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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편집국장 칼럼] 될성부른 나무..
사회

[편집국장 칼럼] 될성부른 나무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08/03/25 00:00 수정 2008.05.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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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성인이 된 신출내기 대학생들이 환영회를 한답시고 억지로 먹인 술이 한 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있었다.

유흥가가 밀집한 도심의 경찰지구대에는 자정이 넘어서면서 소란행위로 연행되어 온 취객들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한적한 주택가도 마찬가지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자리를 벌이며 고성과 행패를 부리는 통에 아녀자들이 무서워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쓰레기종량제 실시 이후 골목 어귀에 몰래 오물을 버리다가 적발돼 옥신각신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심지어는 당산나무 아래 재떨이 채로 버리고 가는 파렴치한 사람도 있다. 남부동의 한 통장은 아예 붉은 글씨로 ‘쓰레기 버리는 자는 엄벌한다’고 간판까지 내붙였다.
시민의식을 대변하는 기초생활질서가 무너져 가고 있다.

양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기초질서 위반사범으로 단속된 사례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05년 414건이던 것이 2006년 467건, 2007년 669건으로 늘어났다. 범칙금 처분은 받지 않았지만 훈방조치된 경우만도 지난 해 2천526건이나 된다고 한다.

교통질서위반사범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신호위반, 안전벨트 미착용, 주·정차 위반 등 적발 건수가 지난 한 해 1만2천여 건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경찰서별로 법질서확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겠는가.

기초질서는 문화인의 척도요, 선진국의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성장만으로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상존하는 사회가 선진국의 기본 요건이다.

기초질서는 다시 말하면 타인에 대한 예절이다. 내가 불편하면 타인도 불편한 법, 사회의 규범과 순리를 따르는 것이 곧 기초질서이다. 기초질서의 생활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정교육과 솔선수범이 핵심이다.

어려서 부모들로부터 어떤 버릇없는 행동도 제지받지 않고 성장한 아이들이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사회규범을 준수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런 현상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내가 우선이고, 내 이익이 우선이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하는 것이 기초질서의식의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문화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최근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양대 정당의 공천과정을 보노라면 온갖 해괴한 논리가 난무하고 있다.

‘개혁공천’, ‘밀실공천’, ‘정략공천’, ‘야합공천’ 등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사고의 행태가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국민이나 당원앞에 열린 방법으로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심사 결정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것도 자기만 생각하는 기초질서 실종시대의 소산이리라.

고위 공직자들의 시대관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일반 서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것도 모자라 ‘암이 아니라는 진단에 대한 축하로 사준 오피스텔’이라든지 ‘자연을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등 해괴한 해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오지 못한 환경에 기인한다.

부자들의 사회철학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우리 선조들에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지 ‘부익부 빈익빈’의 자조섞인 푸념이 더 만연하고 있는 아쉬운 현실인 것이다.

얼마 전 비교적 개방적인 한 단체의 주선으로 관광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이들을 동행한 젊은 부부도 두 쌍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의기투합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뒤쪽에 모여 술자리가 벌어지고 흥겨운 노래가 합창이 돼 가자 아이들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잠시 뒤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기사자리로 오더니 노래반주를 틀 것을 요구하고는 마이크를 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어코 올 것이 온 것이다. 앞자리에 있던 중년신사 한 분이 나서서 밤도 늦었고 조용히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마이크 사용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해 가까스로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씁쓰레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기초질서는 아무도 없는 밤거리의 신호등과 같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한번두번 어기다 보면 죄책감마저 실종돼 다른 일에까지 무감각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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