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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38] 무엇을 먹을까..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38]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9/02 10:05 수정 2022.09.02 10:14
지구의 밥상/ 글 구정은 외, 사진 강윤중

이기철
시인
2천년 전 로마 귀족들은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먹었다. 만찬이라고 불리는 그들 연회(宴會)는 대여섯 시간씩 이어지기도 했다. U자형 안락한 침대가 마련됐고, 결코 배부르게 먹지 않았다. 더 많은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전통 의상인 토가(Toga)를 입은 남녀, 소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 이를 노예들이 처리해 줬다. 심지어 구토용 그릇을 준비해두기도 했다. 그렇게 버려진 음식은 가끔 가축들이 받아먹었다.

로마 시대 말, 부패(腐敗)가 극에 달할수록 상차림은 더 요란해졌고 생활은 더욱 문란해졌다. 로마는 늑대 모유(母乳)를 먹고 자란 양치기 목동 ‘로물루스’가 이끌던 작은 부족이었다. 고작 채소와 치즈를 곁들인 ‘폴스’라는 희멀건 죽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세력을 키운 이들은 정복과 전쟁을 통해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시대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식탁과 음식’을 보면 된다. 흔히 ‘세계화’, ‘글로벌’이라고 떠들면서 그 안에 내재된 이루 말할 수 없는 갈등과 모순은 덮어버린다. 이렇게 이름을 단 ‘세계의 식탁’은 어떻게 사람을, 나라를 망가뜨렸는지 직접 취재한 이들이 기록한 책, ‘지구의 밥상’.

‘지구의 밥상’ 책 표지.

한 신문사 기획취재팀이 2015년 2월부터 6개월간 세계 각 지역을 돌며 목격한 결과물이다. ‘밥상’을 통해 세상을 한번 살펴보자는 취지였다. 실상은 심각했다.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즉석식품인 정크푸드(junk food)에 절단난 나라, 가난한 나라에 농장을 만들어 채소를 가져다 먹는 부자 나라 이야기는 슬프다가도 화가 치민다. 빈부 격차는 식단과 밥상에서 더 벌어지고 있었다. ‘건강하고 차별 없는’이라는 말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자본이라는 힘 앞에서는 맥을 놓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인도 빈민가, 미국과 영국 무료 급식소, 종자(種子)를 문화재처럼 보존하는 프랑스를 보여주고 일본 중산층 식탁도 소개하지만, 구색 갖춘 듯한 인상을 지울 길 없다. 가려 읽어야 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밥상 식민지화’ 현실.

침대형 소파, ‘스티바듐’(stibadium)에서 연회를 즐기는 로마인 모습.

1999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으로 유엔 회원국인 된, 남태평양 인구 1만명이 채 되지 않는 나라, ‘나우루’. 인구 94.5%가 비만이며 과체중이다. 성인 100%는 당뇨병에 걸렸다. 이른바 식생활 글로벌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들이 먹는 음식 모두 수입품이다. 사방이 바다이나 어업은 포기한 지 오래. 이제는 더 이상 물고기도 채소도 키우지 않는다. 통조림과 인스턴트 음식, 콜라 등 음료를 먹고 마신 결과다. 이 섬나라를 ‘콜라 식민지’(Coca-colanization)라 부른다.

더욱 심각한 일은 자본 앞에 무릎 꿇는 밥상도 문제이지만 ‘기후 변화’. 식량 공급에 이미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전쟁과 자연재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있다. 온도와 강우량 문제로 식량 가격이 최소 3%에서 최대 84%까지 오를 수 있다고 유엔은 이미 오래전 경고했다. 일부 열대지역에서는 어획량이 40~60% 감소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도 나와 있다.

나우루에 사는 아이들이 집 앞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먹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유기농, 안전한 먹거리 등을 외치고 있지만, 갈 길은 멀고 돈이 가진 힘과 거대 식품기업들은 여전히 악랄하다.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을 말하고 있지만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식탁은 부정적이며 절대 계급이다. 석유로 요리해서 자본이 차리는 밥상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미 넘치고도 넘치는 ‘일용할 양식’을 앞에 두고 자랑이나 하며 시쳇말로 ‘자뻑’에 빠져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SNS에 날마다 등장하는 놀랍고도 화려한 음식이 ‘과시’보다 ‘연민’으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0개국 음식문화를 다룬 책 내용은 생존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와 뼈를 만드는 밥상이 정신을 지배하고 사상을 압도하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 이제 밥상머리 앞에서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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