 금리가 하락한 이유는 <그림 2>로부터 명확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내렸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차가 존재할 뿐 아니라 등락하기 때문에 장기 금리가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채를 많이 발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투자자들 선호를 반영할 결과일 뿐이다. 가령, 어떤 이유로 국채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면, 국채 수요가 감소해 그 가격이 내리고 금리는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나서면 된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감소해서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하는 국채는 한국은행이 매입하고, 수요가 늘어난 국채는 팔면 된다. 재난에 허덕이는 국민의 물질적 삶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정책 목표라면, 정부와 한국은행이 협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기재부와 일부 보수 언론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보상하려면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하고, 그러면 금리가 올라 경제에 해롭다’고 주장한다. 이 난해하고 그럴듯한 설명은 고상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핑계일 뿐이다. 기재부는 항상 그래왔다. 예의 그 빌어먹을 재정 건전성이라는 미신 대신 들고나온 것이 겨우 ‘고상한 핑계’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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