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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사기 열전 7] 잘라야 할 때 자르지 못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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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사기 열전 7] 잘라야 할 때 자르지 못하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6/23 09:46 수정 2023.06.23 09:46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춘신군(春信君) 황헐(黃歇, ?~기원전 238년)은 전국시대 초나라 대신으로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위무기와 함께 전국시대 4공자로 유명하다. 이들은 각각 자기 휘하에 식객 수천명을 거느리며 전국시대 정국을 주도했다. 외교책략가로서 춘신군 황헐은 박학다식했으며, 문장과 언변 모두에서 뛰어났는데, 당대 최고 유세가 범수한테서 ‘군자’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대단했다.

춘신군은 초나라 경양왕(頃襄王, 재위 BC 298∼BC 263) 때 관직에 올랐다. 진(秦)의 장수 백기가 초를 공격해 오자 사신으로 진에 파견돼 진의 소양왕(昭襄王)을 설득해 진과 초가 동맹을 맺도록 함으로써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이때 춘신군이 소양왕을 설득하면서 한 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구절 두 개가 있다.

“신은 사물이 끝에 이르면 되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여름과 겨울이 그것입니다. 또 너무 높으면 위태로워집니다. 바둑돌을 쌓는 것이 그렇습니다.(物至則反 冬夏是也. 致至則危. 累棋是也)”

“『시경(詩經)』에 ‘없지는 않으나 끝이 좋은 경우는 드물다’고 했고, 『역경(易經)』에는 ‘여우가 (조심조심) 물을 건너지만 꼬리를 적시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하긴 쉽지만, 끝까지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易曰 ‘狐渉水, 濡其尾’. 此言始之易 終之難也)

사물이 끝에 이르면 되돌아간다는 말, 얼마나 이치에 맞는 말인가? 세상에는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변화는 순환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소식이 지은 <전적벽부>에서 소식과 객이 주고받은 말에 나온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절정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지게 마련이다. 춘신군은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진나라 소양왕에게 말한 것이다. 현명한 소양왕이 설득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2.
춘신군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는 그가 진나라에 억류된 초의 태자를 구해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왕 자리를 계승하게 한 일이다. 조금 길지만 『사기 열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황헐이 약속받고 초나라로 돌아오자 초나라는 황헐과 태자 완(完)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니 진나라는 그들을 머무르게 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초 경양왕이 병이 났으나 태자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초 태자와 진나라 재상 응후(應侯)는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황헐은 응후에게 유세하길 “상국께서는 정말 초 태자와 사이가 좋습니까?”라고 했다. 응후가 “그렇소”라고 했다. 황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초왕은 아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 진나라는 그 태자를 돌려보내느니만 못합니다. 태자가 즉위하면 틀림없이 진나라를 더욱 귀중하게 섬길 것이고 상국에 대한 고마움은 무궁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끼리 더욱 가까워지면 만승의 나라의 군주 한 사람을 얻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진나라는 초나라 태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냥 함양의 한 평민일 뿐입니다. 초나라가 다른 태자를 세우면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친한 나라를 잃고 만승의 나라와 화친을 끊는 것은 계책이 아닙니다. 상국께서는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응후가 이를 진왕에게 전했다. 진왕은 “초 태자의 사부를 먼저 보내 초왕의 병을 살피게 하고 돌아온 다음 다시 의논합시다”라고 했다. 황헐은 초 태자에게 이런 계책을 일러줬다.

“진나라가 태자를 구류시키는 것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진나라를 이롭게 할 힘이 없고, 이 황헐은 그것이 몹시 걱정됩니다. 그리고 (초나라에는) 양문군(陽文君)의 두 아들이 있는데 왕께서 돌아가시면 태자는 국내에 안 계시니 양문군의 아들이 후계자로 옹립될 것이 분명하니 태자께서는 종묘를 받들 수 없게 됩니다. 진나라에서 도망쳐서 사신들과 함께 나가느니만 못합니다. 신이 남아서 죽음으로 감당하겠습니다”

이에 초 태자는 초나라로 가는 사신의 마부로 변복하고 관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황헐은 숙소에 머무르며 병을 핑계로 사람 만나기를 사절했다. 태자가 이미 멀리 가서 진나라가 뒤쫓을 수 없게 되자 황헐은 자진해서 진 소왕에게 “태자께서는 이미 귀국길에 올라 멀리 가셨습니다. 황헐은 죽어 마땅하니 죽여주십시오”라고 했다. 소왕이 크게 성을 내며 그의 자살을 받아들이려 했다. 응후가 “황헐은 신하 된 몸으로서 자신의 몸으로 자기 군주를 섬겼습니다. 태자가 즉위하면 틀림없이 황헐을 기용할 터이니 죄를 묻지 않고 돌려보내서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느니만 못합니다”고 했다. 이에 진나라는 황헐은 돌려보냈다. 황헐이 초나라로 온 지 석 달, 초 경양왕이 죽고, 태자 완(完)이 즉위하니 이가 고열왕(考烈王)이다. 고열왕 원년에 왕은 황헐을 재상에 등용하고 춘신군(春申君)에 봉해 회수 이북 땅 열두 개 현을 줬다.

『사기 열전』의 본문 내용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춘신군 이야기가 구구절절이 맞다. 태자를 억류해 이익을 꾀하고자 하는 진나라 소양왕 생각에 춘신군은 초나라 경양왕이 죽으면 인질로 잡혀 있는 태자 대신 다른 사람이 왕이 되게 되니, 이는 태자를 보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진나라에 우호적인 태자를 돌려보내 초나라 왕이 되게 하는 것과 태자를 억류해 다른 사람이 초나라 왕이 되게 하는 것은 과연 어는 것이 더 진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일까. 또 태자가 탈출해 곧 초나라 왕이 될 것인데, 초나라 왕의 생명의 은인인 춘신군을 죽게 하는 것과 그를 보내 초나라 대신이 되게 하는 것 중 어는 것이 더 진나라를 위하는 길인가. 아마도 춘신군을 죽게 했으면 진은 초나라 왕의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3.
현명했던 춘신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춘신군이 죽은 이유를 두 마디로 정리하면 ‘욕심과 자만’이다. 춘신군은 초나라에서 왕에 버금갈 만한 부와 권력을 누렸다. 춘신군이 나이가 들면서 든 마음은 그런 지위를 계속 유지하거나 더 높이려고 했다. 춘신군의 그런 마음이 그를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이원이 그를 죽이려고 하니 경계하라는 식객 주영의 충고를 무시했다. 자만에 빠진 것이다. 춘신군이 자만에 빠진 대가는 참혹했다. 그가 죽음은 물론 그의 일가 친족이 모두 몰살당한 것이다.

초 고열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춘신군이 이를 걱정해 아들을 잘 낳을 여자를 여러 명 구해 들여보냈으나 끝내 아들을 보지 못했다. 조나라 사람 이원(李園)이 자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그녀를 초왕에게 들여보내려 했으나 왕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오래 총애받지 못할까 걱정이 됐다. 이에 이원은 여동생을 춘신군에게 들여보냈다. 누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자 이원은 바로 그 누이와 공모했다. 이원의 누이는 춘신군을 설득했고, 춘신군은 매우 맞는 말이라고 여겨 이원의 누이를 초왕에게 보냈다. 초왕이 불러서 그녀를 예뻐했고, 마침내 아들을 낳아 태자로 세우니 이원의 누이는 왕후가 됐다. 이후 초왕은 이원을 중용했고, 이원은 정치에 관여하게 됐다.

이원은 그 누이를 들여보내 왕후가 되고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이 이 일을 발설하거나 더욱 교만해질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몰래 결사대를 길러 춘신군을 죽여 입을 막으려 했다. 나라 사람 중 이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5년에 초 고열왕이 병이 났다. 주영은 춘신군에게 “세상에는 바라지 않던 복이 있을 수도 있고, 바라지 않는 화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군께서는 바라지 않던 세상에 있고, 바라지 않는 군주를 섬기고 계시는데 어찌해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춘신군이 “바라지 않던 복이란 무슨 말이오?”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군께서 초나라 재상으로 20년 넘게 계셨는데 이름이 재상이지 실은 초왕이었습니다. 지금 초왕께서 병이 나서 죽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군께서는 재상으로 어린 군주를 대신해 국정을 담당하실 터이니 이는 이윤(伊尹), 주공(周公)과 같습니다. 왕이 장성해 정권을 돌려줄 때도 그렇게 하기 싫으면 남면해 왕으로 칭하고 초나라를 가지면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바라지 않던 복이란 것입니다”

춘신군은 “그럼 바라지 않는 화란 무엇이오?”라고 했다. 주영이 “이원은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있지만, 군의 맞수입니다. 군대는 없지만, 결사대를 기른 지 오래입니다. 초왕께서 돌아가시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들어가 권력을 차지하고 군을 죽여서 입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바라지 않는 화란 것입니다”라고 했다. 춘신군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란 무슨 말이오?”라고 하자 주영은 “군께서는 신을 낭중(郎中)으로 임명해 주십시오. 초왕이 돌아가시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궁궐로 들어올 것이니 신이 군을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지도 못한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춘신군은 “그대는 그만하시오. 이원은 약한 사람이고 내가 또 잘해주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하겠소”라고 했다. 주영은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고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두려워 바로 도망쳤다. 그로부터 17일 뒤에 초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이 과연 먼저 궁궐에 진입해 결사대를 극문(棘門) 안에 매복시켰다. 춘신군이 극문을 들어서자 이원의 결사대는 춘신군을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문밖으로 던졌다. 이어 사람을 시켜 춘신군의 집안을 모조리 없앴다.

사마천은 춘신군에게 대해서 지혜롭다고 말하면서도 ‘잘라야 할 때 자르지 못하면 도리어 그 환란을 당했다(當斷不斷, 反受其亂)’고 했다. 욕심이 크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춘신군이 적당한 때에 욕심을 버리고 조용히 물러났으면 어쩌면 편안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장량과 범수는 말년에 욕심을 버리고 조용히 은거해서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가지면 가질수록 오르면 오를수록 더 큰 욕심을 낸다. 그리고 정점의 순간에 큰 화를 당하곤 한다. 잘라야 할 때 잘라야 한다. 언제나 자신을 경계하여 욕심을 버리고 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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