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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4] ‘이게 뭔 개소리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2/18 11:00 수정 2022.02.18 11:00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이기철
시인
종종 ‘이게 뭔 개소리야’라는 말을 하거나 듣게 된다. 허튼소리라는 의미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 먼저 ‘개’에 대해 언급하는 게 옳다. 흔히, 반려견이라고 하는 동물인 ‘댕댕이’를 의심한다. 틀린 생각이다. ‘헛된’, ‘쓸데없는’,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접두사다. 멍멍이나 dog가 아님을 밝혀둔다.

또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이란 의미도 있다. ‘개꿈’은 ‘헛된’, ‘쓸데없는’ 꿈이고, ‘개잡놈’도 ‘정도가 심한’ 잡놈이란 뜻이다. 하지만 접두사 ‘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돼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론은 비속어라고 말해도 된다.

도덕 철학자라 불리는 해리 G. 프랭크퍼트 역작, ‘개소리에 대하여’는 읽는 이 시각에 따라 불편할 수도, 통쾌할 수도 있다. 한국어 번역서 제목은 자극을 더 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원제목이 ‘on bullshit’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말, 즉 허튼소리라는 의미다.

소논문(Research Essay)에 해당하는 짧은 글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준다.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대화’에서처럼 옳고 그름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나눠진 진영(陣營)이 서로 혼돈상태가 되고 끝내 자아가 뒤섞여버리는 점을 강조한다. 한 편 철학 콩트를 읽은 느낌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가 얼마나 언어 타락 현상에 노출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이에 관한 분석을 하고 있다. 개소리 현상이 가진 본질, 특유 본성을 따져가면서 이것이 왜 위험한 사회 문제인지를 밝혀낸다. 협잡, 거짓말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살펴보면서 말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책 표지.

저자 분석에 따르면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어 최소한이라도 ‘진리’라고 하는 단어에 존중심을 갖고 있다. 개소리는 자기 말이 진리이든 거짓이든 개의치 않는다. 진리의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다. 거짓말은 지어내려면 생각보다 치밀하고 엄격한 계산이 깔려있지만, 개소리는 함부로 내뱉으니 더 위험하다. 거짓말이 실패하면 수치스럽지만, 개소리하다가 비난받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덤벼드냐’며 피할 수 있다. 따라서 개소리하다가 실패해도 무책임한 일이므로 진리를 조롱하기 수월하다. 책임지지 않는 짖어댐이 바로 개소리다.

‘사람이 미래고 자산’이라고 광고하는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내치는 데 선수다. 이만하면 ‘개소리 예술가’라 말해도 된다. 이런 헛소리 대잔치는 종종 정치에서 프레임론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언어가 가진 진리값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가진 숨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언어 조작을 일삼을 뿐이다.

그 유명한 아멜리 노통브가 한 말을 좀 빌려 오겠다. ‘적의 화장법’이라는 책인데 ‘화장빨’이라 해야 더 어울린다.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구절이 있다. 자신 생각 속에만 푹 빠져있는 사람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 상태는 황당함, 역겨움, 섬뜩함, 충격으로 발전한다. 가볍게 허튼소리라 말하기보다 개소리가 주는 충격을 아주 잘 표현했다.

이 책을 번역한 작가 이윤 씨는 저자와 친밀한 교류가 있는 분이다. 2015년 그가 모 대학교 논술 지문에서 이 책 일부를 발췌해 실으면서 ‘빈말’로 번역했다고 한다. 철학 명저를 소개한 책, ‘짧고 깊은 철학 50’(흐름출판, 2014)에서는 ‘헛소리’라고 옮겨썼다. 아무래도 원제목과는 뉘앙스가 다르다고 느껴 저자가 숨긴 의도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개소리’라 번역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는 뒷얘기.

우리 속담에 ‘듣기 좋은 꽃노래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야장천(晝夜長川) 헛소리를 넘어 거짓말을 넘어 개소리를 남발하는 세태라 꼴불견이다.

 

참고할 만한 책들. [이기철 시인/사진 제공]

덧붙여 함께 읽으면 도움 될 만한 책 몇 권을 더 얹어둔다.

*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 제임스 볼,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 최은창, 가짜 뉴스의 고고학
*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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