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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우수(雨水), 그리고 우수(憂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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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 그리고 우수(憂愁)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2/15 10:20 수정 2022.02.15 10:20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우리 독자들께서 정월대보름 즈음에 이 글을 보시고 며칠만 더 있으면 오늘 이야기 소재인 ‘우수(雨水)’다. ‘뜬금없이 웬 빗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수가 24절기 중 가장 낯설고 존재감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께 우수는 앞뒤 절기인 입춘ㆍ경칩과 함께 한 해 농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절기다.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고, 얼음이 녹아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촉촉해져서 초목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기다. 태양이 공전궤도인 황도의 330˚(0˚는 춘분)에 올 때인데, 올해는 양력으로 2월 19일, 절입 시각은 오전 1시 43분이다. 절기에 대해서는 이전 졸고에서도 여러 번 쓴 바가 있다.

옛사람들은 우수 15일간을 5일씩 3후로 나눠 초후(初候)를 수달이 강이 풀려 얼굴을 내민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는 것이 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고 해 달제어(獺祭魚)라 했다. 수달은 물고기를 잡으면 물가에 차례로 늘어놓는 습성이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1급수에서만 사는데, 양산에서는 양산천과 회야강에 아주 소수가 서식하고 있다.

중후(中候)는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봄을 피해 추운 북쪽으로 돌아간다고 해 후안북(候雁北)이라 했다. 이동 거리가 수천Km에 달하는 장대한 여정이다. 세계적으로는 수만Km를 이동하며, 한번 날아올라서 1만여Km를 쉬지 않고 나는 놈도 확인됐다.

말후(末候)는 촉촉해진 땅속 물을 한껏 빨아올려 초목이 싹을 틔우는 초목맹동(草木萌動)이라 했다. 이즈음이면 우리 양산의 원동 배내골에서는 고로쇠 축제가 열리고, 통도사 영각 앞 홍매화 자장매(慈藏梅)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우수와 관련한 속담으로는 ‘우수 경칩이 지나면 얼어 죽을 내 아들놈이 없다’, ‘우수 뒤의 얼음같이’,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물도 풀린다’ 등이 있다. 우수가 지나면 제아무리 춥던 겨울 날씨도 누그러지고 강을 덮은 얼음과 산 위 눈도 서서히 녹아내려서 없어진다는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경칩까지 기다리지 못한 성질 급한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때부터 내리는 비는 언 땅을 풀어주는 봄비요, 부는 바람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마파람이 된다.

이제 지금까지 언급한 ‘우수’와 발음이 같은 다른 ‘우수’를 가지고 말놀이를 해보자. 봄이야 때가 되면 찾아오겠지만, 우리네 가슴속은 남북으로, 동서로, 좌우로, 빈부로, 세대로, 젠더로 찢어지고 얼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되 전혀 봄 같지가 않다. 3주 남은 대선판 이야기다. 우수(憂愁, 근심과 걱정)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대동강물을 4천냥에 팔아먹은 희대의 사(詐) 선생 봉이 김선달. 우리 대선판에도 김선달이 많다. 이들은 이런 판에 오래 굴러서 눈치, 허언, 사과, 가짜 뉴스, 말 바꾸기, 편 가르기에다 무슨 기획술과 변신술에도 능통해서 공약(空約)을 팔아 표를 사는데 선수들이다. 이번 판은 최선은커녕 그저 최악만 피하면 본전이다. 나라님 이름도 모르고 살고 싶지만, 우수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핵에, 코로나에, 대선에, 그리고 유난히 잦은 재해로 시절이 하 수상하니 우리네 삶은 팍팍하고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역병이야 시세를 탄다고 했으니 때가 되면 물러간다 치고, 이런 상황이 3달 뒤 지방선거,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니 우수가 오래가지 않을 수 없다.

‘따지기때’라는 말이 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흙이 막 풀리려고 하는 이른 봄, 바로 지금 같은 때를 말한다. 천지가 다 풀리는데 내 속만 빗장이 질려 안 풀리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혹여 우수를 시새우는 꽃샘추위에 오던 봄이 멀리 가버릴 것만 같은 우수가 기우이기를 바란다.

우수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번 우수(雨水)에는 우수(憂愁)를 씻어줄 봄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 서도민요 <수심가(愁心歌)>에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리더니 정든 임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라는 대목이 있다. 내 속의 빗장을 풀어놓고 우수에 대동강 풀리듯 임께서 요 내 속 우수를 풀어주기를 하릴없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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