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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4] 연기(煙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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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4] 연기(煙氣)는 태우기만 하는 일일까?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22/11/25 11:16 수정 2022.11.25 11:16
스모크/ 존 버거 글, 셀축 데미렐 그림

이기철
시인
종횡무진(縱橫無盡)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영웅을 위한 서사도 남기지 않았고 스스로도 영웅이길 외면했던 사나이. 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무엇일까? 그 앞에 놓인 타이틀에 왜 진지하게 검토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는가?

사진 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 비평가, 미술 평론가 등 그가 활약한 범위와 반경은 넓었다. 대충 혹은 대강이 아니라 진지하게 엄숙하게 삶을 밀고 나갔다. 이런 점들로 인해 그를 외면한 영국에서조차 훗날 그가 남긴 명성에 동조했다. 인생 중반부터는 프랑스에서 살았다. 농촌 마을에서 농사꾼으로 글꾼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존 버거. 소설 ‘G’로 부커상을 받아 상금 절반은 블랙팬서당(BBP)에 기부했고, 나머지 반은 이주 노동자 연구 작업에 투자, ‘제7의 인간’을 완성한다. 에세이 집도 여럿 남겼는데 특히 튀르키예 출신 셀축 데미럴과 협업이 돋보인다. 수술을 겪으며 엮은 기록과 명상을 남긴 ‘백내장’, ‘시간’ 속에 숨은 여러 해석을 담은 ‘몇 시인가요?’는 위트 넘친다.

‘스모크’ 책 표지.

‘스모크’도 그와 함께한 책이다. 그림이 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담배’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여기에 담긴 이른바 메타포(metaphor: 은유)는 중의(重義)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대중이 믿고 싶어 하는 소문이 진실이라고 기대고 싶은 심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그랬음 하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은 무모, 혹은 불안과 불길을 감추려는 저의(底意).

표지 그림을 살펴보면 담배 파이프에 기우뚱한 집 한 채,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불필요한 사람’이 나누는 서막을 위한 장치다. 피우는 행위는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담배 한 대’는 개인사는 물론 세상에 관한 견해를 나누는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담배 연기만이 아니다. 전편에 걸쳐 ‘연기’가 자욱하다. 장소는 기차, 비행기, 여객선, 전쟁터 등등 등장인물은 ‘우리’다. 메시지는 ‘타고 있는 세상’에 관한 고찰. 태운다는 일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 이에 따라 금지 항목이 늘어나게 된다. 금연, 중지, 죽음.(여기에 재떨이가 잠깐 나오는데 호의를 나타내는 휴전이다)

셀축 데미렐 삽화.

폐암, 식도암 위험을 경고하는 일은 애교다. 흡연자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일은 급기야 사회악, 부주의한 살인자로 낙인찍는다. 흡연자에 대해 악마화를 시작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어버렸다. 제약 없이 쏟아낸 일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를 가속 시키는 종범(從犯). 여기에서 그친다면 ‘금연 캠페인’에 불과한 시시한 글이 되겠지만 전진한다.

‘연기’는 확산하기 전까지는 특정 공간에서 공감과 연대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지만, 결국은 ‘연기 때문에 죽었다’거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일’이 되고 만다. 흡연(吸煙)이 남긴 연기는 간단없이 서사를 이어간다.

프롤로그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로 스타트했지만, 에필로그는 ‘연기’를 확장시킨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을 때 기억. 그 나라 수도는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어로 ‘연기의 만(灣)’이다. 그 도시가 세워진 만 근처에 뜨거운 간헐천(間歇川)이 있어 늘 김이 올라왔기 때문. 여기서 만난 어떤 남자가 전한 툰드라 지역에서 겪은 모험담이 이어진다. 혹독한 추위, 개와 얼음밖에 없다는 지극한 환경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 즈음 먼 지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활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는 뜻. 다름 아닌 유목민인 이누이트족이 피운 불이었음이 분명하다는 확신.

셀축 데미렐 삽화.

존 버거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어떤 존재가 가진 효능 또는 주장 따위를 남에게 설명,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활동에 익숙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우리나라에서만 ‘존 버거’로 부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저로’ 발음한다. 그도 죽기 전까지 애연가로 살았다.

가수 김광석 씨가 부른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 나오는 가사.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지독한 역설(逆說)이다.

존 버거도 ‘스모크’에서 말하고 싶었던 지점은 ‘담배 한 대’에서 비롯된 우정, 온기, 대화가 금연운동, 미세먼지, 전쟁, 테러 등으로 ‘연기’가 퍼져나감을 패러독시컬(paradoxical)하게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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