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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7] 계속되는 질문..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7] 계속되는 질문에 관한 대답을 찾는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1/06 09:34 수정 2023.01.06 09:34
무크지 ‘아크 5’/ 상지인문학아카데미

이기철
시인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시점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속 시원하게 답을 해주는 쪽은 찾기 어렵다. 괜히 두리번거리게 되고 슬슬 밀려오는 짜증에 넌더리가 날듯하다. ‘답답’이 일상화된 요즘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면 좋으련만 변변찮은 살림살이나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쉬운 일은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상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상대 반응이 어떨지 몰라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매사 불편하고 불안하다.

원인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한시라도 편하게 살아갈 수 없는가? 시대는 변했다고 하지만 ‘새로움’이나 ‘신세계’는 도래하지 않았다. 어쩌면 깜깜한 터널은 한동안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러한 전전긍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집어 든 잡지가 있다. 비정기간행물이라는 ‘무크지’다. 새로운 시대와 소통하고 미래와 조응(照應)해서 공존 가치를 더 한다고 하는 인문 서적이다. 그동안 조용히 지켜봤다. 하고많은 잡지 중 또 하나 더하는 이른바 ‘원 플러스 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선뜻 챙겨지지 않았다. 5호를 읽은 후 비로소 마음이 환해져 그간 펴낸 과월호도 살폈다.

1호 ‘휴먼’, 2호, ‘믿음’, 3호 ‘자연’, 4호 ‘환대’에 이어 드디어 ‘소통’에 이르렀다. 한 권, 한 권에서 보여준 발걸음은 진지했고, 시대 요청에 부응하려는 태도를 발견하게 했다.

무크지 아크 5호 표지.

잡지 이름이 ‘아크(ARCH-)’다. 아카이브 (archive), 아키텍처(Architecture) 등 아키(archi)를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확장한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창간 취지문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다’고 운을 떼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기반으로 예술, 공간, 도시, 건축, 미디어, 일상생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고 한다.

그릇 쓰임새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간 참여 필진 면면을 보면 주어진 명제들에 대해 알차게 논의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호 단일 주제로 다양한 글들을 소개하면서 여러 계층 독자들이 입맛에 맞는 글들을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특정 계층’이나 계급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번 호는 ‘소통’(疏通)이 주제다. 경락(經絡) 마사지, 경락 다이어트가 한때 유행했다. 지금도 그 방법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이유는 기가 막혀서 몸이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몸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큰 병에 이르게 된다. 하물며 인간과 사회는 말해 무엇하랴. 불통(不通)이 지속되면 ‘병목현상’이 가속화된다. 양보 없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한자 소(疏)는 성기게 짠 직물 올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성긴 올 사이를 자유로이 통과한다는 데서 착안해 만든 단어. 촘촘하면 답답하다. 이번 호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글 몇 편이 반갑다.

본문 중 이성철,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중에서.

먼저, 황규관 시인이 쓴 ‘자신과의 대화로서의 소통’. 언어가 가진 역사성을 설명하면서 여러 인물을 불러오고 문학계를 되돌아보고 생태계까지 건드린다. 결론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라는 작가 마음은 진솔하고 엄숙하게 읽힌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김형곤 선생이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는 질문이라기보다 그동안 안다고 밀쳐둔 물음에 관한 반격이다.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서로 생각‘에 ‘서로’가 빠진 위험한 상황을 꼬집는다.

국회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준 선생 글, ‘소통 금지 사회의 기원…’은 왜(why)를 묻는 동시에 어떻게(how) 해결할 것인지 그가 경험했던 일을 상기하며 풀어낸다.

조재희 선생은 영화평론가로서 주제에 적절한 영화를 소개하며 글을 전진하게 한다. ‘접속 1997에서 헤어질 결심 2022로’. 진영과 파벌, 종교와 이데올로기 문제를 연인(戀人)이길 소망하는 ‘연결’로 엮어낸 글은 매우 섬세하고 정밀해 읽는 내내 즐거움을 더했다.

17명 필진이 참여한 한 편, 한 편은 외면하기 차마 어렵다. 이 무크지를 만드는 상지인문학아카데미는 지난 2020년부터 ‘아크’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상지인문학 아카데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점은 부산지역 기업인 ‘(주)상지이엔에이건축사사무소’가 인문학 강좌를 개설, 운영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기업이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에 앞장서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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