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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2] 어울렁더울렁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2] 어울렁더울렁 살아 보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10/27 10:48 수정 2022.10.27 10:48
달려라 장편아/ 이인휘

이기철
시인
‘내 생애 적들’이나 ‘노동자의 이름으로’에서 보여준 ‘활화산’ 같은 성정(性情)을 그간 ‘휴화산’처럼 숨기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 어느 날, ‘부론강’으로 스며들었다. 그 사람 생애를 읽는다는 말은 단순히 추억을 찾아가는 지도(地圖)가 아니다. 어딘지를 가리키는 표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가진 의미를 파악하는 데 힘을 쏟아야만 한다.

오랜만에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이인휘 작가. 이번에는 동화소설, ‘달려라 장편아’로 우리 앞에 섰다.

‘부론강’이라 말하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남한강을 그리 부르는데 섬강과 합수(合水)되는 지점엔 은섬포 나루가 있었다. 드나들고 오고 가는 중심, 원주(原州)를 떠받치고 있던 곳이다. 유수(流水)는 흘러감을 말하듯 여기 폐사지(廢寺址) 세 곳이 있다. 흥법사지(지정면), 법천사지, 거돈사지(부론면). 잊히는 듯해도 날이 갈수록 선명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탐욕이 아니라 빛나는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는 각오. 이렇게 태어난 작품이다.

‘달려라 장편아’ 책 표지.

동화소설은 ‘법천사지’를 중심으로 이어간다. 삶에 우연(偶然)은 없다. 그런듯하지만 반드시 연(然)이 닿은 이유가 있다. 폐사지와 닮은 폐가(廢家)에 버려진 어미 개와 강아지 두 마리.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새삼 힘을 내는 줄거리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 실화(實話)며 3년 전 법천사지 작가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겪은 일’이다. 올여름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실었던 글을 다시 손봐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반쪽 눈만 뜬 채 잔재주로 글을 썼구나!’란 자탄(自歎)을 내뱉으며 사건을 제대로 꿰맸다. 예쁘고 감성 충만하지만 부끄럼타는 소녀라 일컫는 ‘하양이’는 단편이, 아기곰처럼 천방지축이지만 지구력 강한 ‘까망이’는 장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식구를 묶어 어미 개 백구는 자연스레 ‘소설이’가 됐다.

조은 작가 삽화.

약자(弱者)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세상에서 그들을 보듬고 보살피며 끝내 함께 살아가는 일. 쉽지 않은 법이다. ‘거둬들인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라지 않는가?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매사 편한 일을 작가는 그리하지 못한다. 이유는 딱 하나. 이제껏 살아온 삶 전체가 증명해주고 있다. 결코 ‘혼자’, 혹은 ‘단독자’로 살아 온 이가 아니어서다. ‘함께’가 체화(體化)된 이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동화(童話)라지만 ‘식구’가 읽어야 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밥 먹는 사이니깐. 배경으로 등장하는 역사 현장은 애써 먼저 해석할 일은 아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 하고 느낌표가 충만해진다.

조은 작가 삽화.

한번 버려진 삶이 또 버려지는 최후, 소설이와 하양이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장편이는 달린다. 모두 달린다. ‘나도, 법천사지 나뭇잎들도, 가을 하늘도, 꽃구름도, 바람도’. 마지막 문장은 ‘법천(法泉)의 하늘이 깊고 푸르게 열리고 있었습니다’로 마친다.

이인휘 작가는 ‘생명’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일을 주 임무로 삼고 있다. ‘달려라…’에서 보여주는 질주(疾走)는 지나치거나 무시가 아니라 희망이다. 버려진 곳에 관한 ‘희미한 옛사랑’이나 ‘무너진 무영탑’을 찾는 신세타령이 아니다.

조은 작가 삽화.

서울내기가 중앙을 과감하게 물리고 십여 년 전부터 원주 부론면 관덕마을에 보금자리를 튼 이유는 ‘부론’을 알리기 위해서다. 스스로 한 매체에 쓴 심정, ‘참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지역이 자신들 지역을 알리기 위해 역사 인물 발굴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부론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부론 전체가 유적지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원주 역사문화의 얼굴로 내세워야만 하는 부론을 이토록 사람들이 모르게 내버려 둔 것일까요?’

물음 속에서 자진(自盡)하는 마음으로 지키고 세우려는 장소에 ‘장편이’를 달리게 했다. 작품집에 함께 수록된 삽화(揷畫)는 원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지(韓紙) 아티스트, 조은 작가 그림이다. 사라져 가는 골목길, 마을 등으로 주로 그린다. 동화가 소설이 되고 대설(大說)이 되게끔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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