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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사기 열전 4] 포숙과 관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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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사기 열전 4] 포숙과 관중의 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22/11/24 10:58 수정 2022.11.24 10:58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이 말은 ‘춘추의 설계자’라고 알려질 만큼 중국 고대사의 위대한 인물 관중이 한 말이다. 흔히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과 더불어 춘추오패 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원래 관중은 제나라 환공 정적의 부하였다. 싸움에 져서 환공의 포로가 돼 죽음을 눈앞에 뒀으니 도저히 제나라 재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런 그를 제나라 재상으로 추천한 사람이 포숙이다. 처음에 제나라 환공은 포숙을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포숙은 제 환공이 작은 나라를 다스리려면 자신을 재상으로 삼아도 충분하지만, 제후들 우두머리가 되려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관중을 천거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는 말에서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안다(知)’이다. 안다는 말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알아봄이고, 알아본다는 말은 내면의 자질까지 안다는 것이다. 자질은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이며, 어떤 분야 일에 대한 능력이나 실력 정도다. 『사기 열전』 중 관중에 관한 이야기는 <관안열전>에 나온다. <관안열전>에 안다는 뜻의 ‘알 지(知)’ 자가 모두 16차례나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안다는 말을 쉽게 쓴다. 지식의 것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냥 한 번 봤을 뿐인데도, 그 사람 이름을 아는 것뿐인데도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사람에 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은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애정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는 것은 개인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인간 관계의 얕음 또는 삭막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
‘관포지교(管鮑之交)’는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란 뜻으로, 우정이 아주 돈독한 친구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지만, 이 말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관포지교에서 참된 벗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포숙이다. 관포지교 고사에는 관중을 대하는 포숙의 다섯 가지 태도가 나열돼 있다.

①포숙과 같이 장사를 했는데 내가 항상 그 이익금으로 재물을 더 많이 가져갔으나, 포숙은 결코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포숙아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②포숙아를 위해 사업을 도모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곤궁한 처에 빠졌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장사하다 보면 이익이 날 때도 있고 손해가 날 때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③여러 번 관리가 됐고 그때마다 군주에게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불초한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④여러 번 전장에 나가 그때마다 달아났으나, 포숙은 내가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에 봉양해야 할 늙은 어머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⑤공자 규(糾)가 군위 다툼에서 패하고 죽었을 때, 소홀(召忽)은 공자 규를 위해 같이 죽었으나, 나는 죽지 못하고 옥에 갇혀 욕된 몸이 됐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없는 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일은 공명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섯 가지에 공통된 의미는 ‘이해’다. 포숙은 관중을 무한 이해하고 있다. 관중에 대한 포숙의 이해에는 관중과 관중 주변 상황에 대한 앎(知)을 전제하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포숙의 관중에 대한 이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다.

①처럼 하기란 쉽지 않다. 같이 장사를 했는데, 동업자가 이익금으로 나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져간다면, 비록 그가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가만히 있을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은 친구 관계는 고사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형제 사이에도,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돈 몇 푼의 이익으로 싸운다. ②와 ③의 경우 대부분은 그를 어리석고 무능하다고 말한다.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⑤의 경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품고 있는 생각이 어떤지를 잘 알아야만 가능하다.

관포지교 고사에서 행위 주체는 모두 포숙이다. 참된 벗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은 관중이 아니라 포숙이다. 관포지교의 주역은 포숙인 것이다. 어쩌면 포숙이 있었으므로 춘추의 설계자 위대한 재상 관중이 있을 수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기만을 원한다. 나를 이해해주면 좋은 사람이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나를 지지해주면 그는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비판적인 말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원하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3.
제나라 재상이 돼 나라의 정치를 맡게 된 관중은 바닷가 변변치 못한 제나라에 재화를 유통하고 재물을 쌓아 부국강병(富國彊兵)을 이뤘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과 슬픔을 같이 했다. 그는 말하기를 백성들이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찾게 되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예로움과 욕됨을 알게 된다고 했다. 백성들이 바라는 바는 베풀어 주고, 백성들이 반대하는 일은 제거해 줬다. 관중이 정사를 돌보는 방법은 화(禍)가 되는 일도 복(福)으로 만드는 일에 능했으며, 실패할 일도 잘 처리해 성공으로 이끌고 일의 경중과 완급을 잘 분별하고 이해득실을 잘 헤아려 신중하게 처신했다.

정치가 관중의 키워드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는 베풀어 주고, 백성들이 반대하는 일은 제거해 줬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얼마나 간명하면서도 올바른 말인가? 현대는 여론정치 시대라고 한다. 여론정치는 국민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고, 국민이 반대하는 일은 없애주는 것이다. 관중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이미 여론정치를 훌륭하게 하고 있었다. 여론정치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에 말이다. 오늘날에는 여론정치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널리 이야기되고 있지만, 정작 정치 현장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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