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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너무나 정치적인 ‘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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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치적인 ‘금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4/08 15:55 수정 2022.04.08 16:41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전 세계가 극심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한다. 우선, 미국은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7.9%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거의 0% 수준으로 하락한 뒤, 2021년 3월 4.2%로 상승하더니 점점 상승 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 물가상승률 또한 미국과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유로존 전체 평균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말 이미 5%에 근접했고, 독일과 스페인의 올 3월 물가상승률은 각각 7.3%와 9.8%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또한 심상치 않다. 2021년 초 목표치인 2%를 넘기더니 점점 상승해, 지난해 말 3% 이상을 기록했다. 급기야 올 3월 물가상승률은 4.1%를 기록했다. 2011년 8월의 4.7% 이후 최고치다.


그럼 최근 물가는 왜 올랐을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물가상승 원인을 알아야 그 대응책에 관해서도 제대로 토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금의 물가상승은 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위 ‘공급망 붕괴’에서 기인한다. 공급망 붕괴란 세계적 차원의 무역과 물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가령, 방역을 위해 생산 기지나 항구 등 물류체계 일부를 폐쇄하면서, 공급에 애로가 생긴 경우다. 이는 주로 지난해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광물 자원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실제로, 원자재 가격과 소비자물가지수는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상승하고 있다.

공급망 붕괴는 너무나 분명해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원자재 가격은 왜 급등했을까? 경기가 과열되고, 갑자기 원자재 수요가 많이 증가해서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을 시작한 2021년 초는 아직 코로나19로 경제가 크게 위축돼 있을 때였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자본의 원자재에 대한 투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원유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은 코로나19 발발 직후 급락했다. 하지만, 글로벌 투기 금융자본은 경기가 회복하면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원자재 사재기에 나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여파로 아직 경제가 침체에 빠졌던 2009년 2분기부터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이러한 원자재 투기를 강화했을 뿐이다. 원자재 주요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고,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자, 원자재 가격이 더 상승하리란 기대가 투기를 더욱 부추겼던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부동산 가격 상승도 투기 결과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 급등의 주요 요인이 투기와 공급측 요인이란 점이 중요하다. 경기가 너무 좋아 일반적 수요가 과잉이란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서민의 삶은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더욱 팍팍해졌다. 그런데도 물가는 상승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고 한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그것이다. 물가 관리 책임이 오로지 한국은행에만 지워져 있고,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이외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를 인상하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하고, 경기를 압박한다.

서민의 팍팍해진 삶을 개선하기 위해 경기를 부양해도 모자랄 판에, 왜 긴축정책을 취해야 할까? 신자유주의 경제 이념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세 가지 원리로 운영된다. 첫째, 2% 이상 물가상승은 용인할 수 없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왜 물가상승률 2%가 목표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한 자릿수 물가상승률 정도는 경제성장에 오히려 유리하다는 이론과 증거도 많은데 말이다.

둘째, 물가상승 원인은 항상 통화량 증발이라는 믿음이다. 이 신념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과도하면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줄이려고 한다. 통화량을 줄이는 방법이 금리 인상이다. 금리를 높인다고 통화량이 감소하는지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이런 관점을 고수하면, 물가상승 원인을 따지지도 않고, 투기 자본 횡포 또한 단지 저금리 현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셋째, 물가를 통제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면 안 된다는, 일종의 최소 정부론이다. 정부는 물가상승에 대응해 다양하고 직접적인 정책을 펼 수 있다. 가령, 유가 인상에 대응해 유류세를 인하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또한, 원자재 투기 등 사재기가 원인이라면 행정력을 통해 직접 단속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금리 인상보다 훨씬 효과적인 물가 억제 수단이지만, 신자유주 경제 체제에서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에는 한 가지 더 강력한 믿음이 작동한다.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아야 한다는 열패감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는 더 신속하고 충분하게 인상해야 한다는 굴종적 자세가 그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론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 일일이 반박하는 일은 소모적이다. 다만, 그 결과는 철저히 ‘정치적’이란 점만 지적하면 충분하다. 이것이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신념에 따르면 저물가를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 결과는 이중으로 ‘부자’에게만 유리하다. 첫째, 저물가는 금융자산(채권) 가치를 지켜준다. 물가상승이란 화폐가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상승률 2% 목표제는 부자들 자산가치를 최대한 지켜준다. 둘째, 고금리는 채권자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사재기(투기)를 일삼는 금융자본의 행태에도 관대하다. 반대로, 빚을 져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부담을 지운다. 한 마디로, 물가상승률 2% 목표제는 부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이다.

더 큰 틀에서 보면, 물가를 인질로 금리에만 목메는 거시경제 운영 원리는 경기변동을 확대한다. 당장,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했을 때,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며 금리만 내렸다. 결과는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으로 나타났다. 진정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서민 삶을 보호하겠다면, 재난지원금 지원 등 방식으로 정부가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최소한으로만 그랬다. 금리를 내려 물가를 올려놓고 이제 와서 다시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면, 없는 사람들만 죽어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빚더미에 깔린 사람들, 집값이 더 오른다는 언론의 협박(신조어 ‘벼락거지’를 퍼뜨린 장본인이 언론이다)에 속아 큰 빚을 지고 집을 산 2030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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