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5] ‘시인을 살리..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5] ‘시인을 살리는 평론을 꾸준히…’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3/04 11:09 수정 2022.03.04 11:14
생태 시학의 변주/ 석연경

이기철
시인
상허(尙虛)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無書錄)’을 매우 아낀다. ‘시는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고 했다.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빼어난지 잘 표현한 말이다.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란 뜻인데 이 책이 가진 미덕은 어느 대목을 먼저 읽어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그 가운데 ‘평론가’라는 제목이 붙은 글을 읽노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웃음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근대 대표 출판사이자 서점이었던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1941년 발행됐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1930년대 잡지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은 터라 ‘비평’ 문제는 당시에도 꽤 시끄러웠던 게 틀림없다. (필자는 1993년 범우사 출간, 문고본을 가지고 있다)

그는 평론이란 작가와 평론가 사이에서 개성과 개성이 부딪히는 충돌이라고 먼저 운을 뗀다. 그러고서는 인격 문제가 아닌 한 맞서 가는 사이로서 이는 자연스러운 장면이라고 말한다.

평가는 정당한 가격을 책정하는 가늠이 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는 견해다. 다만, 평론가가 지녀야 할 자세는 이론이나 방법론에 너무 의존하지 말 것, 평론가도 창작 경험자이면 좋겠다는 의견, 개념보다는 감성에 천재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랑의 미메시스’라는 평론집을 낸 바 있는 정훈 평론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평론가를 ‘말을 빚는 사람들을 보고 듣고 그 말의 반향을 나타내는 이’라고 소개한다. 즉 평론이란 ‘말에 대한 오해 혹은 작가에 대한 편견을 불태워 버리고 말이 제공하는 무궁하면서도 신비로운 영역을 다시 한번 눈을 씻어 바라보는 마음의 결과’라고 한다.

또 작품을 읽는 일은 ‘작가가 짜놓은 세계와 언어 공간에 관여하는 일’이어서 즐거운 춤사위지만 칼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백번이라도 공감하고 동의하는 반가운 해석이다.

시평집, ‘생태 시학의 변주’ 책 표지.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독자들이 진 빠지도록 한 이유가 있다. 이미 세 권 시집을 낸 바 있고 시인으로서 역량이나 위치도 튼튼한 석연경 작가 첫 평론집, 정확하게는 시평집, ‘생태 시학의 변주’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작가는 왜 다른 장르는 고사하고 시에 관한 평론집을 발간하게 된 것일까? 하물며 ‘생태 시학’일까? 그 궁금증은 작가가 딛고 선 작품 세계에서 연유를 먼저 찾는 게 빠르다. 최근에 낸 시집, ‘푸른 벽을 세우다’를 비롯,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등에서 이미 ‘생태’(生態)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고 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이 시평집은 그 연장선에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시인들 작품은 모두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머리말에서 밝힌 ‘시인은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을 탐구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라며 ‘시는 우주 모든 존재에 특별한 시적 관심과 관찰의 촉각을 세워 사랑하고 그 결과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고 밝혀뒀다.

그러니 시평집이 가진 궁극적 목적은 ‘생태 의식이 나타나 있는 시는 다름 아닌 이 세계를 비생태적으로 만들어 온 인간에게 경각심을 포함, 시에 나타난 생태 의식의 다양한 변주를 깨닫는 데 있다’고 못 박는다.

그간 낸 세 권 시집.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푸른 벽을 세우다’.

총 4부로 구성된 시평집은 1부에서는 생태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유도하는 시를 소개한다. 2부는 삶과 죽음도 생태 순환에서 하나임을 인식, 더불어 삶을 보여주는 시에 주목한다. 3부는 엉망이 된 생태에 대한 바른 인식이 드러난 시를, 4부는 월북 작가를 살펴보면서 남북 정치 생태와 분단이라는 한국 문단 생태 환경을 들여다봤다.

글 맺음은 광주전남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로 등단한 장진기, 송태웅, 김황흠, 양기창, 유종 등 다섯 시인 작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비판 의식과 생태 미래에 대해.

시평집, ‘생태 시학의 변주’는 이태준, 정훈 두 선생이 밝히 평론이라는 이렇다는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이 주목하는 세계에 동참한다. 건드릴 일은 건드리지만, 비평(批評)이지 비난(非難)이 아니다. 따뜻한 동행이라고 해두자.

최근 SNS에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와 시인을 살리는 평론을 할 것이다’라고 남긴 결심에서 그가 걸어갈 길이 보인다.

작가는 참 부지런하다.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를 오랫동안 책임지고 맡아 꾸려가고 있으며 인문학 기행, SNS에 ‘시인의 정원’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어도 가르치면서. 송수권 시문학상 젊은 시인상을 받은 바 있다.

 

석연경 작가.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