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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지독한 각자도생의 논리..
오피니언

‘국민연금 개혁’, 지독한 각자도생의 논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22/05/09 13:54 수정 2022.05.09 13:54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신임 대통령 인수위에서 이미 여러 번 언급했고, 지난 대선에선 진보정당 후보가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일부 진보단체도 이것을 ‘불편한 진실’이지만 수용해야 한다고, 고뇌에 차서 주장한다. 언론도 불을 지피려는 눈치다. 올해 국민연금 재정 건전성 평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 내용은 단순하다. 지금부터 30~40년이 지나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니, 국민연금을 더 걷든지, 덜 주든지, 아니면 둘 모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에도 국민연금은 ‘용돈 연금’으로 조롱받을 만큼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으니, 덜 주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혁 주장의 핵심은 ‘더 걷어야 한다’로 요약된다. 이에 대한 정당성 논리는 항상 똑같다.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는 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노인 부양을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있지도 않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놓은 탓에, 현재 청년 세대를 끌어들이면 일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30년, 70년 후의 국민연금 재정 계산이 정확할 수 있느냐는 의심도 있지만, 그 계산이 맞다고 가정하자. 내가 문제 삼고 싶은 점은 ‘연금기금 중심적 사고’에 숨겨진 지독한 ‘각자도생’의 논리와 ‘공동체적 관점’의 결핍이다.

출산율이 하락하고, 기대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전체 인구에서 노인 인구 비중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더 실질적인 의미는 일하는 사람 수는 감소하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 수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를 ‘노인부양비’의 상승이라 부른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일하는 사람이 노인 부양을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노인부양비 상승에 대비해 더 많은 연금기금을 축적하면 미래 일하는 세대 부담이 줄어들까? 노인 부양 문제를 기금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면, 그렇다. 기금이 충분하면 노인들은 그 기금에서 연금을 받을 것이고, 젊은 세대가 증가한 노인을 위해 따로 세금을 더 낼 이유는 없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단견이다. 이 관점은 미래에 은퇴하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물’(먹을 것, 집, 간병과 의료 서비스, 문화생활 등)이지, 돈이 아니란 사실을 간과한다. 미래 노인이 소비할 실물은 미래의 일하는 세대가 ‘생산’한다. 따라서, 노인 인구 비중 증가가 미래 세대에게 ‘실질적인 부담’인지 아닌지는 연금이 아니라 실물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실물 관점에서 다시 질문해 보자. 국민연금을 더 걷으면, 미래 노인 세대가 필요한 ‘실물’이 충분히 생산되는가? 다른 말로, 현재 연금을 더 걷으면, 미래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실질적으로’ 감소할까? 이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우화를 상상해보자. 자급자족하는 어느 농촌 마을을 가정해보자. 어떤 이유로 출산율이 하락하고 기대 수명이 증가해, 노인 인구가 증가할 것임이 명확해졌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마을 회의가 열렸다. 우선, 노인을 포함해 마을 구성원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마을 공동체 전체가 동의했다. 다음으로, 이 합의에 따라,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노인을 부양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장기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한 편에서 미래 노인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옳은 대책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래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생산하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는 쌀인데, 항아리에 돈을 쌓아둔다고, 미래 노인을 위한 쌀이 더 많이 생산되지 않는다. 현재 남는 쌀(저축)이 있다면, 현재 일할 수 있는 사람 일부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하거나 더 생산성 높은 경작법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즉, 돈으로 저축하는 대신, 미래 노인을 위한 실물 생산을 늘릴 방법을 찾는 게 올바른 대처다.

이 마을을 현대의 한 국가로 치환해도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우화가 전하는 핵심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민연금 개혁 논리는 이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왜냐하면, 현재 국민연금 개혁 주장은 ‘젊어서 저축한 만큼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는 지독한 각자도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미래 생산물을 나누는 방법을 정하는 문제고, 각자도생 원리 말고도 그 방법은 다양하다.

둘째, 미래 노인부양비 상승이 걱정이라면, 현재 대책은 생산성 향상이어야 한다. 노인부양비 상승이 걱정인 진짜 이유는 미래 세대의 생산물 중 노인 소비 비중이 증가해, 미래 세대의 절대적 몫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우려는, 노인의 몫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생산량이 더 빠르게 증가할 때, 해소된다. 위 마을의 우화를 빌려보자. 현재 마을 전체 인구 10명 전체가 1인당 쌀 1가마니를 생산해 마을 전체가 총 10가마니를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따라서, 평균적으로 1인당 1가마니의 쌀을 소비할 수 있다. 10년 후 생산성은 개선되지 않아, 여전히 1인당 1가마니의 쌀만을 생산하고 있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이 2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쌀은 8가마니만 생산되므로, 1인당 0.8가마니의 쌀을 소비하게 된다. 즉, 생산인구조차 1인당 소비가 20% 감소한다. 진짜 우려는 이것이다.

이와는 달리, 노인 부양에 대비해 미리 새로운 경작지를 개간하고 생산성을 개선한 결과, 1인당 1.5가마니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면, 총 쌀 생산량은 12가마니(=1.5가마니/인×8인)로 증가하고, 1인당 평균 소비량도 1.2가마니로 오히려 20% 증가한다. 생산하지 않는 노인이 증가해도 미래 세대 소비는 오히려 증가해, 앞의 근본적 우려가 해소됐다. 물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 세대와 노인 세대의 몫을 조절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분배가 생산성(1인당 1.5가마니) 대비 낮다(1인당 1.2가마니)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적 관점에서 보면, 미래 세대 생산성 이득 중 큰 부분이 이전 세대가 이룬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면, 노인 인구 증가에 대비해 저축을 늘린다고 생산성과 생산물이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금을 더 걷으면, 생산성이 정체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연금을 더 많이 걷으면, 현재 소비가 감소한다. 수요가 감소하니,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그 결과 생산성이 정체한다. 현재에도 국민연금 기금은 1천조원에 육박한다. 투자로 갔어야 할 이 돈인데 ‘각자도생’ 원칙을 강요하기 위해 항아리 속에 숨겨둔 것이다! 미래 세대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생산성이 정체해 총 실물 생산물은 늘어나지도 않았는데, 노인 수뿐만 아니라 연금도 증가해 있다. 빵빵한 연금을 가진 노인이 대량으로 등장해 소비를 주장하니, 일하는 미래 세대는 자신의 생산물 대부분을 노인 세대에게 바치게 된다. 기금이 아니라 ‘실물’ 관점에서 보면 이렇다. 사정이 이러한데, 기금을 더 쌓자는 주장이 고령화 사회를 대하는 올바른 관점이고,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하는 대책일까?

경제 전체 생산성은 개인이 결정하지 않는다.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기금을 중심으로만 생각하면 미래에 누가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하게 될지 문제를 간과한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 수와 소비 비중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책이 준비해야 할 것은 ‘기금(돈)’인가, 아니면 그 돈으로 살 ‘실물’을 확보하는 일일까? 국민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측은 실물이 아니라 돈에만 집착하고, ‘각자도생’ 원리만 강요한다. 생산성과 미래 생산물의 세대 간 분배 방식 등 ‘공동체’적 사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것이 불만이다!

그나저나, 기업이나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자고 하니,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던 언론이, 개인에게 세금(연금)을 더 걷자는 말에는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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