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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사기 열전 1] 왜 『사기 열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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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사기 열전 1] 왜 『사기 열전』인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7/21 10:22 수정 2022.07.21 10:22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중국 전한 시대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 열전』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사기 열전』은 모두 70권으로 돼 있다. 한 권에 한 명부터 수십 명의 인물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대략 500명 내외다. 역사 이전인 황제 때부터 한 무제 때까지 2000년 역사에서 주요 인물을 뽑아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사기 열전』을 읽다 보면 무늬만 다를 뿐 이야기 양상이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통시적 거리에 따른 모습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속 살아가는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공을 초월해서 비슷하다. 이것이 우리가 과거를 반추해 현재를 판단하고 지혜를 얻어야 하는 이유다.

사마천(司馬遷)은 용문(龍門, 지금의 산시성 한청) 사람으로, 자는 자장(子長)이다. 한나라 태사령(太史令)을 지낸 사마담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고전을 공부하고 유학자 공안국, 동중서로부터 학문을 배웠던 그는, 20세 무렵 아버지 권유로 견문을 넓히고 역사가로서 자질을 기르기 위해 전국을 답사하기 시작했다. 벼슬살이를 시작한 후로는 한 무제(漢武帝)를 수행하며 각지를 다녔는데, 이러한 현장 경험은 『사기』 저술에 큰 도움이 됐다. 『사기』 곳곳에 현장 답사와 문헌 기록이 바탕이 된 자료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38세 무렵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대를 이어 사관이 됨으로써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사마천은 사관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가 남긴 유언, 즉 역사서 완성을 필생의 사명으로 물려받았다. 태사령으로 임명된 지 10년째, 47세가 되던 BC. 99년에 사마천은 인생에 중대한 전환이 되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이릉의 화’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사마천은 한 무제의 분노를 사서 역적을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마천은 아버지 유언이자 필생 사업인 『사기』 저술을 마무리하고자 사형 대신 궁형을 받았다.

2.
『사기』는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이 상고시대 오제(五帝)~한나라 무제 태초 연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해 저술한 통사다. 본격적인 저술은 BC. 108~91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돼 있다.

사기는 열전에 가장 큰 비중을 할애했고, 신비하고 괴이한 전설과 신화에 속하는 자료는 모두 배제하고 주로 유가 경전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된 자료만 선택해 기록하고 있다. 또, 열전 첫머리에 이념과 원칙을 따르다가 죽은 백이(伯夷)ㆍ숙제(叔齊) 열전을, 마지막에 이익을 좇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둬, 위대한 성현뿐 아니라 시정잡배가 도덕적 당위의 실천과 이욕적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생생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창조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표면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기』 내용이 이전 역사서와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사마천은 『사기』 곳곳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개탄하고, “믿음을 보여도 의심하고 충성을 다해도 비방한다”라며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솔직히 표출하고 있다. 부당한 억압을 딛고 통쾌하게 복수한 인물들을 대거 편입시켰고, 역사 흐름에 영향을 주거나 대세를 바꾼 사람이면 누구든 기록해 그 역할과 작용을 각인시켰다.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했다. 『사기』는 보통사람을 중시했고, 역사의 주역이 따로 있지 않다는 역사 인식을 사람들 마음속에 새겼다.

3.
‘열전(列傳)’은 역사에서, 임금을 제외한 사람들 전기를 차례로 적어서 벌여 놓은 기전체 사서의 한 편목이다. 주로 인물의 사적을 기록해 실었으나, 외국과 변경 소수민족들 역사나 특정 주제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넣기도 했다. 춘추전국 시기에 지어진 『좌전』ㆍ『전국책』ㆍ『국어』 등에 들어 있는 편목들은 인물의 행동을 기록하고는 있으나, 일생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인물의 전기가 독립된 문체와 형식을 갖춘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부터였다.

사마천은 “바른 것을 북돋우고, 재능이 뛰어나며,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 열전을 짓는다”고 했다. 『사기 열전』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물들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사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고대 중국의 문호ㆍ학자ㆍ정치가ㆍ군인ㆍ자객ㆍ협객ㆍ해학가ㆍ관리ㆍ실업가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 일화가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 역사가로서 사명감으로 비극적 운명을 감내한 사마천은 인생의 궁극적 의문을 탐구하는 자세로 기전체 역사서를 집필했으며, 모순으로 가득 찬 역사적 현실에서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간 수많은 인물을 그려냄으로써 스스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4.
사마천은 『사기 열전』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 속에는 시대에 순응한 자,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사마천은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인간사회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 갈등과 타협, 의리와 배신, 충신과 간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나눔 등 양자택일 갈림길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것 자체가 인간사회임을 강조한다.

『사기 열전』을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과거를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로 서술해낸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현재의 인물로 생동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2000여년이 넘는 세월의 거리를 어제 일처럼 가깝게 묶어 놓고 있다. 나는 『사기 열전』을 통해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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