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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4] 사는 게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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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4]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4/27 09:25 수정 2023.04.27 09:25
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 마셜

이기철
시인
살면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할 때가 수시로 있다. 이런 때면 종종 꺼내 읽는 시 한 편이 정호승 시인이 쓴 ‘슬픔이 기쁨에게’다. 행과 연을 더듬어 갈수록 ‘먹먹’과 ‘막막’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벼워졌다 반복된다.

사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인생을 괴로움이 끝이 없는 세상이라 해서 ‘고해’(苦海)라 하지 않는가? 본인이 원하거나 부탁해서 ‘삶’을 꾸려가는 일은 결코 아니지만 주어진 이상 ‘살아가고’, ‘살아내야’ 하니 도리 없다. 걸음을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도 계속 가라’는 그런 책이다. 인생론 혹은 행복론에 관한 지침서가 아니라 평소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관해 질문과 답을 편하게 나누는 내용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잔잔한 물결이고 저 멀리까지 닿는 파문이다.

저자 조셉 M. 마셜은 교사이며 역사가, 민간전승을 연구하는 민속학자이자 미국 라코타 부족 전통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기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인디언 삶을 연구하면서 얻은 지혜를 나눔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다.

이미 인디언 전통 삶과 철학에서 길어 올린 지혜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쓴 ‘라코타 웨이’, ‘할아버지와 함께 걸으며’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후속편이라 해도 된다. 인생이라고 말하는 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에 관해 주인공인 손자 ‘제레미’와 할아버지 ‘늙은매’ 대화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계속 가라’ 책 표지.

현자(賢者)라고 읽히는 할아버지 이력은 간단하다. 태어나 동서남북 600km 이상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인생 그 자체다. 평생 땅을 일구며 씨앗을 뿌리고, 말을 키우며 사냥도 하고 집 짓는 목수(木手)로 살았을 뿐이다.

첫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할아버지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지요?’. 맨 마지막 책을 덮으면 들려 오는 할아버지 목소리는 ‘그래도 계속 가라’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책은 삶이라는 여행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꺼낸다. 이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담금질, 참된 강인함, 정신의 깊이, 삶을 지속해야 할 명백한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서 할아버지를 ‘하느님’ 혹은 ‘위대한 힘’으로 해석해도 무리 없다. 수시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얼마나 많은가? 고난과 역경을 견디는 법은 ‘고잉’(Going)이 최선이다. 좌절하거나 포기하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나고 만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한 말을 평생 지침으로 삼았다. 자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네’라고 반추(反芻)한다. 희망을 향해 내딛는 가장 열악한 한걸음이 가장 맹렬한 폭풍보다 훨씬 강하다는 가르침을 새기면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으며 배부를 때도 있고 배고플 때도 없는 법’이라는 게 할아버지가 남겨준 ‘말씀’ 전부다.

이 책을 번역한 국어 교사인 유향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 역시 사랑하는 가족을 암으로 잃고 정신이 멍한 가운데 사는 게 몹시 힘들었다’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한 책이라는 말이다. 삶은 양면성을 가졌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여기서 멈추고 싶을 때. 그때마다 다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은 ‘딱 한 걸음만 더!’. 여기에 더해 ‘그래도 계속 가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응원할 일이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늙은 사시나무 아래서 나눈 마지막 대화. ‘나뭇잎이 내는 목소리, 들리세요?‘, ‘물론이지. 삶이 말하고 있는 거란다. 그래도 계속 가라고 말하고 있구나’.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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