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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금조총 유물 단상(斷想)
오피니언

금조총 유물 단상(斷想)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7/11 09:47 수정 2023.07.11 09:47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1990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발굴해 보관해 오던 양산 금조총(金鳥塚) 유물이 오는 8월, 3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가운 마음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우선 부부총(夫婦塚)부터 시작하자.

북정동 부부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조선총독부가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근거로 삼을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파헤친 가야와 신라 고분 가운데 하나다. 이 설은 4세기 후반~6세기 중반 약 200년 동안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으로, 일제는 이를 한반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끌어다 썼다. 물론, 그 증거는 단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1927년 발간된 발굴보고서는 1920년 11월 13일 ‘분(墳)의 남방 견부(肩部)에서 5.4m 폭으로 발굴 작업을 개시’했고, 11월 25일 ‘큰 사고 없이 발굴조사를 무사히 끝’냈다고 했다. 1천400년 전 대형 고분 발굴에 불과 13일? 정치적 목적성이 뻔히 드러나 보이는 졸속 발굴이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이보다 더한 것은 당시에 발굴된 금동관을 비롯한 120여건, 489점 부부총 유물을 1938년 조선총독부가 모두 일본으로 반출해 도쿄제실박물관(東京帝室博物館, 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더더욱 기가 막힐 일이 있다. 양산시립박물관이 개관한 2013년, 양산 지명 600주년 기념 《100년 만의 귀환 양산 부부총》 특별전을 열었는데, 전시를 위해 원래 우리 것인 부부총 유물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으로부터 ‘빌려와서’, 90일간 전시를 마친 후에는 고이 ‘돌려줘야’ 했다는 것이다.

발굴 70년 후인 1990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북정ㆍ신기고분군 일부 발굴조사와 부부총 재조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겉보기에 전혀 무덤 같지 않은, 그래서 도굴도 피해 간 금조총이 발견된 것이다.

금조총의 무덤 형식은 부부총과 비슷한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축조 시기도 비슷한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으로 추정한다. 석실 크기는 길이 2.8m, 너비 1m, 높이 1.2m로, 길이 5.4m, 너비 2.2m, 높이 2.5m인 부부총에 비해 작은 소형분(墳)이다.

부장품은 20건, 159점이 출토됐는데 모두 동아대 박물관에 수장됐다. 이중 누금(鏤金) 기법 금제 귀걸이를 포함한 귀걸이 2쌍, 금제 팔찌와 새다리 등 6건, 40점은 2016년 보물로 일괄 지정됐다.

금조총에서 출토된 금제 굵은 고리 귀걸이. [양산시민신문 자료]

이번 금조총 유물의 양산 이관은 양산시립박물관 개관 이후 우리 시와 박물관, 문화원, 지역 국회의원, 시의회,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 현재 12개 단체가 참여하는 성황산출토유물환수위원회 등 여러 기관 단체가 함께한 범시민적인 이관 운동의 결실이다.

배경 설명이 길어졌는데, 본론은 지금부터다. 항간에서 동아대 석당박물관측에서 반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애초부터 반환 의사가 없었다거나,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환수한다는 둥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 나돌았다. 물론, 이것은 모두 우리 시민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향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면 동아대학교는 어떤가? 지역신문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면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우리 시 답곡리ㆍ순지리 토성(1982년), 북정ㆍ신기고분군(1990년), 하북정 유적(1991년), 평산리 유적(1996년), 물금 유적(1997년) 등 다수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일찍부터 우리 시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밝히는 데 기여해왔다.

2016년에는 금조총 유물이 보물 지정을 받고, 이듬해 특별전 《금조총》을 개최하는 등 양산 역사ㆍ문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는 데도 힘써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아대는 금조총 발굴작업을 주관했고, 우리 시에 박물관도 유물 수장고도 없었던 당시에 유물을 동아대 박물관에 수장하는 것은 절차에 따른 당연한 결정이었다.

동아대 박물관이 문화재청에 제출한 금조총 유물 이관 계획은 올해 말까지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립박물관인 김해박물관으로 일단 이관될 것이고, 유물의 높은 문화재적 가치로 볼 때 어쩌면 국립박물관에서 직접 전시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또다시 유물 이관 운동을 벌여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행히 우리 양산시립박물관과 석당박물관이 잘 협의해 ‘장기 임대’ 방식으로 8월에 양산시립박물관으로 이관하게 됐다.

나는 동아대 석당박물관 협조에 감사하며, 듣기에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환수’나 ‘반환’ 대신 ‘이관’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을 쓰고 싶다. 동아대학교는 우리와 함께 낙동강을 공유하는 낙동강협의체 일원인 부산시 사하구에 대학본부가 있다. ‘낙동강 시대’를 표방하는 우리 양산시는 60년 이상 박물관 운영 경험과 양산지역 유물 발굴ㆍ연구 노하우가 있는 동아대학교와 여러 가지 함께할 일이 많을 것이다. 독자께서는 혹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는 동아대 졸업생이 아니다.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10월 삽량문화축전에 맞춰 33년 만에 귀향한 금조총 유물을 우리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시민께서는 이 특별전에 오셔서 진품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를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란다.

이제는 여세를 몰아 도쿄박물관에 있는 부부총 유물 환수에 힘을 모으자. 이 경우는 ‘이관’이 아닌 ‘환수’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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