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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2] ‘엄지척’이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2] ‘엄지척’이 어떻다고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3/31 09:49 수정 2023.03.31 09:49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이기철
시인
2022년 10월 15일,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졌다. 연락이 끊기고 소식은 두절 되고 패닉상태에 빠졌다. 과장(誇張)된 말이 아니라 격렬하게 체험한 ‘디지털 다크 나이트’(영화, ‘배트맨 다크 나이트’ 차용)였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그간 변명은 특정일에 사용자가 몰려 트래픽이 급증, 병목 현상으로 인해 지연 혹은 기술 불량이라 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숨겨진 ‘예정된 사태’가 있었다.

이 일은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톡’과 일부 웹사이트 메일 송ㆍ수신 불통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일시 마비시킨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원인과 결과, 사후 대책에 관한 목소리는 핏대만 세우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과는 ‘이모티콘’ 선물로 흐지부지됐다. 사건 배후는 데이터센터였다. 화재(火災) 때문에 전력이 중단됐고, 그 때문에 모든 게 중단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엄지척’으로 대변되는 ‘좋아요’를 누르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PD이자 기자인 기욤 피트롱이 쓴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료와 인터뷰, 취재를 통해 답을 찾아 나선 증언이자 증거다. 하지만 결론은 ‘답답’하다.

그는 중국 희토류, 알래스카 석유, 수단 고무 원자재 생산지 등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다. 이 책은 디지털 산업 문제를 둘러싼 국가와 기업 간 패권 다툼과 그 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소름 끼치도록 조명하고 있다. ‘미래는 날로 커져만 가는 기술의 힘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지혜 사이에서 줄타기가 될 것’이라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남긴 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책 표지.

‘엄지척’ 혹은 ‘좋아요’에는 어떤 내밀한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수없이 반복되는 ‘클릭질’은 지리, 생태. 지정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몰랐다. 단지 호응과 반응 사이에서 환호 또는 실망하는 개인, 즉, ‘나’만 생각했다. ‘디지털 라이프’는 ‘원더풀 라이프’를 보장한다는 듯이.

저자가 설명해주는 ‘좋아요’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이렇다. 우선 PC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있어야 한다.

전송층이라 일컫는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 등이 필요하다. 전선은 무조건 깔려 있어야 한다. 당연히 사업자도 있어야겠지. 다음은 이를 분산 배분, 결과에 도달하게 할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기술’은 이 부분에서 잠시 사라지고 ‘예술’로 탄생한다. 대규모 이동 경로는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이에게도 ‘톡’으로 이야기하는 현실이다. 놀라운 사실 하나, 10m 떨어져 있는 사이라도 ‘좋아요’는 수천km를 여행하고 나서 도달한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

저자는 2019년 봄, 중국 최북단에 있는 헤이룽장성에 간다. 그곳에는 석탄과 흑연을 생산하는 곳이다. 특히, 흑연은 ‘접속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 광물이다. 이게 없으면 대부분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작동이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 노동자들은 ‘접속’을 위해서 ‘접촉’해서는 절대 안 되는 물질로 일상을 꾸려간다, 유독하고 강력한 부식제 ‘불화수소산’을 견디고 있다.

세상은 ‘소통’하는데 그들은 ‘불화’ 속에 산다. 기자가 물었을 때 한 말, ‘우리는 흑연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스마트폰은 340억대. 여기에 들어가는 원자재만 50가지 이상이다. 흑연 인생만 그러하겠는가?

영화 ’접속‘ 한 장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에는 많은 앱(APP)이 깔려 있다. 이 모두는 ‘생태 발자국’을 남긴다. 디지털 기술에 필요한 이산화탄소 및 전기 사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 책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근거만 제시할 뿐이다. 세계는 ‘앞으로 앞으로’만 강조할 뿐이다. 페이스북은 분당 로그인 130만회. 구글 검색은 410만건, 유튜브 동영상 시청은 470만회, 온라인 쇼핑 지출액은 110만달러다.

1932년, 과학이 사회 모든 면을 관리, 지배하고 인간 자유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이미 예측하고 그린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는 과연 도래했는가?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받은 순간, 나는 행복한가? 아님 스트레스인가? 1997년 영화, 한석규, 전도연 씨가 등장하는 ‘접속’에는 사랑, 이별, 그리움, 기타 등등이 있지만, 현재 우리 ‘접속’은 어떤 처지인가?

저자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취재 일정 사이 사이에 자연보호구역 연못에서, 포도밭에서 오래된 돌이며 나무, 동물들과 늘 함께였고 가족은 늘 사랑이었다.’ 이 글은 마무리하는 나 역시, 여기저기 탄소발자국을 찍으며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 익명(匿名) 혹은 실명(實名)을 사용해가며, 끝내는 실명(失明)을 눈치채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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