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37] 내가 쓴 글은..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37] 내가 쓴 글은 내가 다듬는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8/19 09:40 수정 2022.08.19 09:4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이기철
시인
첨삭(添削), 증산(增刪). 시문(詩文)이나 답안 따위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해 고친다는 뜻이다. 문장이란 물처럼 흘러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법이다. 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로우면 난삽(難澁)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종종 번역서를 접하는 눈 밝은 독자들이 짜증을 내는 이유는 비문(非文), 오문(誤文) 때문이다.

글 짓는 이들은 자기 작품에 대한 뚜렷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여러 번 고쳐 바른 글을 만든다는 퇴고(推敲), 매우 중요하건만 습관과 버릇에 기대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해 깨끗한 문장을 만드는 데 종종 실패하기도 한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고 묻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이 만든 작품은 손상이 없다고 착각하기 쉽다. 이 책은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다른 이 문장만 20년 넘게 다듬어 온 사람이 ‘문장을 스승 삼아’ 배운 내용을 조심스럽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되묻는다. 시쳇말로 ‘이래라, 저래라’는 아니다. 풍부한 경험을 나누려는 상냥한 마음으로 여기면 된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책 표지.

책 내용은 자기에게 문장 수정을 의뢰한 작가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시작이었고, 이를 어느 강의에서 풀어낸 내용이다. 놀랍게도 이 강의 장소에 의뢰인이 참석해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는 매우 흥미롭다. ‘어디 내 글을 함부로 손댄다는 말인가요?’가 아니라 맞춤한 문장이 훈장(勳章)이 될 수 있음을 서로 공감한다.

사실, 멋진 문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이 둘만 잘한다고 해서 격이 살아나는 글을 완성할 리 없다. 또, 작가로서 독자에 대해 예의를 차려야 하는 공부로는 필요하지만, 모든 이에게 적용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책을 지은 김정선 씨(여자 아님)가 말하는 잘된 문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이상한 문장들을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게 아닙니다’고 말한다. 즉 ‘표준적인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다만, 끊임없이 질문한다. 타인에게 말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다. ‘굳이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내 문장을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등등 조금이라도 글 쓰는 일에 힘 쏟는 이라면 당연히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 책 마지막에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한 명백한 답이 들어 있다. ‘당신은 쓰고 나는 읽습니다’.
교정, 교열을 보는 일이 직업이지만 그 또한 ‘독자’다.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 편에 있지 않다. 내용이 훌륭하다, 작가 명성이 있어서 선택했다고 말해도 평가는 냉정하다.

저자가 강조하고 주장하는 핵심은 ‘덜어내자’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요 없는 요소를 가능한 대로 덜어내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 바로 필요 없는 살 빼기. ‘군살’이라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 문장 속 군살 빼기’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문장을 다듬는 전문가가 쓴 내용이지만 ‘지적질’ 혹은 ‘모욕’을 주기 위한 잘난 체가 없다. 내 맘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으로 타인 문장을 뜯어고치지는 않는다. 문장 안에 반복하며 등장하는 어색한 점, 표현 등을 오답까지는 아니어도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쯤으로 만든다는 친절함이 오롯이 들어 있다. 나아가 우리말을 오래도록 다듬어 온 현장 실무자 철학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참고서 역할을 한다. ‘꼰대’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한 점도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전작(前作), ‘동사의 맛’을 읽어본 이라면 더 반가울 테다. 글을 꾸려가는 장면을 한 편 드라마처럼 구성, 다음 편이 궁금해서라도 자꾸 들춰보게 만든다. 대단히 영리한 분이다. 그가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만 맛보기로 선보인다. 책 맨 앞에 다섯 번이나 공을 들여 설명하는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 ‘-적’, ‘-의’, ‘것’, ‘들’과 같은 말만 빼도 문장이 훨씬 좋아진다고 말한다.

동의하는가? 받아들일 자세가 돼있다면 매우 유용한 팁이 될 수 있다. ‘배워서 남 주나?’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가 반가운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 책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의뢰인에 관한 반전(反轉). 영화로 치면 스포일러에 속할 수 있어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겠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