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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7] 내가 낸 길을..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7] 내가 낸 길을 간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4/01 10:24 수정 2022.04.01 10:24
도깨비야, 돌려줘!/ 장미강

이기철
시인
무언가를 ‘위해서’라는 결심을 하게 되면 용기가 생긴다. 당장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다주는 일은 아니지만. 시작은 고되고 아득하며 쉬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실체는 아득하고 결실도 요원하다. 성공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과정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 이름이 무엇이라도 실행시킨다는 결심을 하고 뛰어들면 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는가.

유명한 만화영화 라푼젤. 꿈과 사랑을 위해서 거친 현실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을 보면서 마음이 따라가고 위기에 공감한다. 이 프로세스는 비단 자신에게만 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주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화에는 유명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여러 곡이 들어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 ‘When will my life begin?’. 외부 세상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라푼젤이 언제쯤 세상으로 나가 내 인생을 살게 될까를 질문한다.

여기 도전하는 애니메이션 작가, 장미강 씨가 있다. 소위 ‘이대녀’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모전에 수시로 출품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다부지고 단단한 모습에서 미래가 보인다. 그를 증명하는 작품, 그녀가 펴낸 동화책. ‘도깨비야, 돌려줘!’. 이 책은 출판된 적 없다. 스스로 자신을 알리는 포트폴리오 역할을 한다. 기회를 잡기 위한 안간힘이다. 외면하기에는 매우 훌륭한 그림과 내용으로 채워뒀다. 이대로 묻히고 만다면 아까운 손실이다.

‘도깨비야, 돌려줘!’ 동화책 표지.

동화 내용은 성장에 관해서다. 어릴 적 이야기가 어른이 된 후에도 끊어지지 않고 아주 질긴 실타래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주인공 하윤이는 어느 날 물건을 잃어버린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때 엄마가 해준 말을 기억해 낸다. 물건을 찾다가 안 나오면 도깨비에게 부탁하라는. 도깨비는 뭐든 숨기기를 좋아한다고. 개구쟁이 장난꾸러기이지만 심성은 착하다. 하지만 사라진 물건은 그도 모른다. 행방불명. 책임감을 느낀 도깨비는 이제 동분서주. 먼저 뭐든지 찾아준다는 거인인 왕도깨비. 잃어버린 물건은 유리공. 주인공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게다가 생일선물이었다. 그가 가르쳐준 대로 길을 나선다. 아뿔싸 늪이다. 포기할 수 없다. 비슷한 물건을 찾았지만, 아니다. 속였다고 원망한다. 늪에서 만난 도깨비가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돌멩이를 흔들어 봐’. 그랬더니 요술 방망이로 변한다. 이걸 휘두르면 찾던 물건이 나타난다는 말을 남긴 채 헤어진다. 마침내 나타난 유리공. 여기서 시공간 이동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관심조차 나타내지 않는다. ‘자기 일’에만 열중인 회사원이 돼버렸다. 어느 날 문득 책상 한구석에 올려둔 물건에 눈길을 주는 주인공 하윤 씨. 유년은 그렇게 따라왔고 도깨비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도깨비야, 돌려줘!’ 동화책 속 그림.

이 동화가 가진 미덕은 그저 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단을 위로해주는 작은 행복. 남들은 보잘것없다고 버리는 무엇에 대한, 그 무엇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동행에 관해 말한다. 밀고 나가는 힘이 보이는 스토리가 인상 깊다. 군더더기 없는 장면들은 이야기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내딛는 청춘에게 덕담 한마디는 부담이 될까? 힘이 될까? 섣부른 격려가 오히려 자신감 대신 자만감을 먼저 챙기지는 않을까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도깨비야, 돌려줘!’ 동화책 속 그림.

최근 초대전을 마친 장재훈 작가는 미강 씨 아버지다. ‘여행’, ‘별 이야기’, ‘곤충들의 탐험’ 등을 주제로 그린 작품들은 간결하면서도 전하는 메시지가 선명해 좋았다. 그 자리에 ‘꼽사리전’이라는 제목으로 갤러리 뒤편에 몇 점 참여한 그녀 작품을 보았다. 겸손해야만 하는, 그에 걸맞은 얌전함이 있다. 하지만 축하받을 일은 아직 멀었고 축배(祝杯) 들기에도 이르다. 남들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길은 다르다. 다만 간섭이 아닌 따뜻한 시선이라도 고맙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동화를 그리되 현실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꿈은 꾸는 데서 멈추면 그야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헌신,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꿈은 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루지 못하면 물거품이다.

길은 만들기도 하고 이미 낸 길을 따라가기도 한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모험 혹은 도전이라고 한다. 작가 스스로 유리공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길이 험할지라도. 기왕이면 자신이 직접 길을 만들어 걸어가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필자 뒤에 서 있는 이가 장미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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