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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사기 열전 6] 지혜로운 충고, 안영(晏嬰)..
오피니언

[송철호의 사기 열전 6] 지혜로운 충고, 안영(晏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4/20 13:24 수정 2023.04.20 13:27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안영(晏嬰)’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로, 제나라 영공과 장공, 경공 등 3대에 걸쳐 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 재상이 된 뒤에도 한 벌의 옷을 30년이나 계속해서 입을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해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벼슬에 있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충간과 직언을 했으며 의롭게 행동했다. 안영은 관중 이후 제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안영에 대해 “만일 안자가 아직 살아있어 내가 그를 위해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 수 있다면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칭송했다. 자존심 세고 비판의식이 강한 사마천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칭송이다. 안영은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게 하는 지혜로운 충고로 유명하다.

2.
제나라 경공은 술을 좋아해 늘 지나친 음주로 국정을 그르치곤 했다. 한 번은 경공의 술자리가 7일 동안 밤낮없이 계속된 적이 있다. 경공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주색에 빠져 그칠 줄 몰랐다. 홍장(弘章)이란 경대부가 이 꼴을 보고는 참다못해 궁으로 들어가 술자리를 그만 끝낼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경공은 껄껄 웃으며 “술은 과인의 생명과 같거늘 어떻게 끊나”라며 모른 척했다. 홍장이 죽기를 각오로 다시 아뢰려 할 때 안영이 들어왔다. 홍장을 본 안영은 황급히 예를 갖추며 두 손을 모아 “축하드립니다, 대부! 정말 축하드립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홍장은 깜짝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고, 경공도 이상하다는 듯 연신 안영의 눈치를 살폈다. 정작 안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께서는 신하의 충고와 의견을 잘 받아주시는 주인을 만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아십시오. 행여 걸주와 같은 폭군을 만났더라면 진작에 목이 어디론가 달아났을 테니까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경공은 진지하게 “홍장 대부, 그대의 고충을 내가 어찌 모르겠소. 당신의 충고를 받아들여 최대한 절제하도록 하겠소이다”라고 말했다. 이 틈에 안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공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음주는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소통시켜 우의를 다지게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환공 때 남자는 음주 때문에 농사일을 그르쳐서는 안 되고, 여자는 베 짜는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풍기는 순박하고 곧았습니다. 밖으로 도적이 늘지 않았고 안으로 음탕한 짓거리도 없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조정 일은 팽개치고 음주에만 빠져 계시고 근신들마저 그에 따라 못된 짓을 저지르니 이는 나라에 큰 해가 될 따름입니다”

안영의 충고에 감동한 경공은 잘못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안영은 늘 백성을 위해 일을 꾀했다. 어느 날 경공은 비첩과 백관을 거느리고 야외로 놀러 나갔다. 일행은 복숭아 숲 사이에 앉아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한껏 취해 있던 경공이 문득 고개를 들어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보는데, 몇 마리 들개가 백골 무더기 위를 돌아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기분이 든 경공은 장소를 바꿨다. 그러고는 다시 궁녀들과 희희낙락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옆에서 경공을 보좌하던 안영은 아주 슬프고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영문을 모르는 경공은 그 까닭을 물었고 안영은 앞쪽의 백골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살아서도 때를 만나지 못하고 죽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입니다” 경공은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안영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옛날 우리 환공께서는 놀러 나가셨다가 길에서 굶주린 사람을 만나면 먹을 것을 내려주셨지요. 또 병든 자에게는 돈을 줘 치료하게 하셨고, 지친 백성들을 보면 노역을 줄여주셨으며, 힘들게 사는 백성들을 만나면 세금을 면제해주셨지요. 그래서 백성들은 국군이 저 멀리 십 리 밖에서 보이기만 해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했지요. 만약 저들이 그때 태어났더라면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며 저렇게 아무도 수습해 가지 않는 백골이 되어 황야에 버려지지 않았겠지요”

경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안영이 충고했다.

“지금 대왕께서는 한 번 놀러 나왔다 하면 사방 40리 이내 백성들은 모두 대왕의 놀이를 위해 수레며 말 따위와 같은 온갖 재물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은 구제하지 못하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죽은 뒤 저렇게 백골이 돼 서로를 쳐다봐야 하니 이 얼마나 처량한 신세입니까.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저들에게 한마디 말도 던지지 않고 춤과 노래판만 벌이니 군주의 도리를 잃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한숨을 돌린 안영은 계속해서 더욱 노골적으로 말했다.

“재물이 다 떨어지고 힘이 다 빠지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양할 수 없게 됩니다. 사치와 안일함에 빠지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위아래 마음이 서로 갈라지고 덕이 떠나가며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서로 친목하지 못하면 나라가 쇠망할 조짐입니다. 조종의 기틀을 계속 보전하고 강산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백성을 내 몸처럼 아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근본입니다!”

안영의 말을 듣고 난 경공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바로 명령을 내려 놀이를 중단하고 무사들을 시켜 백골들을 수습해 매장하도록 했다. 궁으로 돌아온 경공은 창고를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고, 복숭아 숲 사방 40리 안에 사는 백성들의 1년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줬다. 경공은 또 석 달 동안 놀이를 하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금지령을 내렸다.

3.
안영은 탁월한 외교가로서 지혜로운 충고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유명하다. 그는 거만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평등하게 상대를 대했으며 평화로운 분위기로 관계를 이끌었다. 그의 발자취는 여러 제후국에 미쳤는데, 그 나라가 크든 작든 그는 수준 높은 외교 수단과 빛나는 외교적 언어에 소박하고 절도 있는 자세로 외교에 임했다. 경공이 안영을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을 때 일이다. 초나라 영왕은 안영이 몸집은 작다는 것을 알고는 안영에게 수치심을 주고자 했다. 안영은 평상시처럼 베옷에 마른 말이 이끄는 가벼운 마차를 탔다. 수행원들도 모두 소박한 차림이었다. 안영 일행이 초나라 수도에 도착했을 때 성문이 잠겨 있었다. 성 문지기가 임시로 뚫은 한쪽 편의 작은 쪽문을 가리키며 “상국께서는 그 문으로 충분히 출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굳이 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안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건 개구멍 아닌가? 개구멍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지. 개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면 개구멍으로 출입하겠지만, 인간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사람이 출입하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당연하지” 초왕은 서둘러 대문을 열고 안영 일행을 맞도록 했다.

초나라 영왕은 말로만 듣던 볼품없는 안영의 실제 모습을 보고는 “제나라는 인재가 그렇게 넘치는데 어째서 그대를 우리에게 파견했단 말인가”라고는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비웃듯 크게 웃었다. 안영은 “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늘 그 대상을 살펴서 보냅니다. 상대국이 예의가 있는 나라 군주라면 그에 맞춰 덕이 고상하고 명망이 높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고, 무례하고 거친 나라의 어리석은 군주라면 역시 그에 맞는 재주도 없고 비루한 자를 골라 보내지요. 제나라에서 저는 덕도 능력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초나라에 이렇게 사신으로 파견된 것입니다!” 초 영왕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빨리 술상을 차려 안영을 접대하라고 명령했다.

4.
안영은 평생을 정치에 종사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풍부한 지모를 발휘했고, 공평무사하게 나라와 군주에 충성했다. 또 백성을 위하는 일을 천명으로 여겼다. 그는 매우 어질고 유연하였지만, 옳은 일을 할 때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토록 고위직에 있었지만 늘 검소하여 사치와는 멀었다. 그는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잘 알았으며, 비유와 직설을 적절히 잘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화나지 않게 하면서도 뜻을 성취했다. 요즘 세상에는 주고받는 말들이 너무 거칠다. 말에 재치와 품격은 없고 위아래 구분 없이 막말이 대세다. 충고라고 하는 말은 상대를 자극해 기분 나쁘게 하는 지적질이 대부분이다. 안영이 무려 57년 동안이나 제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혜로운 말솜씨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의 지혜로운 말솜씨에 관한 고사는 무수히 많지만, 위의 두 개라도 눈여겨봐서 가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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