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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 된 ‘재정건전성’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6/02 15:40 수정 2022.06.02 15:40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는 5월 10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다음 날인 11일 여당이 된 국민의힘과 정부는 59조4천억원(중앙정부 36조4천억원, 지방교부금 23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하고, 1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후 여야 합의 과정을 거쳐 5월 29일 이보다 증액한 62조원 규모 추경안이 국회 승인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 추경이라 한다. 또한, 추경안이 국회 승인을 받은 다음 날인 5월 30일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최소 600만원에서 최대 1천만원까지 손실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두고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불과 두 달 전과는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 추경은 대통령선거 훨씬 이전부터 당시 국회와 다양한 시민단체가 요구했지만, 기재부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정부 재정건전성이 나빠진다는 이유였다. 재정건전성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바뀌자 없던 돈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 세입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되면 논란은 ‘기재부의 세수 예측 오류’ 정도로 축소된다.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더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5월 2일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측이 ‘나라살림연구소’라는 한 민간연구소의 이상민 선임연구위원을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안철수 당시 후보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라고 한다. 고발이 이뤄진 시점이 중요하다. 당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3월 3일 단일화를 선언했는데, 고발장은 다음 날인 3월 4일에 접수됐다.

내막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다.(이하 경과는 다소 복잡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가 재정건전성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근거를 제시했는데, 그 근거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시됐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1월 2일 당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안철수 후보가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국가부채 수준이 위험 수위에 달했고, 나라 운명이 걱정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지표가 ‘D4’다. 특히, 2088년이 되면 국민연금 누적 적자액이 1경7천조원에 달할 것이고, 모두 미래세대가 상환해야 할 빚이라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연구위원은 D4라는 개념은 ‘동명이개념’이라 주장하며 “우리나라 연금충당부채(정부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인용자)를 따지고자 한다면 이를 D4라고 부르면 안 된다”, “개념의 일관성을 지켜 재무제표상 부채로 표현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이는 안철수 전 후보가 D4를 “아직 미지급한, 예를 들면 연금에 대한 그런 미지급 부채 이런 것까지”로 정의하고, 미래 국민연금 적자까지 정부부채로 포함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을 고발인측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사법기관에 형사적 처벌을 요청했다.

팩트만 간단히 확인하자. 첫째, 안철수 전 후보측 주장처럼 IMF가 D4라는 지표를 정의하고 있는 것은 맞다. 둘째, IMF는 D4를 ‘보험, 연금,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표준화된 지급계획’(insurance, pension, and standardized guarantee schemes)으로 정의한다. 안철수 당시 후보는 “D4 같은 경우에도 일본 같으면 국민연금에 대해서 100년 추계를 하거든요”라고 말해, 국민연금을 D4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셋째, 하지만, 안철수 당시 후보는 D4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 기재부의 국가부채 정의인 D1, D2도 함께 언급했다. 즉, 그는 IMF의 정의와 기재부의 정의를 섞어서 사용했다. 넷째, 우리나라 기재부의 정부부채 정의에 D4는 없다. 공무원과 군인연금의 미래 예상 지급액을 포함한 정부부채를 기재부는 ‘재무제표상 부채’라 부른다. 하지만, 여기에 국민연금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상민 연구위원의 지적은 한마디로, 안철수 당시 후보가 정부부채에 대한 IMF의 정의와 우리나라 기재부의 정의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안철수 전 후보측은 이를 문제 삼아 고발했다. Km는 길이를, Kg은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인 것처럼, 양자는 전혀 다른 것을 정의한다. IMF의 D1~D4 정의는 ‘무엇을 정부의 빚으로 볼 것인가’(국채, 차입, SDR, 연금 등)를 정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기재부의 국가부채 정의(D1, D2, D3)는 ‘정부의 범위를 기준’(중앙정부, 지방정부, 비영리공공기관, 비금융공기업 등)으로 정부부채 규모를 측정하고자 한다.

안철수 전 후보가 양자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점은 사실이고, 이를 지적한 이상민 연구위원의 주장은 옳다. 다만, 안철수 전 후보의 D4를 ‘재무제표상 부채’로 불러야 한다는 이상민 연구위원의 ‘당시’ 지적은 부정확하다. 국민연금 미래 적자는 재무제표상 부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최근 입장문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2020) 보고서 ‘OECD 국가별 연금충당부채 해외사례조사’에 따르면 안 위원장의 국민연금의 충당부채까지 고려한 ‘D4’는 전 세계 어떤 국가도 하지 않는 안 위원장의 창조적 개념 속에만 존재하는 잘못된 발언이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요점은 너무 명확하고 간단하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정부부채를 우려하며 어떤 근거를 제시했는데, 이상민 연구위원은 그 근거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것뿐이다. 여기에 더해 나는 고소ㆍ고발을 당하더라도, 안철수 전 후보 행보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당시 안철수 후보가 굳이 국민연금의 미래 적자 예측치까지 포함한 D4를 제시한 이유는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 입장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됐다. 가령,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인 4월 11일에 같은 맥락에서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라고 말했고, 4월 24일에도 국민연금을 언급하며 “매년 미지급 부채가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나는 그 숫자가 과장되거나 오해될 위험이 있다고 믿지만, 여기서 그것을 논하지는 않겠다)

여기까지 보면, 그가 나라의 재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는 이번 추경에 반대할 것으로 기대함이 마땅하다. 정부의 빚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정부와 여당의 설명처럼 설사 예상보다 더 많은 세금이 걷혔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나눠주는 일에 반대하고, 기존 채무를 상환하든지 저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보도는 아직 보질 못했다.

피고발인이 소속된 나라살림연구소는 입장문을 통해 “토론을 제안했으나, 토론 대신 고발을 당했다”고 밝혔다. 아직 그 고발이 취하됐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피고발인 이상민 연구위원도 최근 SNS를 통해 토론 혹은 민사소송을 원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민사소송이라면, 승소해 소송비를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개 사건과 사물을 맥락적으로 이해한다. 최근 두 번의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선거 이전까지는 안 되던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재정건전성에 대해 기재부는 이전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는, 안철수 전 후보는 추경을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측근은 과거 소신을 비판한 ‘시민’을 고발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지금까지 지겹게 듣던 재정건전성 우려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일관성이 없으면 진심인지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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