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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읍성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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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읍성 복원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22/12/05 09:18 수정 2022.12.05 10:04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지난 10월, 우리 시에서 주최한 ‘양산읍성의 보존ㆍ정비를 위한 학술대회’가 있었다. 양산읍성을 주제로 한 첫 학술대회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과 보존ㆍ정비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끊임없이 지식 재충전이 요구되는 우리 해설사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정진화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학의 기존 연구 결과가 다수 인용됐고, 성 기저부와 해자 흔적 등 새로 밝혀진 읍성 흔적들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역시 읍성 복원 문제였다. 가장 실현성이 있어 보이는 동문과 약 100m 떨어진 길이 10m 정도 잔존 성벽을 함께 복원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읍성(邑城)’이란 한 고을의 중심 지역을 둘러싼 성을 말한다. 여기서 ‘읍(邑)’이란 경계선으로 구획된 행정 구역이라기보다는 조선시대 ‘군(郡)’이라는 행정 단위의 중심 지역, 구체적으로는 군청이 자리한 지역 일대를 말한다. 읍성(邑城), 읍치(邑治), 읍내(邑內), 성읍(城邑) 등이 그런 용례다. 사실 행정 구역 단위로서의 ‘읍’이라는 말은 등장한 지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고려 말 왜구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양주(梁州, 양산)는 폐허가 돼 1381년에 읍치를 속현인 동평현(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일대)으로 옮겨 피난살이를 했다. ‘백성들도 김해의 촌락에서 임시로 타향살이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에는 양산에 왜구가 침구한 것이 1361년부터 1384년 사이 7차례가 확인된다. 이 중 1381년(우왕 7년) 침구 시에는 왜구의 방화와 파괴로 아예 군청을 동평현으로 이전했다는 이야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해에 ‘왜적이 양산을 침범하여 불을 놓으니 양산 백성들이 그 땅을 잃고 속현 동평에 성을 세우고 옮겨와서 사는데…’라고 했다. 군의 위계도 낮아져서 한동안 양산현(縣)으로 강등됐다.

여말선초의 문인 지식인 남촌 권근의 「양주성루시병서(梁州城樓詩幷序)」에는 이듬해 10월 이후에 피난 가서 떠돌던 백성들이 돌아와 1388년(우왕 1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해 1390년(공양왕 2년)에 양주성(양산읍성)이 완성됐다고 한다. 왜구 대책으로 급조된 이 성은 약 100년 후에 증ㆍ개축을 했는데 『조선왕조실록』 성종 23년(1492년) 기록에 ‘경상도 양산읍성을 쌓았는데, 높이가 11척이고, 둘레가 3천710척이었다’고 했다. 당시의 척으로 높이 약 3.8m, 둘레 약 1.3km가 된다.

고지도들을 보면 양산읍성은 다른 성들과는 달리 남문이 없고 동, 서, 북 3문이 있었는데 서문이 정문이었다. 남문은 암문이었던 것 같다. 성내에는 동헌과 객사를 비롯한 각종 관아 건물과 쌍벽루, 창포정, 창고, 감옥 등 건물이 있었다. 동헌과 객사가 있던 읍치의 중심지가 지금의 중앙동행정복지센터 일원이다.

그러면 양산읍성의 오늘의 모습은 어떨까. 현재까지 선학들과 몇몇 연구기관의 연구 성과와 조사 발굴로 성벽 선(線)과 세 성문의 위치는 거의 정확하게 비정됐다. 얼마 전에는 읍성의 기저부가 처음으로 확인됐고 전체 성벽 기저부도 땅속에 묻혀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성 전체를 둘러싼 해자의 흔적도 발견됐다.

전체 성 둘레 1.5km(지표조사와 지적원도 확인) 중에서 잔존 부분은 6~7개소를 다해서 겨우 40m 정도다. 직접 확인해봤는데, 큰 성돌 위에 바로 시멘트를 부어서 올린 담벽, 성돌들을 제자리에서 밖으로 밀어내고 넓힌 텃밭,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축대, 새 돌들 사이에 옛날의 성돌이 간간이 박혀있는 담, 풀과 쓰레기에 가려진 성벽 등 이것이 지금의 양산읍성의 현실이다. 물론, 이런 상태로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연구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지역 선학들이 오래전부터 양산읍성을 깊이 있게 연구해 그 성과를 공유하고, 읍성 보존, 발굴, 복원, 학술조사, 교육자원으로 활용 등 방안을 여러 차례 제기해왔다. 최근에는 동문을 복원해 삼일로를 통해 항일독립기념관과 이어지는 테마 거리를 조성하자는 제언도 있었다. 전체 복원은 현실성도 없고 실현성도 없겠지만, 복원한다면 우선 동문 복원이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읍성을 복원한다면 우선 동문을 좌우 일정 길이 성벽과 함께 복원하고, 최근에 흔적을 발견한 해자도 일부 복원하면 더 좋겠다. 복원의 예로 참고할 곳으로는 멀리는 순천 낙안읍성과 서산 해미읍성, 가까이는 언양읍성도 있다.

동문 복원은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이 있다. 읍성 동문 일대는 일본 천황가 조상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신 신명신사(神明神祠)가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에 자리하게 하려고 일제에 의해 동문이 헐리고 신작로가 난 가볍지 않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러므로 복원된 동문~삼일로~항일독립기념관~충렬사를 길로 잇는다는 것은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훼손된 양산읍성(민족정신)과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 흘린 양산의 선열(양산정신)을 잇는다는 의미와 상징성이 부여된다. 이 제언이 실현된다면 이 코스의 이름은 ‘양산정신의 길’이 어떨까? 혼자서 미리 생각해 본다.

관련된 연구 용역이나 학술대회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단계가 돼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우리 시에서 양산읍성의 역사적ㆍ정신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보존ㆍ정비ㆍ복원 등 종합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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