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10] 개대가리고개 이야기..
오피니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10] 개대가리고개 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4/21 17:13 수정 2022.04.21 17:13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개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그 역사는 1만8천년 전 중간 석기시대, 즉 빙하시대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는 옛날부터 번견(番犬, 집이나 문을 지키는 개)으로 사육해 왔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히 규방(閨房)의 번견으로 사육됐다. 투견의 역사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이 시대에는 군용견으로서 전쟁터에서 쓰이기도 했다. 유럽 민속에서는 개가 유령ㆍ악령ㆍ신과 죽음을 고하는 천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개와 인간의 관계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야생 개를 식용으로 했다고 생각되지만, 적극적으로 가축화한 것은 외적 내습 통보와 수렵 등 용도를 목적으로 했다.

2.
개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전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개가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은혜를 갚은 것을 주제로 한 설화인 ‘은혜 갚은 개 이야기’가 많다. 일명 「의견설화」는 전국 각 지역에 다양한 유형으로 구전되는 설화 가운데 하나인데, 고려시대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에도 실렸고, 현행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은혜 갚은 개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이야기는 <오수의견설화>와 같은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이다. 개 주인이 장에 갔다 오는 길에 술에 취해 길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들불이 나 번지자, 개가 냇물로 달려가 몸에 물을 적셔 와 주위 잔디를 축여 주인을 살리고 자신은 지쳐 죽었다. 그 뒤 깨어난 주인은 슬퍼하며 개 무덤과 비석을 만들어 줬다. 후세 사람들은 주인을 구한 개를 지금도 칭송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은혜 갚은 개 이야기’는 여러 유형으로 변이돼 구전되고 있다. 고문헌에서는 주제별로 충견(忠犬)ㆍ의구(義狗)ㆍ의오(義獒)ㆍ효구(孝狗)로 구분했다.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유형은 불을 끄고 주인을 구한다는 ‘진화구주형’이다. 구주형 의견설화는 인간의 위기와 그 해결의 화소가 주가 된다. 이들 유형에서는 주인과 개의 교감이 뚜렷이 나타난다. ‘은혜 갚은 개 이야기’의 주인공인 개 주인은 대부분 신분이 낮은 사람이다. 개의 도움을 받아 목숨이 구제되거나 억울함이 신원될 정도로 나약한 존재다. 이와는 달리 은혜 갚은 개는 지혜와 덕을 겸비한 영리한 존재로, 주인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는 구원의 존재다. 결말에서도 인간보다는 개가 더 높이 평가돼 사람들에 의해 무덤이나 비석이 세워진 존재가 된다. ‘은혜 갚은 개 이야기’는 개 무덤이나 개 비석과 같은 증거물이 제시되고 있어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대체로 다른 동물 이야기보다 비교적 설화가 짧고 내용이 고정적이며, 교훈성이 강조돼 있다.

3.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은혜 갚은 개 이야기’다. 옛날 한 늙은이가 지자나무를 캐러 갔다가 어느 집에 갔는데, 그 집에는 첩하고 본마누라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본마누라가 임신해서 오늘내일 아이가 나올 판이었는데, 그 남편이 갑자기 외지로 일을 보러 나갈 일이 생겼다. 남편은 첩한테, 마누라가 아기를 낳으면 산후조리를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산후조리를 잘해 주면 지자를 얼마든지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떠났다. 그렇게 남편이 일 보러 간 사이에 본마누라가 아들을 낳았는데, 첩은 지자 캐러 왔던 늙은이와 짜고서 이제 막 태어난 애를 죽었다고 하면서 이불로 뚤뚤 말아 내다 버렸다.

본마누라는 평소에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마침 개도 새끼를 배었던지라 예뻐하면서 “니가 새끼를 먼저 나면 내가 너를 보살펴 줄 텐데 내가 너보다 먼저 아이를 낳으면 누가 너를 돌보냐”하면서 걱정했다. 그렇게 예뻐해서였는지, 첩이 본마누라 아이를 버리자 그 개가 아이를 물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침 개도 새끼를 낳은 뒤여서 새끼한테 물릴 젖을 본마누라 아이한테 물리며 돌봐 줬다. 그러기를 얼마 후 남편이 돌아오자 본마누라가, “우리 자식은 낳자마자 죽었다고 첩이 갖다 버렸는데, 개는 어디서 새끼를 낳았는지 안 들어옵니다”하고 한탄했다. 그때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남편의 두루마기를 입으로 물고 밖으로 나가자고 용을 썼다. 개는 아이가 있는 데로 데려가려는 속셈이었으나, 남편이나 본마누라 생각에는 제 새끼를 낳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저러는가 싶었다. 그래서 일단 가보기로 하고 개를 따라갔는데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아이를 안고 집으로 와서는 첩과 늙은이를 가둬 놓고 보니, 뒤따라왔던 개가 죽어 있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어 죽은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끼들 역시 굶어 죽어 있었다. 그리하여 남편과 본마누라는 식구가 죽은 것처럼 상복을 입고 상여에 개를 싣고 가서 산속에 잘 묻어 줬다고 한다.

‘은혜를 갚은 개 이야기’는 전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다른 유형의 은혜 갚은 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한다.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지산리에서 노동리로 넘나드는 고개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순창에 아들과 개 한 마리를 키우며 사는 부부가 있었다. 장인의 회갑이 돼 적성면의 처가에 개를 데리고 가다가 고개 능선에서 강도를 만나 싸우던 중 개가 강도와 함께 죽고 말았다. 남편은 강도 편을 들었던 부인을 처가에 버려두고 고개를 돌아오면서 죽은 개의 비를 세워 줬는데, 그 비를 견두비(犬頭碑)라 하고 그 고개를 개 고개라고 했다.

4.
양산에도 개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다만, 특이하게도 은혜를 갚은 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친 개에 관한 이야기다.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개대가리고개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1997년에 발간된 『원동면지』에 수록돼 있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매우 드물다.

때는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모두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이때 영포마을 앞산 고개 산을 넘어 매일 같이 베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고개에서는 이상하게도 개 짖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떤 할머니가 베를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앞을 가로막는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결국 개에게 처음으로 화를 당하고, 그 후 계속해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해 나라에서 상금을 걸고 이 개를 잡도록 했다. 며칠 후 영포마을 사람이 베를 팔고 오는데, 갑자기 검은 개가 나타나 베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베 장수는 온 힘을 다해 개와 싸워 결국 목을 잘라 죽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 대가리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후 이 고개를 개대가리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포마을은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이다. 고기가 놀며 배가 드나드는 포구란 뜻으로 어포(魚浦)라고 불렸다가 하서면이 원동면으로 명칭이 변경된 후 어영동(魚泳洞)의 ‘영’과 어포의 ‘포’를 차 따서 영포라고 칭했다. 영포리는 내포리의 안쪽에 위치하며, 310년(기림이사금 13)에 신본(新本)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설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을 지닌 신흥사가 있는 마을이다.

속설에 개를 10년 이상 기르면 둔갑해 영물이 된다고 해, 늙은 개는 흉물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개대가리고개’에서도 개는 사람을 위협하는 부정적 존재로 나타나고 있으며, 아울러 죽은 후 대가리가 사라져버린 요물로 묘사돼 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