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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1] 시작해보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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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1] 시작해보면 된다. 힘들더라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3/17 09:40 수정 2023.03.17 09:40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 읽기/ 이권우

이기철
시인
사육장에 갇혀 사는 토끼 두 마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한 마리는 먼저 들어온 선임이고 한 마리는 새내기다. 둘은 매일 배불리 먹고 자는 일이 일과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온해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는 선임 토끼가 새내기 토끼에게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야, 갑갑하지 않니? 저 푸른 초원을 달리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새내기 토끼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동의하고 둘이 탈출을 시도한다. 며칠이 흐른 뒤 이 자유가 왠지 불편해진 새내기 토끼가 선임 토끼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배님, 힘들지 않으세요? 사육장에선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주인님이 일용할 양식을 챙겨 주는데 우리가 직접 밥을 챙겨 먹어야 하니 피곤해요. 이렇게 나와 다니는 건 좋지만 말입니다” 이리해 새내기는 제 발로 다시 걸어 들어가 ‘자발적 수감 생활’을 한다. 허무한 포기인 셈이다.

오래전 모 중학교 독서 프로그램 특강에서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느낀 바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 학생이 새내기 토끼 방식을 택했다. 독서 지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사실, 청소년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요구하는 일은 자신이 없다. 주어진 과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요청까지 한다는 게 무척 힘들다. 이러다 보니 한 권을 완독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보니 친절하게 요약해서 출판하는 책이 부지기수다. 이런 일은 책 읽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줄까 아니면 ‘꼼수’만 배우게 될까? 편리성만 좇다 보면 정작 그 속에 담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마치 독서 행위를 교과서 뒷줄에 선 참고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매년 청소년 권장 도서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 읽기’ 책 표지.

여기 책 읽기 조언자 혹은 도서 평론가를 자처하는 이가 있다. 학교에서 학업을 도와주는 선생이 있듯 책 세상에도 책 숲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제 길’을 찾게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 이권우 선생이 쓴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 읽기’.

비빔밥처럼 섞어 놓았는데도 꽤 읽을만한 하다. 이유는 그가 선행해 읽은 책을 자신 있게 소개할 준비가 돼 있어서다. 책 머리에 저자가 밝혀 놓은 말, ‘부러운 것 두 가지, 두려운 것 한가지’. 첫째 부러움은 우리나라 영화 부흥을 이끈 영화 평론가 역할, 두 번째는 ‘어린이도서연구회’를 꼽는다. 1980년, 어린이들에게 좋은 동화를 주려는 교사와 학부모 단체로 출발, 2020년 12월 현재 전국 12개 지부, 85개 지회에서 4천8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도서연구회 누리집 연혁 참고)

‘아동문학계 NGO’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이들 노력으로 어린이 출판물이 그간 급성장했다. 영화평론가나 이들이 가진 무기는 ‘자발성과 헌신’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길을 이들이 터를 닦고 기반을 만들었다. 한국영화 발전이나 괄목상대할만한 출판문화를 꽃피운 이들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지점은 이러한 성과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이냐는 문제. 하지만 저자는 기대를 걸고 있다. 혼자라도 좋은 책을 가려내 이를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책 읽기는 어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인 이른바 왕도(王道)가 따로 없다. 그가 주문하는 방법은 ‘겹쳐 읽기’와 ‘깊이 읽기’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대화’와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는 겹쳐 읽기고 ‘돈황 석굴’은 깊이 읽기다. 사실 이만한 책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책을 굳이 독서 생활을 위한 가이드로 소개하는 이유는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저자 주장에서 한 발 더 나가 ‘살펴서 찾아 읽기’를 권한다.

‘자기주도(自己主導) 삶’을 강조하는 시절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글 시작에서 말한 사육장 새내기 토끼는 어떻게 됐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 터. 주인이 주는 밥을 먹고 살이 찐 뒤 어느 날 식당에 팔려나갔을 게 분명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생활은 그만 종(終) 치고 만 셈이다.

책이 자기 앞 생(生)에서 무기가 되도록 무장해야 할 때다. 비록 읽다가 지쳐 나가떨어질지라도 시작해보는 일은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아, 참고로 저자 이권우 씨는 절대 ‘게으른 사람’은 아니다. 작품으로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등이 있고 방송 매체에도 출연,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소개하는 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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