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9]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
오피니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9]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3/22 10:17 수정 2022.03.22 10:17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조선시대에 성행한 감로탱은 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재의식을 불교 교리에 맞춰 도상화한 불교 회화다. 무당굿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으며, 고전 연희와도 관련이 있다. 주로 임병양란 이후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 아마도 전쟁이 원혼을 많이 낳은 것과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이끄는 천도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감로탱은 화면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삼단(三壇) 구조로, 화면 하단 장면에 우리나라 풍속적 요소를 그리는 등 한국만의 독특한 불화다. 감로탱 상단은 칠여래를 비롯한 불ㆍ보살이 있는 천상세계고, 중단은 죽은 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승려들이 재단(齋壇)을 차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의례 장면을 연출하는 데 핵심은 아귀다. 하단은 지옥세계에 빠진 육도중생의 고통받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특히, 하단에는 감로탱이 그려진 당시 인간들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감로탱은 1589년에 그려진 약선사(藥仙寺) 감로탱이 가장 이른 예이며, 17~18세기에 가장 유행해 현재 50여점이 전한다. 한국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는 하단부 장면을 주제별로 살펴보면, 환란을 당하는 장면, 민간 생활, 궁궐과 관아 장면, 승려 모습, 전쟁과 격투 장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제별로 장면을 나누면 모두 80여 장면이 나타나는데, 하나의 감로탱에는 이러한 주제 중 일부를 선택해 조합하는 경향을 보인다. 감로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ㆍ중ㆍ하단의 정연한 삼단 구성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하고 다 똑같은 그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하나하나의 감로탱을 면밀히 살펴보고 뜯어보면, 의외로 완전히 일치하는 도상(圖像)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각각 다른 별개의 독특한 그림임을 알게 된다.

2.
불교에서 유래한 감로탱은 특히 무속, 그중에서도 무당굿과 깊은 관련이 있다. 원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것은 한국 무속의 오래된 전통이다. 전국적으로 관련 의례들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한편, 원혼 위무는 불교 수륙재의 주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조선시대 국가 제사였던 여제의 주된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무당굿과 수륙재, 감로탱, 여제에 나오는 원혼의 유사성을 검토하고, 무당굿에 나타난 원혼 형상화 방식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무당굿에 나타난 원혼 위무의 보편성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무당굿, 수륙재, 감로탱화, 여제는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인데도 전체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것으로 본다면 원혼 위무의 전통은 특정 종교나 신앙이 아닌, 동양 종교 전통이 지닌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이 다르므로 대상화하는 고혼들의 종류가 같지 않다. 여제의 경우 원혼 범주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다. 무당굿과 수륙재, 감로탱화는 일치하는 항목이 많은 편인데, 특히 여제에 없는 ‘일상ㆍ생업’의 원혼들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리고 수륙재, 감로탱화에 왕이나 문무관료 등이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자료라는 점과 관련이 있고, 귀천ㆍ빈부를 망라한 무차평등회를 지향하는 수륙재 이념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비교 대상에 따라 원혼의 형상화와 그 위무 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수륙재에서는 무차평등회의 고혼으로 소청(召請)되며, 감로탱화에서는 구체적인 행색이 회화적으로 묘사되며, 여제에서는 통치자의 구휼 대상으로 호명된다. 무당굿은 이름 나열식과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 있는데, 특히 후자가 특징적이다. 무당굿에서 원혼들은 각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당이 재연한 연극 속에서 잡귀ㆍ잡신들은 스스로 불우한 처지를 말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무당굿에서는 원혼들의 처지를 연극적으로 재현하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무당굿에 나타난 원혼 위무 방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통도사 사명암에 감로탱화가 있다. 2002년 8월 14일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작품으로 불화가 본지 가로 137.0㎝, 세로 120.6㎝, 화면 가로 130.2㎝, 세로 112cm이다.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있다.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화는 면 바탕에 채색했는데, 폭을 상하로 엮어 이은 흔적이 있다. 화면 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상단부와 하단부에 얼룩과 바탕천 박락이 부분적으로 보인다. 화면은 크게 상하 2단으로 구성돼 있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칠여래상(七如來像)이 연꽃 위에 서 있고, 그 아래에 향로ㆍ촛대ㆍ꽃ㆍ과자가 차려진 제단이 설치돼 있다. 칠여래상 우측에는 지장ㆍ관음을 비롯한 보살상 3구가 연좌 위에 서 있고, 구름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보살상 아래쪽에는 성곽을 배경으로 왕과 군중의 행차 장면이 묘사돼 있다. 칠여래상 좌측에는 인로왕보살상(引路王菩薩像)이 있다. 인로왕보살 아래쪽에는 의식승의 모습이 표현돼 있다. 그리고 화면 하단 중앙에는 구름에 둘러싸인 거대한 아귀 1구를 중심으로 지옥 장면과 사당패의 줄타기 장면, 싸움ㆍ전쟁 등 장면이 묘사돼 있다.

칠여래상의 피부는 황토색으로 칠했고, 붉은 선으로 윤곽을 처리했다. 머리 부분은 먹을 바른 뒤 녹청색으로 윤곽선을 두텁게 처리했다. 눈썹과 수염은 녹색 안료를 사용해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묽은 먹으로 한 번 더 그렸다. 법의(法衣)는 붉은색을 바르고 녹색 군의(裙衣)를 착용했고, 안감은 군청색으로 표현했다. 아귀는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은 반가좌 자세로 두 손으로 음식을 움켜쥐고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음식을 먹고 있다. 피부는 붉은색과 흰색을 섞은 안료를 펴 바르고 붉은색으로 윤곽을 긋고 흰색으로 피부를 강조해 표현했다. 머리ㆍ눈썹ㆍ수염은 녹청색 안료를 두텁게 발라 표현했다. 입술은 붉은색이며, 눈은 짙은 먹선으로 눈꺼풀과 눈머리, 눈꼬리 부분을 강조해 표현했다.

화면 가장 아래쪽 산수 표현을 보면 산은 녹청색 안료를 두텁게 바르고, 윤곽선은 먹으로 처리했고, 나뭇가지는 갈색, 나뭇잎은 녹색으로 채색했다. 화면 하단 향우측에 붉은색 바탕에 먹선으로 테두리를 이중으로 둘러 화기란(畵記欄)을 만들고, 그 안에 묵서명을 적어놓았다. 화기란를 통해 이 감로탱이 금어 환월, 상림, 성환 등이 참여해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 세계 다양한 모습을 통해 당시 풍속을 살펴볼 수 있고, 지옥 장면을 실감 나게 표현함으로써 중생에게 교훈을 주고자 한 제작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채색에서의 특징은 원색에 가까운 색을 남발했고, 특히 지나치게 원색적인 군청색을 사용해 불화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은 조선시대 불교회화사 연구의 중요한 학술 자료이며, 이 시기 무속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