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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9] 중요한 일은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49] 중요한 일은 ‘꺾이지 않는 마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2/17 10:01 수정 2023.02.17 10:04
풀뿌리 지역 언론 34년의 기록/ (사)바른지역언론연대

이기철
시인
scene 1
‘뉴스 오브 더 월드’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제퍼슨 키드 대위(톰 행크스)는 참전용사였지만 패잔병이기도 하다. 그는 남북전쟁이 끝난 5년 후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길 원하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신문 기사’를 읽어주는 일이 직업.

어느 날, 정치, 경제, 문화, 치안 등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 독재자 마을을 방문한다. 촌장 격인 그는 흑인, 멕시코인, 인디언을 상대하려면 ‘독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재자는 뉴스는 외면하고 자신을 기리는 ‘용비어천가’를 대독해주길 요구한다. 그는 이를 거절하고 자신이 가져온 신문에서 광산 노동자들이 불굴 의지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역경을 극복한 ‘뉴스’를 들려준다. 독재자는 신문 읽기를 멈추라고 말한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 읽을지 말지를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다. 마을 주민은 드디어 세상 밖 소식을 듣게 된다.

암흑시대, 스스로 등대가 되어 뉴스 읽기로 세상을 바꾼다. 바꾸지 못한 세상, 그는 왜 ‘신문읽어주는 남자’가 됐을까?

주간홍성 창간호.

scene 2
1986년 10월 24일, 동네 소식지에 불과하던 ‘홍동소식’ 사무실에 공문 한 장이 날아든다. 홍성군에서 보낸 문서. 언론기본법 제20조에 규정된 등록 절차를 위배했으니 절차를 이행하라는 명령. 이후 구비서류를 갖춰 등록을 시도했으나 무산. 정확한 이유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85년 5월, 한 달에 한 번 4×6배판 크기, 4면으로 발행되던 마을 소식지에까지 미친 언론 탄압이었다. 주민과 출향(出鄕) 인사들에게 고향, 이웃 소식, 간간이 농정 비판 기사를 싣기도 했다.

홍동소식은 우리나라 최초 주민 주도 소비자협동조합으로 평가받는 풀무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만든 조합원 소식지로 출발했다. 이후 ‘시골 문화사’라는 회사를 설립, 발행을 이어갔다. 그해 12월 20일, 종간호를 낸다. 1면은 영정(影幀)을 연상케 하는 검은 테두리. 폐간 이유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심기를 건드린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7년 2월 2일, 동아일보 고정 칼럼, ‘횡설수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홍동의 자랑거리는 관(官)의 손에 의해 말문이 막히고 언론의 등불이 또 하나 꺼진 셈이다’. 하지만 불씨는 살아났다. 이 사건은 전국 최초 지역신문인 ‘홍성신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1988년 9월 15일 등록, 12월 1일 일반 주간신문으로 창간호를 냈다.

‘풀뿌리 지역언론 34년의 기록’ 표지.

scene 3
2021년 11월 1일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일반 주간신문은 1천196개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마다 거의 지역신문이 발행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지역 신문이 전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자치 분권, 민주주의 확대 영향이 한몫했다. 민중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지지를 받는, 시민운동을 통해 주민들이 정치 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방식을 ‘풀뿌리 민주주의’라 한다.

마찬가지로 ‘풀뿌리 지역언론’도 지방자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입바른 소리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핏줄이 온몸을 가로질러 피를 흘려야 몸이 살 듯 지역도 그러하다.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현실에서 ‘지역에서 내는 소리’를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남다른 소명 의식으로 언론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는커녕 ‘그깟’이라고 과소평가하지 말 일이다.

지역 발전과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해온 지역언론도 상황은 매우 어렵다. 모든 게 중앙집중화된 지 오래고 변화된 미디어 환경도 그렇다. ‘풀뿌리’는 밟아서는 안 된다. 소중하게 여기고 싹이 나고 꽃이 피게끔 북돋아 줘야 한다.

(사)바른지역언론연대 정기총회.

fin
지역주간신문들 전국 연대단체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바지연)에서 지난해 말 펴낸 ‘풀뿌리 지역언론 34년의 기록’은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물이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역사를 담았다. 풀뿌리 지역신문 첫 보고서인 셈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이다.

1부는 태동과 발전, 2부 바지연 출범과 지역언론 정체성 확립 문제, 3부 활동 사항과 신문지원특별법 제정 운동, 4부 특별법 운용 성과와 과제, 5부 바지연 활동과 생존 전략을 담았다. 매우 관심 있게 읽어야 할 부분은 마지막 6부. 대한민국 지역신문 발전을 위해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간담회.

이 책은 평택시민신문 발행인으로 복무하고 있는 김기수 씨가 집필했다. 어제(2월 16일), 대전에서는 바른지역언론연대 정기총회가 열렸다. 참석한 양산시민신문사 김명관 대표에게 의제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주요 논의 사항 몇 가지는 어렵습니다. 복잡해요’. 참석한 이들 깊은 고민이 읽히는 지점이다.

프랑스어 ‘fin’은 ‘끝을 말하는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혁신과 변화를 만드는 선봉에 선 이들에게 필요한 일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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