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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9] 모든 것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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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29] 모든 것에는 끝이 있어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4/29 14:55 수정 2022.04.29 14:55
이해인의 말/ 안희경 인터뷰

이기철
시인
궁금하고 알고 싶은 사람, 한 번쯤 만나 이런저런 사연 풀어놓고도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물음에 대한 답은 ‘말’로써 확인된다. 때로는 어떤 이가 전해준 그 말을 기울여 듣는 일만으로도 행복하다.

2020년 가을, ‘순도 높은 생 금덩이’라는 분을 만나 열 한차례 나눈 말, 그 말길을 글길로 풀어낸 책, ‘이해인의 말’.

재미 저널리스트인 안희경 씨가 오후 3시면 서로 책상 앞에 놓인 모니터로 눈 맞추며 나눈 말. 우주와 통교(通交)하는 민들레 영토라 부르는 ‘해인 글방’에서 그 시간 반갑게 주고받은 말. 나뭇잎들은 차례로 낙하를 준비하던 시기였으리라. 인생관, 종교관, 세계관에 대해 조곤조곤, 소곤소곤 말했다. 단단한 차돌처럼 박힌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당당하다.

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해인 수녀는 ‘수도 연륜이 묻어나는 발언을 했다’며 흡족했다고 언급한다. 물론 자신에 관한 왜곡된 시선이나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수녀님을 둘러싼 루머가 나돌았다. 특히 ‘죽음’이라는 문제. 가끔 이해인 수녀를 찾아뵙는다는 시 낭송가 정명지 씨에 따르면 6개월 단위로 3번째 위독설과 선종 소문이 돌아 곤란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소식은 ‘발 없는 말 천 리 간다’는 말처럼 여기저기 사실인 듯 번졌다. 하지만 모두 헛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건강을 걱정한 마음들이 그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해인의 말’ 책 표지.

이 책에서 나눈 ‘말’은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생각과 말, 행동이 일상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 ‘말’을 통해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이들에게 보여준 생활 지침서 내용은 무엇인지에 관해서.

그녀 말에는 지혜, 차별에 대한 비판, 자존감을 가지고 산다는 문제에 대해 안과 밖을 세우는 성찰에 대해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글은 코로나 시기 정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수도원도 비켜 갈 수 없었던 때, 이를 ‘코로나 수련’이라고 불렀다. 더 깊은 영성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운을 뗀다. 이어지는 말은 이렇게 어려운 때, 이웃을 돌보는 데 필요한 자세는 ‘이기적 예민함을 버리고 이타적 예민함’을 갖춰야 한다는 역설. 교회 안에서 마주친 부끄러운 실망, 사회에 만연한 불의에도 결코 목소리를 낮추는 법이 없었다. 수도자 본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행동이다.

‘존재는 죽을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 걸음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표상이다.

법정 스님과 나눈 인연도 말한다. 1978년 한지에 붓글씨로 써 보낸 두루마리 편지. 수도자가 지녀야 할 자세에 관한 내용이다. ‘고독은 그림자다. 우주 바닥을 들여다보는 도구임으로 반드시 고독을 배우라’는 조언.

수녀님은 고독 거처에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기’(Omnibus Omnia)를 오늘도 실천하고 있다. 인터뷰 마지막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마침 검은 옷을 입었다. 시인 김현승 시를 즐겨 읽는단다. ‘모든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치면,/ 숨기어 편히 쉬게 하는 빛’.(시, ‘검은빛’ 부분)

평소 검은 색깔 옷을 멋쟁이 옷이라 생각한단다. 지금은 ‘흰옷’이리라.

이해인 수녀는 검약(儉約)과 검박(儉朴)을 실천하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녀회 소속이다.
일생을 ‘검’(儉)으로 무장한 삶, 이를 서원(誓願)한 사람답다.

시 낭송가 정명지 씨(오른쪽)와 이해인 수녀.(이 사진은 사용 허락을 받았음을 밝혀 둔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연초에 하는 공동 피정(避靜) 때 쓰는 결심서 이야기를 꺼내 든다.

1년 동안 각자 실천할 일, 결심, 공동 기도 등을 정하는 중요한 시간, 이른바 영성 메뉴 작성 시기. 이렇게 말을 남긴다.

‘언어는 깨어 있되 남에게 심한 말을 하지 말 것’, ‘한 번밖에 없는 삶, 낭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 것’, ‘평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아울러 ‘마음 날씨는 맑음 혹은 밝음을 유지할 일’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해인의 말’,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한다.

‘살아갈수록/ 나에겐/ 사람들이/ 어여쁘게/ 사랑으로/ 걸어오네// 아픈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을 때로는/ 선뜻 마주할 수 없어/ 모르는 체/ 숨고 싶은 순간들이 있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 꽃잎 한 장의 무게로/ 꽃잎 한 장의 기도로/ 나를 잠 못들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시, ‘꽃잎 한 장처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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