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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5] 까짓것 미련을 두지 말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5/12 09:10 수정 2023.05.12 09:10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이기철
시인
제니퍼 L 스코트가 쓴 ‘시크한 파리지엔 따라잡기’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프랑스인은 옷이 열 벌밖에 없다’는 제목으로 출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3권까지 나왔다.

프랑스 이야기라고 해서 저자도 그러리라는 단정은 금물. 이 책은 그곳에 교환학생으로 반년간 살았던 이가 썼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파리 사람들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열 벌 옷으로 돌려 입기 가능한 생활을 실천했다. 집에 있던 옷 70%를 버리는 행동을 실천에 옮기며 생활 방식을 ‘미니멀 라이프’로 바꿔갔다.

이 책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 확실한(저자도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다.) 전직 기자 출신인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옷 이야기는 아니다. 생활 전반에서 과하게 혹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쓸모 있다고 여긴 것들이 알고 보니 없어도 그만이었다는 깨달음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문체는 통통 튀고 가볍게 보이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아무것도 못 할 바에는 존재 자체도 가치가 없으니 버리면 된다’는 말.

저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당장 현실로 다가온 전기 부족 때문에 생활이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시작된 일상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고 수시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간 불편을 모르던 삶에서 ‘편리’가 실종되니 얼마나 나약해지고 형편없어지는지 실감하게 된 것.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책 표지.

자, 그러면 그녀는 무슨 일을 시작했을까?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결심이었다고 토로한다. 그간 풍족하게 누렸던 소비, 전기, 아끼던 물건들, 가스, 수도, 넓은 집, 마침내 퇴사까지. 그 결과 남은 것은 ‘작고 쓸쓸한 생활’이라 자조(自嘲) 섞인 소리를 하지만 실제는 성공하고 있다는 겸손이고 더 이루기 위한 도전은 계속하고 있다는 언질이다. 청소기 버리고 걸레를, 전자레인지 없애고 찜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간 익숙했던 편리함과 하나씩 이별하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요가 수행 방법 중 ‘단사리’(斷捨離)라는 게 있다. 들어오는 물건을 차단(斷)하고 집에 있는 물건은 버리고(捨) 물건에 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離)는 개념이다. ‘원래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지금부터 다르게 사는 사람’은 딴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스스로 변화를 수용한 일, 그깟 일을 과제처럼 무겁게 받아들이며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경건하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하다. 그녀 태도 변화는 원전 사고가 원인을 제공했지만, 실천은 내일을 위한 끝없는 노력이었다.

따지고 보면 ‘편함’을 위해 지급해야 할 대가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버리고 산다. 더 나은 제품을 선호하는 이상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이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과연 ‘착한 소비’인지 생각해야 마땅하다. 편리하다 하다는 이유 하나로 과소비에 환경 오염은 당연히 따라오게 된다.

소유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자유롭다는 생각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인생은 사는 동안 내내 ‘불만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불만이라는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편리함에 길든 습관과 익숙함을 버려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여러 장 삽화 중 하나.

영화 ‘길’(La Strada)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젬파노(안소니 퀸)가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에게 한 말. 길 가 돌멩이를 주워 들어 보이면서 ‘세상에서 쓸모없는 건 없어’라고 위로해 주는 장면이다. ‘바로 이 돌멩이처럼…’이라며 여자에게 말한다. 여자를 ‘돌’로 비유한 점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주인공 역할을 보면 이 대사는 그 여자를 무시한 말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저자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감한다. ‘세상 한구석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나 역시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매일 확인한다’고. 버린다는 일은 결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헤어짐은 매우 비통하고 슬픈 일이다. 어쩌랴? 헤어지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게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법정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 혹은 궁색한 빈털터리가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자는 뜻이다. 쓸데없는 것은 버리자. 미련을 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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