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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저출산은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오피니언

저출산은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4/04 10:09 수정 2023.04.04 10:09

송영조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저출산과 민족주의는 언뜻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인 것 같지만, 얼마 전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 만나 우연히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ㆍ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하다. 이는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가 평균 1명도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면서, 저출산 원인과 해법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에 대해 저출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잘사는 나라의 보편적 현상이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2020년 기준 OECD 38개 국가 평균이 1.59명이고, 우리나라(0.84명) 다음으로 낮은 이탈리아가 1.24명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상황은 매우 예외적 현상이었다. 수도권 집중이 불러온 결과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서울이 0.59명으로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이 0.72명으로 다음인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저출산 원인을 한마디로 명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래 삶의 예측이 불가능해진 것에서 이유를 찾았다. 과거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하면 곧 결혼했다. 꼰대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달셋방에서 시작해서 전셋집으로 이사하고, 이후 열심히 일해서 자가 주택을 소유한다는 기대를 누구나 갖고 있었다. 이런 기대가 가능했던 것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취업 기회가 있었고, 사실상 종신고용이 보장됐기에 미래 삶이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됐다.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물론, 고용 안정성 또한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과 같은 매우 좋은 일자리를 제외하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 마디로 시작이 힘들더라도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예측이 가능했던 과거엔 결혼 후 겪는 육아와 자녀교육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현재 시점엔 이를 매우 꺼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판단한다.

연구자 간 저출산의 원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로 주제가 넘어갔는데, 필자는 결국엔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의 이런 견해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이 경우 우리 사회에 과잉화된 민족주의 역시 자연스럽게 약화할 것이라는 우발적 견해 또한 제시됐다. 2021년 다문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구는 34만6천17가구인데, 82.4%가 결혼이민자가구라고 하며, 가구 수는 총가구의 1.8%, 가구원은 109만명으로 총인구의 2.1% 수준이라고 한다. 이민을 받아들이면 그 수가 많이 늘어날 것이고, 이 경우 다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단일민족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과잉화된 민족주의를 비판해온 자신의 입지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지만 이는 헛된 희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사람들은 흔히 유전적으로 인종들, 민족들 사이에 차이가 있기에 인종이나 민족 사이 구별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간에도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생물학적 차이를 부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정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의 혼성 자녀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혼성 자녀에 대해선 매우 큰 차별의 시선을 갖고 있다. 더욱이 문화적 혼성이 명백한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다양한 민족 집단 간에 문화적 전통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나면서 민족 간, 인종 사이 구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문화적 혼성이 활발하게 진행됨에도 인종과 민족은 자신을 다른 집단과 구별하려 하는가? 다시 말해, 인종 간 민족적 구별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는 집단 간에 존재하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민족 간 구분을 통해 다르게 대우해야 해당 사회가 지닌 부ㆍ명예ㆍ권력 등과 같은 희소한 자원을 배타적으로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설령 이민을 통해 우리 사회 문화적 혼성이 활발해지더라도 과거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민족적 정체성이 출현해 우리나라 사람들 간 구별이 나타날 것임을 의미한다. 공통의 혈연이나 언어가 아닌 다른 형태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집단을 구분하려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사회의 과잉화된 민족주의를 비판해온 연구자 역할 역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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