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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5월의 ‘날’들과 세계인의 날..
오피니언

5월의 ‘날’들과 세계인의 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5/09 10:35 수정 2023.05.09 11:57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계절의 여왕 5월 달력을 보면 유난히 무슨 무슨 ‘날/일/데이’가 많다. 가히 무슨 무슨 ‘날’의 여왕이라고도 할만하다. 날짜순으로 열거해 보면 5월 1일 근로자의 날부터 2일 오이데이ㆍ오리데이,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0일 유권자의 날ㆍ바다식목일,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ㆍ입양의 날, 12일 자동차의 날ㆍ국제 간호사의 날, 14일 식품안전의 날ㆍ로즈데이, 15일 스승의 날ㆍ성년의 날,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 발명의 날, 20일 세계인의 날, 21일 부부의 날, 25일 방재의 날ㆍ차의 날ㆍ지역 상생의 날, 27일 부처님 오신 날, 끝으로 31일 바다의 날ㆍ세계 금연의 날까지다.

무려 25개의 ‘날’이 있는데, 여기에 절기인 입하(6일)와 소만(21일) 그리고 기념일이라고 하기에는 논란이 있는 5.16도 있다. 같은 날짜에 겹치는 날들을 각각 하루로 치면 모두 28일이 된다. 거의 한 달 전체가 무슨 무슨 ‘날’이다.

그러면 이 중에서 다소 생소하고 처음 들어봄 직한 ‘날’ 몇 가지를 살펴보자. 2일 오이데이는 농촌진흥청에서 오이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해 지정한 날이며, 이날은 또 오리데이와 겹치는데 농협에서 오리고기 소비 촉진을 장려하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10일 바다식목일은 바닷속에 해조류를 심는 날이다. 바닷속 생태계 중요성과 황폐화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범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바다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한다. 12일 자동차의 날은 1999년 자동차 수출 누계 1천만대 달성을 기념해 2004년에 당시 산업자원부가 제정한 날이다.

14일 로즈데이는 연인들이 사랑 표현으로 장미를 주고받는 날인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월 14일을 연인들의 날로 기념하는 이른바 ‘14일 기념일’의 하나로 비공식 기념일이다. 기업의 상술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도 하다.

25일 차의 날은 1981년에 (사)한국차인연합회에서 민족의 차문화 전통을 전승하고 새로 한국 차 문화를 창조하려는 뜻으로 입춘에서 100일이 지날 즈음 햇차가 나오는 시기인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제정했다. 참고로 유엔식량농업기구가 2020년에 제정한 세계 차의 날은 5월 21일이다.

27일 ‘부처님 오신 날’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면서 또한 잘 모르는 날이기도 하다. 물론, 이날은 음력으로 4월 8일, 즉 4월 초파일이다. 올해 서기 2023년은 불기 2567년인데 서기 연도에서 544년을 더하면 불기 연도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불기는 불탄기원(佛誕紀元)이 아닌 불멸기원(佛滅紀元)을 뜻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올해 불기 2567년을 석가 탄신 2567년으로 알고 있는데, 석가는 입멸 시 80세였으므로 올해는 석가 탄신 2647년이 된다. 태어난 날짜는 맞지만 태어난 해는 아닌 것이다. 단기(檀紀)는 단군 즉위 기원, 공기(孔紀)는 공자 탄신 기원, 서기(西紀)는 예수 탄신 기원(실제로는 몇 년 차이가 난다)이지만, 불기(佛紀)는 석가 입멸(入滅) 기원이다. 굳이 석가의 탄생연도를 계산하면 불기 전 80년, 서기 전 624년이 된다.

많은 ‘날’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세계인의 날’(5월 20일)이다. 100여년 전에 벌써 우리 양산에는 ‘세계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날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다문화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날이다. 법무부 주관으로 2008년부터 시행된 세계인의 날은 올해로 16년째를 맞이한다.

상북면 대석마을에 있는 세계인환영비. [양산시민신문 자료]
그런데 이미 우리 양산에는 올해로 꼭 100년째를 맞이하는 ‘세계인환영비’가 있다. 상북면 대석마을 입구에 서 있는 이 비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00년 후를 살았던 선각자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 1870~1934) 선생이 세운 것이다. 풍화돼 글자가 희미하지만, 글쓴이의 판독으로는 계해년(癸亥年), 그러니까 1923년의 일이다. 100년 전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세계인 환영’이라니?

당시로는 드물게 영어가 되던 한말 개화 청년 권순도는 1890년대 영국인 부산 해관장의 딸 리즈 헌트(Liz Hunt)와 인종과 국경,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는, 그러나 금지된 사랑으로 부산의 외국인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러브스토리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후 국제시장에서 포목점을 경영해 큰 부를 축적한 권순도 선생은 고향 대석마을로 돌아와 여러 차례 교육사업과 국채보상운동에도 기부하고, ‘세계인’이라는 개념조차도 없던 시절에 마을에 ‘세계인환영비’를 세웠다.

위정척사론의 정신적 지주이며 조선의 마지막 보수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을 사숙(私淑)하고 의충단(義忠壇)을 만들어 기렸던 이의 행보라고 생각되지 않는 아우름의 실천이다. 선생은 100년 전에 이미 넓고 긴 안목으로 시대를 앞서간 ‘세계인’이었다. 겉멋만 든 한낱 개화 건달이 아니었다.

한 저명한 평론가가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을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길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오는 20일 세계인의 날에는 건립한 지 꼭 100년, 크게 ‘꺾어지는 해’를 맞은 세계인환영비와 함께 권순도 선생의 현실과 미래를 보는 넓고 긴 안목과 실천을 되새겨 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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