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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3] 도대체 무슨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3]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4/14 09:44 수정 2023.04.14 09:44
당신의 문해력/ 김윤정

이기철
시인
먼저, 두 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하나는 지난 2020년 8월 17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사흘’이라는 명사. 광복절인 15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인 17일을 대체 휴일로 정하면서 3일간 연휴가 생겼는데 ‘사흘’을 ‘4흘’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도대체 4흘이라니? 그럴 수도 있는 일, 무식한 작태라는 둥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사흘’은 ‘세 번의 낮과 세 번의 밤이 지나가는 동안’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즉 ‘3일 정도 기간’을 말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 역시 같은 해인 2020년, 디트로이트시 캘리포니아주 일부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주요 이슈는 학교는 졸업했지만, 제대로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게 돼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등 피해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교육적 의료사고’라 하는데 학교 책임을 묻는 계기가 됐다. 교육 과정에서 적절한 학습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기획하고 자녀 교육에 관한 저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는 김윤정 작가가 쓴 ‘당신의 문해력’은 위 두 사건(소동 혹은 소란이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을 바라보는 지점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공부의 기초를 키워주는 힘’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었으나 필자는 그것보다는 ‘문해력’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

‘당신의 문해력’ 책 표지.

‘말귀도 못 알아듣는 일’도 힘들지만 ‘무엇을 말하는 문장인지도 모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튼튼한 체력을 뒷받침해주는 근력(筋力)이 필요하듯 이른바 ‘문장 강화’도 그러하다. 단어도 모르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문(地文)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접하면 답답하다. 이러니 의사소통은 단절되기 마련이다.

자, 그러면 문해력이란 무엇인가? 유네스코는 “문해란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해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어려운가?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흔히, 어른들이 ‘아이고, 우리 새끼. 한글 빨리 뗐네’라고 하던 말. 그 아이가 유난히 똑똑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서다. 젖먹이 때부터 부모가 읽어주던 책을 통해 자연스레 다양한 어휘를 기억 속에 간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에 관한 긍정 의식도 생기게 된다. 많이 읽는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형성된 결과다.

2008년 국립국어원이 우리나라 성인 문맹률을 조사한 적 있다. 당시 결과는 1.7%에 불과했다. (지금은 더 낮아졌을 수도 있다) 문맹(文盲)이란 배우지 못해서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문맹률은 낮은데 왜 문해력은 젬병일까? 문해력은 바로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비단 문학 작품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공지문, 설명서, 계약서, 공문서에 적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국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에 필요한 기초 이해 능력을 어릴 적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아이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가 기초학력 부족이라고 난리 친다. 아니다. 학과 과정을 따라잡을 기초 이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해해야 적용하고 성적이 쑥쑥 올라갈 것 아닌가? 결론은 기초학력 부족은 문해력 부족이라고 말해도 된다. 요즘 취업을 앞둔 이들에게도 면접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문해력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능력이 있는지 우선 살핀다. 직원이 되면 자기가 맡은 바 업무에 관해 정확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는 뜻이다.

영상이 텍스트를 위협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영상이 온전히 텍스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디지털 역습’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은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절망하지 말라는 격려에 있다. 문해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훌륭한 성장(성공이라고 해도 된다)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만, 그 고지를 탈환하는 자세는 ‘바로 지금’에 달렸다.

띄어쓰기, 문법도 필요하겠지만 문장을 이해하는 훈련도 함께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흔히 하지 않는가? 이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는 말을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세요?’라고 말하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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