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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슬기로운 명상생활] 마음공부의 네 단계..
오피니언

[슬기로운 명상생활] 마음공부의 네 단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3/29 09:59 수정 2022.03.29 09:59

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그것이 학습을 통해 얻는 지식이든, 명상을 통해 얻는 지혜이든 ‘마음공부의 네 단계’라고 부르기로 하자.

첫 번째 단계는 ‘무의식적(無意識的) 무지(無知)’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 구분이 전혀 없는 백지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필요를 발견하지 못하니 별로 아쉬울 것도 없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뱃속 편하고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원초적 무지상태는 어린아이가 장난감인 줄 알고 날카로운 송곳을 만지려고 달려드는 것과 같은 경우다.

두 번째 단계는 ‘의식적(意識的) 무지’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겨우 아는 상태다. 『논어』에는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했다. 이를 자신의 무지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무수한 과제가 생겨나기 때문에 이 단계가 되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지 못하면 도전은 고사하고 그냥 주저앉아 현실에 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인류 대부분이 이 단계를 못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의식적 지식(知識)’다. 무지의 껍질이 벗겨지고 드디어 앎(知)이 발현하는 단계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알아차림과 마음 챙김을 놓치게 되면, 지식(지혜)은 곧장 퇴보하게 된다. 이때는 의지력을 끌어올려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이끌고 가야 한다. 이 단계에서 정진(精進)은 필수가 된다. 내 마음 안에서 법(法)과 마(魔), 천사와 악마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살을 빼고자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야식을 끊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며칠 또는 몇 달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의식적 단계에서 무의식에 자리 잡은 끈덕지고 지속적인 습관과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 어렵다. 일반적인 앎과 지혜가 이 단계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단계가 ‘무의식적 지식’다. 이 단계는 능수능란함이 극치에 도달한 상태다. 애써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단계다. 도가의 ‘무위지치(無爲之治)’ 즉 함이 없이 저절로 다스려지는(그것이 마음이든, 조직이든) 경지이며, 유가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로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우주와 인간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은 경지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따로 무슨 인위적인 노력을 요구하지도 않아도 된다. 자신의 무의식에서 자리 잡은 영감이 풍부하게 발달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무지(無知)와 무욕(無欲)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행복감이 충분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따로 구하지 않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명상하는 수행자나, 학습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학자(학생)이거나, 부(富)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누구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의 의식 수준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는가? 바로 이것이 수행자의 화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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