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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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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5/17 15:47 수정 2022.05.17 15:47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옛날 로마인들은 ‘정의와 용기와 절제와 지혜’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반면, 긍휼을 ‘영혼의 질병’이라고 불렀다. 명예는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에 대해 무자비하게 대해야지, 만일 적에게 긍휼을 베풀고 너그러이 대하다가 나중에 힘을 키운 대적에게 패하게 되면 그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를 흔히 약육강식의 사회라고 한다. 이겨야 살아남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을 탁월하게 키워야 할 뿐 아니라 대적을 약하게 해야 한다. 함부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무자비하고 잔인해야 대해서 감히 도전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상대를 두고 절대 강자라고 한다. 이런 절대 강자가 되고 싶어 하고 또 그런 절대 강자가 다스리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긍휼을 히브리어로 헤세드이고, 헬라어로는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자비, 인자, 긍휼, 불쌍히 여김’ 등으로 번역한다. 긍휼을 뜻하는 또 다른 히브리어는 ‘라함’인데, 이는 ‘레헴(어머니의 자궁)’이란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아기를 뱃속에 잉태한 어머니가 자신의 태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긍휼을 영어로 하면 ‘Compassion’인데, 이는 com과 passion의 합성어로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뜻이다.

즉, 긍휼이란 엄마가 뱃속의 태아에게 느끼는, 애틋하면서도 각별한 사랑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 대해 측은한 생각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제거해주고자 하는 소원이 합쳐진 행동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34장 6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라고 하며,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고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이 자비한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는 것을 기뻐하며,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긍휼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태도이기에 지혜롭게 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 하면 그 아픔을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혀를 차며, 있는 눈치 다 주면서 부담감 팍팍 느끼게 만들고는 마지못해 떠밀리듯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긍휼히 여길 대상을 잘 못 정하면 주제넘은 짓을 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너나 잘하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고, 할 일이 그렇게 없냐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긍휼은 감사와 감동을 낳지만 잘못된 동정은 사람을 비참하게 하고, 자괴감과 모멸감을 줘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게 한다.

1936년 1월 어느 날 서울 정동교회에서 당시 배재고보를 다니던 김경희는 “하나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나이다”하고 하나님께 서원했다. 그는 4년 후 세브란스 의전(연세대 의대 전신)에 진학했고, 1941년 의전 2학년 때부터 서울 답십리 조선보육원에서 아이들 치료를 시작으로, 일본과 만주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 무료 진료를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일본 교토대 의학부 대학원에 유학해 박사학위 취득했고, 귀국한 그는 다시 왕진 가방을 들고 영세민과 피란민이 엉켜 살던 한강 둑방 판자촌에 뛰어들어 무료 진료를 했다. 1984년에는 ‘은명내과’ 간판을 내걸고 당시 판잣집이 즐비하던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인 상계동에 정착했다.

처음엔 영세민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누굴 거지로 아느냐”며 정색하는 주민들 반응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 자존심까지 살려줄 진료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반짝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바로 ‘1천원 진료’였다. 어떤 치료를 받든 진료비는 1천원. 그가 ‘상계동 슈바이처’란 별명을 얻은 것은 이렇게 이웃의 마음까지 돌보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긍휼과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많이 나눠줘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노블레스 오불리주(Noblesse Oblige)’다. 고귀한 사람은 의무를 더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도층이 특권은 누리고자 하지만 해야 할 책임은 외면해온 현상을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돈이 많은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 없이 시달리는 사람을 돌봐주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의 태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다. 엄마가 태중 아이를 향해 애틋한 마음으로 돌보고 사랑하듯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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