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지식’ 코너가 있다. 무엇이든 궁금한 것을 질문 형식으로 올리면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답해주는 시스템이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자기 신분을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문답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포털 사이트에는 다양한 사전 기능이 있다. 각종 언어 사전을 비롯해 역사, 지리, 사상, 예술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 살아있는 백과사전 역할을 하고 있다. 가히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은 정보 바다다. 지구상 모든 뉴스가 흘러다니고, 방금 끝난 월드컵 결승전이나 미식축구 슈퍼볼 경기의 상세한 결과와 함께 분석기사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연예인 사생활 사진과 제한된 공간에서 여과 없이 발설된 신변잡기 이야기가 그대로 떠다니는 곳이다.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연예인은 스스로 뉴스거리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서로 자기 사이트를 방문하도록 유혹하기 위해 다양한 게임과 쿠폰이 선정적인 화면을 자랑하고 있는가 하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공공연히 제작된 포르노 영상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순기능을 이용하는 사람들 태도다. 인터넷의 유용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산업 세계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청소년 인터넷 이용수준을 살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최근 초ㆍ중ㆍ고등학교 수업형태는 많은 과목에서 단답형 주입식 교육이 퇴조하고 그 자리에 서술형, 조사ㆍ보고형 또는 토론형 수업이 대신하고 있다. 서구형 교육방식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지만 진작부터 그런 식의 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아보지 못한 우리 청소년 대부분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현장 교사의 가장 큰 고민은 인터넷에서 베껴오는 과제물을 가려내는 것이다. 심한 경우 한 반의 학생 답안이 오자(誤字)까지 모두 같다는 사실에 참담할 따름이란다. 더욱 큰 문제는 학생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지식’에 접속해 보면 대부분 초등학생의 숙제 자료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기야 돈을 받고 대학생들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 주는 사이트도 널려있는 형편이니 누구를 탓하랴. 이들은 인터넷을 뭐라고 생각할까. ‘해결사’는 아닐까. 조만간 정부가 나서서 초ㆍ중학생들에 대한 ‘인터넷 표절방지 교육’을 하겠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부정행위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다. 필자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1980년대에는 면허 발급기관 직원이 상당수 응시자로부터 돈을 받고 부정으로 면허를 발급해 줬다가 사정당국에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필자도 유혹을 받았으니 그 정도가 오죽했겠는가. 각종 자격증 취득시험의 대리 응시도 많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교통경찰관의 도로상 위법행위 단속과정에서 비리가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무인단속 장비로 대체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부조리의 영향일까, 지금도 도로교통법상 준수 의무를 지키는 운전자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자조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처럼 어른이 솔선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다. 가족여행을 하면서도 교통신호를 대놓고 무시하는 아버지, 학교 정문 앞 도로에서 아이 손을 잡고 무단으로 도로를 횡단하는 엄마, 대학 전형을 위해 스펙을 돈으로 사는 부모, 제자에게 성적으로 위협하면서 자신의 저서를 강매하는 교수가 존재하는 한 우리 청소년에게 사회 규범을 이야기할 수 없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정치인 식언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청소년 인터넷 윤리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 그들이 부정과 부조리에 만연돼 도덕의식과 사회 가치관을 왜곡한다면 우리나라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남을 앞서는 것도 정당한 방법에 의해서 이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어른 잘못을 하루아침에 다 바로잡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이 세계 경쟁 속에서 당당히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내 자식에 대한 교육부터 차근히 해 나가야 한다.
신문기사를 읽다 보면 우리를 제대로 웃음 짓게 하는 기사를 만나기가 힘들다. 중앙 일간지라고 해도 대부분 비슷한 기사들로 채워져 있는데 독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고 만드는 소식들 같다. 아니 그런 뉴스밖에 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암울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정감사 기간이라는데 정치판은 민생 걱정은커녕 패거리 모아 권력투쟁 벌이기 일쑤다. 국회의원이 세월호에 묶여 변변한 법안 처리도 못 하더니 국회 문을 열자마자 정국 주도권 차지 싸움을 벌이는 통에 국민은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생산과 소비시장 점유율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고 있음을 다양한 채널로 경고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의 안일한 대응과 후진적인 관행으로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 판단이다. 이런 판국에 사회 불안요소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위계(位階)가 생명인 군대 내부의 썩은 상처가 드러나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훼손하고 있으며, 인간성 상실을 우려하는 말기적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컨대, 가족이 한패가 돼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보험사기 급증이나 어린 자녀의 패륜적 타살, 범죄인식도 없이 만연되고 있는 성범죄 사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신문을 펼치기도 두려운 지경이다. 마지못해 찾는 것이 문화ㆍ예술에 관한 지면이다.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며 거장 반열에 오른 배우의 공연이나, 인생 명암을 고스란히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예술가 작품을 보는 것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얼마 전 한 일간지 전시ㆍ공연란에는 보기에도 누추한 옛 여인숙 모습 사진이 기사와 함께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오래된 여관 건물을 이용한 다양한 설치작품을 통해 가족 의미를 되짚어보는 전시회를 열었단다. 실재하는 조그만 객실과 통로, 계단과 복도 등에 10명의 작가가 그림과 영상, 설치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는 ‘잡화점’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중 전시를 기획한 사람의 인터뷰가 눈에 확 꽂혔다. “요즘 가족을 보면 아이는 게임, 엄마는 쇼핑, 아빠는 경제 등 각각 소비 영역 주체들이 집이라는 공간만 공유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상실해 가는 가족 의미를 되살려보자는 전시 취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겠지만, 지금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인 불통 즉, 소통 부재(疏通不在)를 떠올리며 한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만질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스마트폰 시대는 전광석화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4천만명에 육박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그야말로 전 국민의 스마트화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IT 천국 또는 IT 강국의 뒤안길에서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인해 오히려 소통의 부재를 걱정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신주처럼 모신다. 기기 품질에 목을 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한다. 밖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것보다는 방안에 틀어박혀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떼어놓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게 자란 세대는 어른이 돼도 게임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린 자식을 방에 홀로 두고 게임방에 가 밤을 새우다가 굶겨 죽인 사례도 있다. 스마트폰과 게임산업은 우리나라 경제 살리기에 커다란 공헌을 한 블루오션 산업임에 틀림이 없다. 세계 경제시장에서 상위를 점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산업이다. 따라서 계속 성장을 시켜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왜곡된 이용실태를 조장한 정부와 사회, 그리고 그런 병폐를 막는데 등한시한 학교와 가정에 있다. IT의 생활화는 문명의 진전을 가져오지만 인간성을 상실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을 방치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는 물론 나라의 미래도 없다. 교실에서, 놀이터에서, 거리에서, 전철 안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가치관을 상실한 어둠의 시대로 흘러가고 말 것이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면 지리적 경계가 되는 도로변이나 언덕 등지에 그 고장 특산물이나 캐치프레이즈를 대형 간판에 광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소싯적 사회시간에 배웠음직한 ‘대구 사과’는 사실 경산시가 주산지였다. 천안 호두과자나 금산 인삼, 나주 배가 지역 특산품이라는 건 대개 알고 있지만, 청송 사과나 영암 고구마, 신안 튤립이 그렇다는 건 다녀보지 않고선 모른다. 그런가 하면 다이내믹(Dynamic)이나, 액티브(Active)라는 형용사가 도시 이름 앞에 붙는 것이 비단 우리 양산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여행에서 알게 되는 상식이다. 지방자치시대가 진행되면서 이런 풍속도는 다반사가 됐다. 민선으로 구성된 지방정부가 나름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추구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른바 ‘정체성(Identity)’ 전쟁이라 할 만하다. 전국 250여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자체적인 살림살이 향상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자립재원 규모에 따라 지자체 빈부가 드러나고 있지만 어차피 지방 세원 확보가 쉽지 않은 만큼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리적 여건으로 1차 산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그런 경향이 심각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양산은 비교적 나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도시와 인접하고 사회간접자본 기반이 양호한 이점을 안고 산업화 물결을 선도해 온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라는 것은 한 마디로 ‘스스로 먹고 살아라’는 것이다. 국가 존립 목적이 되는 국방과 외교, 무역 등 큰 이슈를 제외하고는 주민 의식주를 독립적으로 해결하고자 세금을 걷고 복지를 베푸는 자치정부를 운용하는 것이다. 국세 편중화 문제는 잠시 젖혀두고 본다면, 자체 수입원이 확충돼야만 자치정부의 기본적 운영에 매달리지 않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가 성립된다. 한 개인의 가정사로 봐도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가장의 수입만으로는 구성원의 문화적 삶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적으로 가족 모두에게 취업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그렇게 해서 향상된 가정 수입이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준다. 양산시 재정자립 수준은 전국에서도 상위권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도내 18개 시ㆍ군 가운데서도 도세(道稅) 징수 수준이 창원, 김해 다음으로 높다. 일부 농촌 지역 지자체에서 공무원 봉급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수준임을 고려할 때 한 해 9천억원이 넘는 살림살이 규모를 갖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여기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 수천개 크고 작은 기업이다. 양산 정체성을 굳이 따진다면 그것은 산업도시라 할 수 있다. 거꾸로 산업도시라는 정체성은 도시 주축인 산업체와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의 삶의 질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를 견인하는 중심이 된 힘이 그에 상응하는 인정과 대우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시 재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사(私)경제 주체로 폄하되는가 하면, 시민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기업 종사자에 대한 차별화된 보살핌은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양산시가 그동안 내걸어 온 도시 브랜드는 너무 다양하고 전방위적이어서 오히려 목표를 정조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역사도시, 관광도시, 교육도시, 문화ㆍ예술도시 등 한 도시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해 추진하기도 벅찬 과제들을 모두 끌어안고 왔다. 그러다 보니 시민에게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존재감 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히려 시민 사이에서 ‘도대체 양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라든지, ‘양산 특산물이 뭐지?’, ‘신라 충신 박제상과 웅상지역과 연관성은?’ 등의 풀리지 않는 정체성 혼란이 만연되고 있다. 관광도시, 교육도시, 문화ㆍ예술도시 모두 한 고장 브랜드로 충분한 상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만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전국에서도 산업도시 명성을 오랫동안 키워온 곳이 많다. 70년대 산업화 대명사인 울산과 구미가 그러하고, 근래 와서는 광양이나 포항, 여수 등지가 산업도시로서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이런 곳의 특징은 도시 발전을 견인하는 중심축인 기업을 기초로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문화적 발판을 구축해 나왔다는 것이다. 산업도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삶의 질 향상도 충분한 경제적 안정 위에서 오는 것이다.
요즘 세태를 빗대어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막말’이다. 작게는 가족과 이웃, 친구에게 생각 없이 퍼붓는 막말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한테까지 도가 넘는 막말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막말을 해대는 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소득 2만불이 넘는 초문명사회에서 언어폭력이 다반사가 된 배경에는 권위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진단이 설득력이 있다. 정보화 사회의 급진적인 발전에 기인한 매스컴 영향력 확대와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 위력 또한 부정적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다자간 통신이 익명성을 용인한 상태에서 지속하고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 보니 무작위 대상에 대한 분노가 반사회적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청소년 교육현장 목소리도 심각하다. 대부분 초등학생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은 타인과 물리적 접근을 통한 놀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어차피 상대를 알지 못하니 서로에 대한 예의범절은 지킬 필요가 없다. 부모나 교사들은 자신 목적에만 맞으면 그 외 문제는 모른 체하기 쉽다.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공부만 잘하면’ 다른 것은 대충 넘어가고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TV를 틀기만 하면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지는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건 비생산적인 가십거리 폭로전이다. 이제 겨우 20대가 된 아이돌 스타들은 어린 시절 비행을 자랑이라도 하듯 들려주는데, 말썽 피우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여 학창시절을 보낸 모범생들이 오히려 스스로 못난 사람으로 생각들 정도다. 여기서도 여과되지 않은 언어가 남발한다. 케이블TV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도 시청률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연예인 신변잡기에 목매는 것은 매한가지다. 정치권은 아예 막말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겉으로는 국민의 대변자인 듯 떠들지만 속내는 저희들 사익과 보신을 위해 저급한 언어폭력과 막말 고공행진을 서슴지 않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이 정부를 향해 던지는 비난과 원망은 들어줄 가치라도 있지만 역성을 드는듯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민을 선동하는 일부 정치 지도자의 추태는 고스란히 국격을 떨어뜨리는 원흉에 불과하다. 사회 각 계층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길을 잃고 헤매는 미개인 집단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말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로 추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원인을 다양하게 규명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회 원로들은 입을 모아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지속적인 토론 교육을 통해 자신 말에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양산 출신 교육계 원로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토론할 때 감정을 제어하는 법, 경쟁 속에서 규칙을 지키는 법, 말에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야 할 교육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청소년 상대 진로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한 지인에 따르면, 지속적인 토론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첫째 남의 말을 들어주는 참을성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 의견이 상대와 다를 때 어떻게 설득하는 것이 옳은지 스스로 습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집단에서 가장 배척되는 성향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라고 한다. 감정이 지나쳐 일방적인 주장을 펴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토론을 자주 하다 보면 거친 언어나 반사회적인 속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참가하는 아이들 스스로 지나친 말을 사용할 때 서로가 그것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우리 어른이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추석 전 한 언론 보도에서 20대 초반 여대생이 거리 시위 연단에서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주변을 지나던 성인도 일부 동조해서 부추겼다니 할 말이 없다.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밖으로 나오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도리를 깨닫는 인성교육과 제대로 된 토론학습을 통해 아이들이 막말의 병폐에서 해방되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가정과 학교의 의무다.
7년 연속 500만 관중이 몰리고 있는 스포츠가 프로야구다. IMF 사태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 야구 본고장인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선수의 활약은 국민에게 위안을 줬고, 지금은 류현진과 추신수, 그리고 일본에 진출한 이대호 선수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으로 야구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그 결과 야구선수가 되려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일반인도 취미생활로 야구경기를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우리 양산만 해도 야구협회가 주관하는 사회인야구가 6개 리그에 90개팀이 참가해 주말마다 대전을 치르고 있다. 양산시리틀야구단이 전국대회를 제패하는 등 양산 야구 열기는 취미생활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양산 야구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원동중학교 야구부 때문이다. 면 전체 인구가 3천명이 조금 넘을 뿐인 원동면의 유일한 중학교, 원동중은 45년 전통이 무색하게 재학생이 줄어들기 시작해 폐교 위기에 봉착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농촌인구 탓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아이도 교통 발달로 도시 중학교로 나가는 바람에 신입생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다. 원동면 유일의 중학교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다는 주민 바람은 야구부 창단이라는 묘수를 두게 됐는데 이것이 희한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웃 부산은 국내 제2의 도시이면서 구도(球都)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야구팬이 많은 곳이다. 학교 야구도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인근 울산시와 경남 일부 지역에서 야구를 하던 초등생이 진학하기에는 중ㆍ고등학교 야구부가 부족한 실정이다. 자연히 중도탈락하거나 아예 야구부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착안한 원동중학교는 양산시와 교육청, 야구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2011년 3월 야구단을 창단했다. 기숙사가 마련되고 전교생이 모두 야구를 취미생활로 가졌다. 야구를 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갖춰지니 입소문을 듣고 인근 지역에서 희망자가 몰려들었다. 대부분 한 번 좌절을 경험했던 아이들인지라 투지가 넘쳤다. 원동중 야구부는 창단 2년 만에 대형사 고를 쳤다.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그것도 전통의 강호 부산 대동중학교를 결승에서 물리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국대회 우승은 대번에 전국의 관심을 끌게 됐다. 중앙 매스컴이 앞을 다퉈 시골 원동중을 찾았다. 인간승리 드라마로 구성된 다큐멘터리가 방송을 타면서 선수들은 일약 스타가 됐다. 공부와 운동을 철저히 겸비하는 학교와 신념으로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진과 부모 이야기가 전국에 퍼져 나갔다. 그들은 작은 영웅이 됐고 올해 다시 전 국대회를 2연패하면서 지난해 우승이 반짝하는 일과성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양산시는 원동중 야구부 성장과 함께 숙제를 안게 됐다. 지역에 고교 야구부가 없어 원동중 야구선수들은 3학년 2학기가 되면 다른 도시로 미리 전학을 가야 할 형편에 놓인 것이다. 어차피 중학교 야구부를 창단해 인재를 육성시켰으니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연계하는 선수 수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야구인의 소망이었다. 지난해부터 애를 써 온 결과 올해 안에 물금고에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계획이 결실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양산에서 야구가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구장이 없어 학교 운동장을 빌리거나 심지어는 자동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공터에서 시합하기도 했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호포리의 황산문화체육공원과 물금구장, 부산대 부지 등 대여섯개 구장에서 매 주말 사회인야구가 열리고 있다. 현대는 레저시대다. 먹고살기에 바둥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웰빙시대인 것이다. 삶의 질 향상은 시대 소명이 됐고, 달리 말하면 지역발전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은 대도시 인접환경과 기상조건이 좋아 스포츠 단체 전지 훈련장으로서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양산운동장에서 축구경기가 열려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제대로 된 야구장이 있다면 프로야구도 유치할 수 있다. 이미 몇몇 도시는 스포츠 마케팅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못 할 게 없다. 건강도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양산이 아닌가. 레포츠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양산시는 나동연 시장이 재선돼 시정 추진 연속성이 유지되는 효과를 누리게 됐지만 시의회는 절반 이상이 새 얼굴로 채워지게 됐다. 새로 출범한 제6대 시의회는 정원이 1명 늘어 16명이 됐는데 그중 10명이 새로 의회에 입성했다. 의원실을 빼지 않아도 되는 의원들은 4선 박말태 의원과 3선 정경효, 이채화 의원, 그리고 재선 김효진, 한옥문, 이상정 의원 등 6명에 불과하다. 10명의 새 의원 중 의정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은 통산 3선이 된 박일배(덕계ㆍ평산동) 의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9명의 의원이 초선이라는 말이다. 초선 의원들의 정당 분포도 다양하다. 새누리당 4명, 새정치민주연합 4명, 무소속 1명이다. 새로 출범하는 제6대 시의회에 대한 기대를 피력하기에 앞서 잠시 지난 제5대 의회의 활동을 짚고 넘어가 보자. 제5대 의회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회의 공개를 들 수 있다. 본회의를 비롯해 상임위원회 회의를 실시간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이 직접 시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의 공개를 시행한 이후 시민 알 권리를 진작시킨 효과는 물론, 회의진행상황을 직접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의원 자질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정 감사활동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시처럼 시장과 의회 다수의원이 같은 정당으로 구성되는 경우, 사실상 시정추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제5대 의회 전반기에 특히 두드러지게 양산시 주요 정책과 대규모 예산사업에 대한 제동이 많이 걸렸다고 생각된다. 이는 나동연 시장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김종대 당시 의장의 역할이 있었기도 했지만 같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그에 동조했고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가세해 시의 일방추진 관행에 제동을 거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시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의회의 지위>라는 항목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지방의회는 주민이 선출한 의원으로 구성되며, 자치단체의 중요 의사를 심의ㆍ결정하는 주민대표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의결기관과 감사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함께 가진다고 했다. 의결기관으로서의 지위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 자치단체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기능, 즉 주민부담에 관한 사항과 자치단체의 법령이라 할 수 있는 조례(條例) 제정 등 지역의 전반적인 정책을 심의해 최종적으로 결정함을 말한다. 이처럼 주민이 행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대표자인 의원을 선출해 대리하게 하는 대의정치(代議政治)의 근본이 바로 의회인 것이다. 이제 새롭게 구성된 제6대 시의회가 출범했다. 저마다 시민의 머슴이 되고자 많은 약속을 하며 의원 배지를 달았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교부받는 자리에서 모두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을 것이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에 대해 성실하고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이다. 실제로 당선사례 현수막에 ‘의정활동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렇다. 찬란한 의원 배지를 달고 수천만원 연봉을 받으며 4년을 보내게 될 의원 자리는 유권자에게 빚을 갚는 자리가 돼야 한다. 선거운동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경로당 어르신이나 저잣거리 상인, 공장 근로자와 거리의 시민에게 한 표를 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던가. 그때 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지방자치제도 취지에 맞게 시의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주민 복리에 우선을 둬야 하고 부당한 권력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며 사사로운 욕심이나 인기에 영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주민 복리를 항상 생각하라 함은 예산 낭비나 부적절한 지출을 억제해 어려운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는 것이요, 중앙정부와 국책기관, 집행부의 전횡이나 무리한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바라는 것이요, 사욕이나 인기영합 행태를 우려하는 것은 지역구 예산 확보 등을 통해 조그만 이익을 얻는 대신 양산 전체의 발전방향 모색에 등한시하는 소탐대실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국회 정치개혁 움직임 속에서 기초의회 존폐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시의회 무용론이 부침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의회 기능이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6대 시의회는 이런 비판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민선 6기를 판가름할 선거가 이번 주말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번 선거는 보는 이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관점으로 비치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관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선전 여부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양산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 선거에서 빅2의 재대결이 벌어지게 됐고, 도ㆍ시의원 선거에서도 전례없는 대진표가 구성돼 두 진영에서 모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 6.4 지방선거는 그 어느 해보다 외적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선거라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주는 사회적 파장이 그 첫째다. 한 대형 여객선 침몰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심의 자각으로 이어졌고 사회구조 전반에 걸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파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현 정부의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증폭됐다. 마침내 대통령 담화에 의해 해상구난 책임기관인 해양경찰 해체라는 극약처방이 나오게 됐다. 여객선을 운영하는 선사 배후에 특정 종교지도자가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는 이미 과거에 기업을 운영하면서 상당한 과오를 범한 전력이 있는 자로서 새롭게 세월호 사건 종결자로 대두됐다. 하지만 전 세모그룹 오너 일가를 조사하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검찰대로 장담한 만큼 결과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무능을 비판받고 있으며, 그 일가들의 불법적인 기업 운영과 탈세 등을 왜 사전에 적발하지 못했는가 하는 조세당국에 대한 불신도 터져 나왔다. 해양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관련 업무에서 악의 고리처럼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관피아니 낙하산 인사니 하는 용어가 불신의 아이콘처럼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세월호 참사 여파는 분명히 집권 여당에게 불리한 변수로 보인다. 그렇다고 야당이 무조건적인 반사이익을 볼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마저 동반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행정조직의 무능은 온전히 현 집권정부 책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야당은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국민 안전’을 내세우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 전, 현직 대통령까지 증인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런 것이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력 약화를 우려하던 민주당이 승부수를 던져 안철수 신당과 전격 통합한 것도 이번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민주당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라는 지난 대선 공약을 쟁점으로 채택해 집요하게 여당을 공략했다. 독자세력으로 제도권 진입이 절실했던 안철수 신당과 공통분모를 만들기 위해 그 노선을 견지했고 결과적으로 여당과 한 가지가 됐지만 선명성에서 점수를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재자투표 대신 사전투표제가 시행된다. 투표일에 투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5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읍ㆍ면ㆍ동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간단하게 사전 투표를 할 수 있다. 사전투표제 시행으로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이 또한 다소나마 야당이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 요인들이 야당 관계자들로 하여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양산에서도 야당 돌풍이 가능할는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몇 번 선거에서 정당 지지도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이 안심할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김양수 후보와 열린우리당 송인배 후보의 격차는 불과 1.3%였다. 2008년 선거에서는 제1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고, 2009년 18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에 맞선 민주당 송인배 후보가 5.1% 차이로 석패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나동연 시장은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42.3%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 정병문 후보가 31.5%, 무소속 김일권 후보가 16.7%를 획득했는데 두 후보의 표를 합하면 나 시장의 그것보다 5.9% 앞서는 결과였다. 올해는 김일권 후보가 야당 단일후보로 나서게 돼 어떤 결과를 얻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올 지방선거는 야당에게 다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 그동안 양산에서 보여준 보수 우위 표심이 대외적 요인에 의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6.4 지방선거 후보자등록이 마감됐다. 우리시에서는 시장과 도ㆍ시의원, 비례대표 시의원 등 모두 48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그 중 정당에 대한 투표로 당선이 판가름나는 비례대표는 5명이 후보로 추천됐는데 모두 여성이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비례대표 순번 중 홀수에는 여성을 내세우도록 의무화했다. 따라서 추천순위 1번은 당연히 여성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두 당은 약속이나 한 듯 1, 2번 모두 여성을 후보로 올렸다. 비례대표의원은 원래 국회의원에게 적용되던 용어였다. 다수정당이 활동하고 있는 실정에 비춰 선거에서 다수득표자만 선출할 경우 사표(死票)가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됐다. 운용상으로는 주로 직능대표와 소외계층, 여성 등의 정계 진출을 돕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2006년 기초의회선거에서 정당공천제가 시행되면서 시의회에도 비례대표의원이 2명의 정수를 얻어 진출하게 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에서는 27세의 약관 여성인 박윤정을 추천했고,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61세의 여성단체 출신 김덕자를 추천해 의회에 진출시켰다. 이 결과 4대 시의회부터 여성의원이 활약하게 된다. 제5대 시의회는 모두 3명의 여성 시의원이 활동했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심경숙(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금자(당시 한나라당), 정석자(당시 민주당) 의원이 그들이다. 양산시의회 의원정수는 올해 1명이 늘어나 16명이다. 그 중 2명이 비례대표의원 정수다. 비례대표의원 당선자 결정은 공직선거법에 나온 계산방식을 따르는데, 우리처럼 정수가 2명인 경우에는 특정 정당의 득표가 75%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2명 모두를 차지할 수 있다. 물론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그런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2006년 선거에서는 71.8% 대 28.2%였고, 2010년 선거때는 한나라당 52.6% 대 민주당 47.4%로 격차가 오히려 줄었다. 이 결과 두 번의 선거에서 여ㆍ야 정당이 나란히 1명씩 나눠 가졌다. 그동안 각종 선거 결과에서 유추해 봐도 한 정당이 75% 이상 획득한다고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1명씩 비례대표 시의원을 배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시의원 후보로 현재 경남도당 부위원장이기도 한 이정애 양주어린이집 원장과 정숙남 동원과기대 외래교수를 각각 1번과 2번으로 추천했다. 2010년 선거에서 2번으로 추천된 바 있는 황신선 전 여성단체협의회장은 이번에 지역구(라 선거구, 동면ㆍ양주동)로 공천받았고, 정숙남 씨는 당시 3번으로 추천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번에 동원과기대에 근무하는 차예경 씨를, 2번에는 웅상발전협의회 사무차장인 김경원 씨를 추천했다. 통합진보당은 양산여성회 황은희 회장을 후보로 추천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6대 시의회에는 이정애 원장과 차예경 두 후보가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양산 여성계는 두 갈래로 갈려 상당한 갈등을 빚어왔다. 10개 주요 여성단체를 아우르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여성단체협의회가 분열 양상을 맞으면서 급기야는 둘로 갈라서고 말았다. 주부클럽 황신선 회장이 협의회장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양산시와 마찰을 빚은 것이 발단이었다. 어떻게 보면 토박이와 타지인과의 힘겨루기였을 수도 있고, 관변단체로서의 위상이 변화하면서 과잉대응한 시와의 대치 측면도 있다. 여성단체 분열에 대한 개선요구는 2년 가까이 시의회 단골 메뉴였으나 좀처럼 화합하는 모습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두 단체로 양분하는 극한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이번에 새누리당 후보 중에는 황신선 전 여성단체협의회장이 지역구 후보로, 이정애 전 한자녀갖기운동본부 회장이 비례대표로 추천됐다. 윤영석 국회의원 흉중의 복안이 세상에 공개된 셈이다. 재임기간 중 여성단체의 분열현상에 상당한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윤 의원으로서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 것일까. 여성 후보 공천과정에서 곤욕을 치른 윤 의원은 한 여성 공천신청자로부터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차피 비례대표의원 후보는 정당 기여도가 우선적으로 판단되는 자리이니만큼 국회의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60대 중반의 이정애 원장 카드를 빼어든 것은 어떻게 보면 정면돌파가 아닌가 생각된다. 새로 구성될 시의회가 난마처럼 얽힌 여성계를 화합시킬 여건을 마련할지 오히려 갈등의 골을 심화시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언젠가 울산에 있는 지인 병원 개원행사에 참석하러 가던 길이었다. 행사장을 지척에 두고 사거리 신호대 앞에서 발이 묶였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 민방위 훈련으로 거리의 자동차와 행인들이 모두 멈춰 선 것이다. 10분을 대책 없이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실제로 공습이나 대규모 쓰나미가 닥쳤다면 이렇게 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민방위 훈련이란 ‘적의 군사적 침략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의해 실시되는 비군사적 방위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민방위 훈련은 1975년 법으로 제정돼 지금도 매달 한 차례씩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주로 특정한 시설물의 테러나 자연재해 등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요령을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주는 교훈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데 따른 직업윤리 부재와 구조활동 미숙이 가장 아쉽게 다가온다. 국민은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 선장이 속옷 바람으로 맨 먼저 탈출하는 장면이 공개된 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항해사가 조난에 적극 대응하기 전에 본사와 전화해 지령을 받았다는 보도도 경악할 정도였다. 이에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배가 아직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한 해양경찰이 수백명의 승객이 몰려있는 선실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스스로 빠져나온 선원 구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반쯤 기운 배 위로는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사고현장 인근에 다른 선박이 구조에 끼어들 준비가 돼 있었지만 1시간 반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구조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재난사에 부끄러운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후진국 재난구조활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이번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언론이 지나치게 경쟁적인 보도경쟁을 치르면서 선정적 보도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 국민성과 관행적 행정 유착을 문제삼아 지적한 부분은 모두가 되씹어보아야 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이다. 충격적인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각종 교통사고와 가스폭발, 화재사건도 남의 일이다. 돌아보면 내 주변에 그런 사고 희생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미리 예방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선가 유치원생에 대한 안전교육이 의무화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지 않는다. 소방교관이 실제와 유사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채 행동요령을 가르치고, 경찰이 직접 참여해 교통시설 이용과 안전요령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유치원에 들어간 첫 해 반년에 걸쳐 사회적응훈련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엄마가 무단횡단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앞 신호등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관료주의가 팽배한 재난대비 시스템도 이번 사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재난 발생 시 인명구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사전에 훈련이 돼 있지 않아서다. 지휘체계 다원화도 문제다. 전문가가 현장을 책임있게 지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매뉴얼이 확정돼 있어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재난관리체계가 지나치게 관료적인데 이유가 있다. 최근 예비군 훈련에서 실전과 유사한 ‘워 게임(War Game)’을 도입해 흥미를 유발하고 실전대비효과도 올리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과거 예비군 훈련이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실전에 투입됐을 때 과연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따라서 실전과 비슷한 감각을 유지하는 훈련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인류는 아픈 역사를 통해 진화한다고 했던가.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딛고 안정된 사회 기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잘못된 관행과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소를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인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약속을 스스로 깬 것이 야당에게는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활용되고 있다.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함께 뭉치게 된 근저에도 이것이 바탕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 불이행에 대해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반면, 새누리당측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독자정당을 만들었다가 갑자기 민주당과 합당한 것을 두고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그 화살을 피하기 위해 대선공약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공약 불이행을 쟁점으로 삼는 걸까. 정치는 신의(信義)다. 하지만 늘 불신의 문제로 서로 다툰다. 후진정치일수록 더욱 그렇다. 명색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조차 서로 상대당 대표 연설에서 야유를 퍼붓고 발언을 가로막는 추태를 보인다. 겉으로는 국민을, 또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들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조금만 돌출행동을 해도 색안경을 써서 보기 일쑤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공천폐지 약속을 파기했다. 물론 이유는 있다. 당 고위인사가 입장을 정리한 발언을 보면 이렇다. “정당은 선거 때 후보를 내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이 책임을 회피하고 수많은 후보가 난립해서 선거를 혼탁하게 하고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건 책임방기다. 정당은 후보 선출과정에서 후보자의 기본적인 자질을 검증하기 때문에 공천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새누리당은 정당공천 폐지를 포기하는 대신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위해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2:3:3:2 방식이다. 핵심당원과 대의원, 즉 당원들 몫으로 50%, 일반국민과 여론조사 50%로 국민경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은 곳곳에서 반대에 부딪치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100% 여론조사로 방향을 바꾸자 현역 우근민 지사가 반발해 경선불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인근 부산시 구청장ㆍ군수선거에서도 지역구 국회의원과 현역 단체장의 관계가 소원한 일부 지역에서 당원+여론조사 방식이 채택되자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당원 투표가 포함될 경우 국회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잠재돼 있는 것이다. 우리 양산에서는 아직도 새누리당 경선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후보들 간에도 명확한 대응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일부 시장후보들이 특정후보에게 유리한 출처불명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돌고 있다며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후보의 선거운동 문자내용에 대해 시청 간부들이 시정을 오해할 수 있다고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해당 후보는 또다시 근거자료를 제시해 반박하며 관권선거 중단을 촉구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론조사기관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고 한다. 각종 선거의 정당 공천과정에서 지나치게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게다가 후보 개인의 인지도 제고나 정책 개발 등을 위한 방편으로도 여론조사가 이용되고 있어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와 반비례해서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일간지에 따르면, ‘착신전환을 통한 선거여론조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보도가 나왔다. 여론조사 기간에 맞춰 단기 전화를 대거 빌려서 이를 수십개의 응답가능한 착신전화로 전환해 놓고 선거운동원으로 하여금 응답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작된 여론조사는 선거에서 암과 같은 존재다. 선거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새로 ‘선거여론조사기준’을 공표하고 시행에 나섰다. 지난달 25일부터 적용된 이 기준에는 공정한 응답항목과 여론조사 결과 공표 전 중앙선관위 등록 의무화 등이 포함돼 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를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관위는 물론 사정기관이 나서 여론조사 조작사례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새해가 되니까 좋은 것은 모든 걸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서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롭고 듣는 이야기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하다. 청마의 해라니, 말(馬) 만 하더라도 씩씩한 기상이 넘치는데 푸른 말이라. 신년 달력 첫 머리에 나오는 군마(群馬)의 기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관운장의 적토마이건, 새옹지마의 준마건 그 위용이 대단한 것은 갈기가 흩날리는 외모 뿐 아니라 먼지를 일으키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용맹이 뭇짐승들이 흉내내지 못할 위엄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갑오년, 일찍이 120년 전, 조선왕조가 기울어갈 당시 조정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갑오경장이 있었다. 지금은 갑오개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비록 왕조 말 일본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개화파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강력하게 요구돼 온 사항들을 일부 수용한 것에 의의가 있다. 특히 사회개혁으로, 문벌제도와 반상(班常) 차별 등의 신분제 철폐, 죄인연좌법 폐지, 조혼 금지 및 과부 재가 허용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지난 수백년간의 봉건적 관습이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폐기된 것이다. 2014년 갑오년은 어떤 모습으로 역사에 남을까. 아무래도 이 부분은 올해 있을 지방선거에 초점이 맞춰져야 될 듯 싶다. 1995년 기초의회가 구성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재정적 측면에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두 번째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의 정치 역량과 사고방식이 아직 그 본래의 취지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국세의 지방화 비중을 높여 자치재정을 확충시키는 정부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외로 치더라도, 지방 정치인 스스로가 지방자치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여섯 번째로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올해 6월 4일 실시된다. 자천타천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주변에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방선거의 꽃인 기초지자체 즉, 시장(市長) 직에 출마하려는 이들은 이미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 현직 또는 전직 정치인들이다.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릴수록 처음부터 시장직에 도전하기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물론 정당의 공천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참신함’을 포장한 새로운 인물이 출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의원은 정당 공천제도가 불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 기여도가 높은 인물이 낙점되기 쉽다. 따라서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 바로 시의원이다. 시의원은 현재 국회의 정치개혁 방안 중에서 정당공천 폐지가 유력하게 추진되기도 하지만 특히 소선거구제도로 바뀔 가능성도 커 많은 정치신인들이 출마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역시의 구(區)의회가 존폐위기에 놓인 것과는 달리 시·군의회는 그 기능의 중요성이 더욱더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용인시나 경남 김해시처럼 경전철사업의 성패를 두고 추진 당시 의회 의원들의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한때 국민들 사이에서 무용론(無用論) 까지 흘러나왔던 기초의회가 선거에 앞서 지원자가 속출하는 등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수천만원의 연봉이 보장되고 지역의 각종 행사에 귀빈으로 대접받는 것을 넘어 전국적 포털사이트 인물란에 이름을 올릴 ‘가문의 영광’으로 인정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 출마자 대부분이 말한다.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나서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노라고. 주민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도시 개발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역대 선거를 통해, 당선되기 전까지는 ‘시민의 머슴’으로 자처하다가도 뱃지를 달고 난 뒤에는 어느 새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시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그 중에서 잘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렇다고 지나간 흔적만 더듬지도 말고, 사람 됨됨이를 잘 살피고 공적인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면 된다. 그런 기준에 모자라는 인물이라면 진작부터 나서지 못하게 말릴 일이다.
갑오년 새해 천성산 해맞이 행사는 참여율이 예전만 못하게 됐다. 여느 해 같으면 새벽산에 오를 기대로 그믐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들어 몇 시간 눈을 붙인 다음 어두운 밤 공기를 뚫고 원효암 오르는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계해년의 마지막 날 저녁에 시작된 양산대종 기념축하공연부터 자정 제야의 종 타종식까지 지켜보느라 한밤 중에 들어간 사람들이 일출 전에 일어나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유쾌하지 않은 뉴스들이 매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무자비한 숙청과 공공연한 전쟁 위협으로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군의 철저한 대비태세를 강조한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철도노조의 극한투쟁이 다양한 중재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연말연시 철도편의 감축 운행으로 인한 국민적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 현상을 슬기롭게 조정해 나가야 할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식물국회를 연출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불신을 쌓아가고 있고, 무기력한 공권력과 행정력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통상임금의 확대 판결로 인해 인건비가 대폭 상승하게 될 내년도 기업운영에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런 우려에서인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로 선정됐다. 교수협회에 따르면, 이 말은 초나라 왕에게 부친을 살해당한 오자서가 벗 신포서와 나눈 대화에서 유래했는데,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즐겁고 유쾌한 말은 아닌 게 틀림없다. 정치는 부재하고, 외교는 삐걱거리며, 부동산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공직기강마저 흔들린다면 나라의 앞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고는 지방정부라고 해서 비켜갈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백억원씩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 없다보니 시 재정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방대한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인건비와 복리후생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만만치 않은데다, 이전에 빌어쓴 은행 빚에 대한 이자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어 6천억원이 넘는 한해 예산도 막상 쓰려고 들면 쓸 돈이 없다는 것이 양산시나 의회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그래서인지 지역의 어둡고 소외된 곳에 대한 복지예산이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호소하곤 한다. 더구나 일반사회의 온정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도 이를 다시 활성화할 어떤 계기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당국이 아닌가. 당연히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자제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연말연시를 보내는 분위기가 위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뜻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다. 12월의 마지막 주말에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조영남, 정훈희, 김세환 등 유명 가수들이 출연한 송년음악회가 펼쳐졌다.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 연중 기획해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공연이었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지원금은 역시 양산시 예산으로 충당된다. 대규모 송년음악회가 열린 바로 사흘 뒤에 체육관에서는 또다시 유명 가수들의 대규모 쇼가 펼쳐졌다. 명분은 양산대종 건립기념이지만 큼직한 연말 음악회가 엊그제 열렸는데 또다시 시민들을 끌어모아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딱히 양산대종 건립기념 축하잔치가 필요했다면,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손발을 맞추어 자축연을 열어도 되지 않는가. 굳이 거액을 들여 유명가수를 초청할 필요가 있는가. 또 그 비용은 어디서 나왔는가. 시의회에서는 종각 부지 공사의 추가비용 갖고도 밀고당기기를 했는데 축하쇼 예산을 승인해 줄 리 만무했다. 결국 유관 기업체 협찬을 받은 것으로 안다. 주최측으로서는 체육관 행사라 많은 좌석을 채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인기 연예인을 불렀겠지만 시민들은 그렇게 쇼에 빠질 만큼 여유 있는 연말 분위기가 되고 있지 않다.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안다면 지도층이 나서 허례허식을 줄이고 온정을 모아 이웃을 돌보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제야의 종을 치는 의미가 무엇인가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우리 주변에 외롭고 지친 이웃이 없는지 돌아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살기가 팍팍하긴 하지만 내미는 손길이 있다면 따뜻한 온기는 쉽게 퍼져 나갈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랑은 큰 힘을 발휘한다.
4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부산의 남ㆍ북항대교 영도 연결도로 붕괴사고는 몇 가지 원인이 제시되고 있지만 인재(人災)에 가깝다.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서두르는 과정에서 나온 사고라는 것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의 임기 중에 완공하려고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지만 부산시는 부인한 상태다. 어찌 됐든 우리나라는 외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안전 불감증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공사도 졸속한 공사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가 결국 문화재청장이 사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천인공노할 불한당에 의해 소실된 것도 아쉬운데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복원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은 관료주의의 부조리한 행태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대외 홍보에 수십억원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주요 공정과 자재 구매에는 적정한 비용이 책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입찰 방식이나 하도급 관행 등 일반 건설공사의 부조리가 나라의 보물을 복원하는 사업에까지 자행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외에 선전하는데 치우친 나머지 공사의 내실을 기하는 데는 등한시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양산대종 공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지역 출신 한 기업가의 희사로 시작된 양산대종 건립사업은 대대손손 남을 향토의 유물이 될 것임에도 시민의 여론을 수렴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부 지도층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해 협의했다지만 정작 위원들마저 특별한 자문을 할 여지도 없이 시에서 추진하는데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오죽하면 한 시민이 개인자격으로 양산대종 명칭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다. 비판적인 목소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종합운동장 서남쪽 귀퉁이라는 종각의 위치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양산시는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5억원의 시 예산을 들여 부지조성공사를 발주했다. 하지만 내년도 당초예산에 2억여원을 추가하고자 하면서 시의회와 마찰을 빚었다. 수의 우세를 이용해 예산은 통과시켰지만, 공유재산관리계획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종각과 종은 기부자가 완성해 시에 기부하면 채납하는 것이 순서인데 종각 건축공사의 건축주가 양산시로 되어 있음을 확인한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문제는 종각 건물을 기부채납할 수는 있지만 현금을 직접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시는 뒤늦게 건축주 명의를 바꾸기로 했다는데 그렇다면 또 건축부지의 소유자인 양산시장의 건축동의서가 필요한 것. 행정재산인 운동장 부지를 용도변경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 문제다. 공사는 다 돼 가는데. 이렇게 법적인 검토나 시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서둘러 추진한 배경에는 올 연말 제야의 종 타종계획이 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운집한 시민 앞에서 멋지게 제야의 종을 타종하고 싶은 마음은 단체장이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것이다. 더구나 지방정치인의 임기가 내년 상반기까지가 아닌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연내 타종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은 것은 참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졸속한 공사가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나오고 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건축업을 하고 있는 한 시민은 종각의 경우, 목조건축물에 기와를 얹은 형태인데 추운 겨울에 공사를 하기 때문에 기와 아래의 황토가 제대로 굳지 못한 상태에서 수십번의 타종을 하게 되면 그 진동에 의해 기와가 이탈하는 일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장래의 누수현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완공 직후에 단청공사를 시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적어도 목재의 뒤틀림이나 건조가 마무리된 후인 2~3년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지적은 현장감독과 논의한 사항도 아니며, 목조건축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종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개 시민이 지적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지역의 전통건물이 될 종각에 대한 애정을 갖고 하는 말이기에 시로서는 보다 심층적인 자문을 거쳐서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작은 이익을 좇다가 큰 손실을 입는 경우를 본다. ‘양산대종’도 그 이름에 걸맞게 모든 시민이 환영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후환 없는 절차에 의해 첫 타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양산시가 초등학생들의 영어교육 활성화를 위해 특수시책으로 추진한 거점 영어체험센터가 용두사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양산시가 매년 지원하던 운영비를 대폭 삭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는 거점 영어체험학교를 운영 중인 양산초 등 3개 학교에 대해서 내년부터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원어민 보조교사 1인에 대한 비용만 지급하기로 했다. 지역 내 59개 학교 가운데 57개 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가 배치돼 있음을 이유로 내린 결정이다. 5년 전인 2008년, 지역의 낙후된 초등학교를 선정해 거점 영어체험센터를 설치한 뒤 인근 학교를 포함해 실생활 중심의 영어교육을 시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발표됐다. 원도심의 중심학교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주변의 슬럼화로 취학아동 수가 급감하던 양산초와 역시 쇠퇴일로에 있던 하북초가 1차로 대상학교로 선정됐다. 이어서 웅상지역의 거점학교로 천성산 아래 신명초가 선정돼 각각 수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시설공사를 완료했다. 또한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학교별로 원어민 교사 2명과 내국인 강사 1명의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 1억3천만원이 매년 지급됐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거점학교의 교사 감축은 물론 아까운 시설도 자기 학교 학생들을 위한 소극적 활동의 용도로 전락하게 됐다. 특히 양산초는 5개의 교실을 헐어 야심 차게 준비하고 실행해 왔던 만큼 그 충격은 작지 않다. 문제는, 시작할 때는 대단한 성과를 올릴 것처럼 홍보하다가도 막상 실적이 저조해 폐지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영 중인 학교나 교육당국과의 협의나 세밀한 심사분석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지를 결정한 처사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2009년에 조성돼 시행된 지 겨우 4년에 지나지 않는 사업인데 왜 이렇게 조속하게 또 일방적으로 지원을 중단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시의회에서도 이 점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양산시는 사업 중단의 사유로 다른 대부분의 학교에서 원어민 보조교사가 운영되고 있음을 들었는데 이 또한 납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거점 영어체험학교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9년인데 이미 그 전 해부터 원어민 보조교사의 배치가 시작됐던 것이다. 순차적으로 전 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의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에 거점 영어체험학교도 추진된 것이다. 이는 거점 영어체험학교의 운영 목적이 단순히 학교별 원어민 보조교사의 책무와 관계없이 존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불과 4년 사이에 어떤 문제점이 발견됐기에 중단하게 됐을까. 적어도 예산사업의 효율성에 대한 심사분석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중단 사유가 새로 발생한 원인이 아닐진대 사업계획 수립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되어 시행됐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동안의 운영기간 중에 당초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요인이 발생했다면 그 원인과 조치방안에 대해 교육당국과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적어도 사업의 실패로 규정지어질 개연성이 있다면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이 추진했던 이유도 해명해야 한다. 시 예산이 쌈짓돈이 아니지 않은가. 업자들 배불리려고 하지 않았다면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책임을 먼저 따져묻는 것이 일의 순서다. 시의회에서도 이런 점을 질타하고 나선 것으로 안다.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시설을 다른 활용방안의 모색도 없이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것은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설의 활용방안을 고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학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당초 목적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부 시의원의 생각이다. 양산시의 예산낭비 사례는 이 밖에도 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양산천 인도교다. 수십억원을 들여 운동장과 춘추원을 인도(人道)로 연결한 세칭 ‘학다리’는 자동승강시설까지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0명도 되지 않는 비효율의 극치로 원성을 들어왔다. 그에 비하면 거점 영어체험센터사업은 사업비 규모로 볼 때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푼이라도 시민의 세금을 소중히 여긴다면 헛되이 쓰이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공직자의 할 일이다. 굳이 선조들의 청백리 사상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세입의 징수와 세출의 집행을 신중히 하는 기강이 바로 설 때 공직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양산대종 종각 상량식이 거행된 며칠 뒤 시청 프레스센터에서는 다소 특별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시민 자격으로 ‘양산대종 명칭사용 금지 및 사업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원동면 거주 이시일 씨가 법원 심리에 앞서 입장을 밝히는 회견을 한 것이다. 이 씨는 양산대종 건립계획이 일반에 알려진 직후부터 줄기차게 ‘양산대종’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자기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양산시 관계자들에게 항변해 왔으며, 시장 면담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양산대종이라 함은 시민의 정성을 모아 설치해야 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희사(喜捨)로 만든 종에 양산대종이라는 명칭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종 건립 과정에서 시민의견 수렴 없이 자문단의 형식적인 자문을 거쳐 일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더욱 양산대종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씨의 가처분 신청에 따라 양산시는 어쩔 수 없이 담당 공무원을 출석시켜 법원의 심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심리에서 양산시는 수년 전 대종 문제를 토의했으나 시의회 반대 등으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다른 지자체의 경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개인의 자금으로 종을 제작하더라도 완공 후 양산시에 기부할 것이며, 기부자의 이름을 넣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씨의 반박은 다르다. 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작 주체인 시민 의사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름을 새겨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기증자의 이름이 남을 따름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런 쌍방의 주장은 나름 각각 일리가 있다 할 것인바, 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씨의 다소 돌출적인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이 씨는 정당 활동이나 선출직에 나선 적이 없고 특정 단체의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양산대종과 관련한 지역신문 광고 게재라든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비용 일체를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씨는 어떤 실익을 보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얻는 실리적 이익은 없다.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노인으로 힐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비를 털어서 거대한 지방정치세력에 도전장을 내민 그의 행동은 어쩌면 이 시대 특히 우리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민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50년대 미국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흑인에 대한 차별정책이 만연돼 있었다. 학교나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화장실과 버스 좌석까지도 흑백의 차별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1955년 어느 날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운전기사로부터 백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을 듣고도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로사는 경찰에 구금되지만 흑인인권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 일은 당시로써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흑인이 노예처럼 인식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젊은 여성의 용기있는 행동이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스페인의 국민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우직한 농부 산초를 시종으로 거느리고 거친 세상을 향해 나선다. 그들의 처지와 흡사한 비쩍 마른 말을 타고 나선 둘은 가는 곳마다 현실세계와 충돌하여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지만 돈키호테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이렇듯 돈키호테가 주는 이미지는 흡사 우리 속담의 ‘계란으로 바위 치는 듯’ 한 무모함의 전형이지만 그 순수성만큼은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시일 씨의 법정 투쟁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이 일로 해서 양산시가 중요한 시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민의의 수렴과 공적 당위성을 소홀히 하지 않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양산대종 문제는 이미 시의회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종 위치문제에서 시작해 지금은 종각 건립 예산의 확보과정에서 의회를 기만했다는 것이 이유다. 일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권력이 있을 때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의 남용은 법적인 제재 이전에 시민의 저항을 초래한다는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12월 4일 제5회 아시아 도시포럼이 열리는 곳은 양산유물전시관이다. 국ㆍ내외 도시 전문가들이 모여 ‘아시아를 넘어 다양한 나라 경쟁력 있는 도시간의 문화 교류와 협력의 장’이 될 이번 국제회의의 개최 장소가 유물전시관이라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포럼 주관은 양산시와 윤영석 국회의원이다. 여기에 윤영석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시아도시연맹과 중국 전매대학교가 공동주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포럼의 주제는 아시아 도시간 문화 교류와 협력, 도시 마케팅 공유 방안 논의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의 공간이 유물전시관으로 결정된 것은 회의장의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겠지만, 양산이 가진 역사성과 전통문화의 상징성에 비추어 볼 때 또다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양산은 최근 들어 지방공업도시로 면모를 달리하고 있지만, 신라시대 때부터 지방의 중심도시로 영화를 누린 역사성을 간직한 도시다. 더구나 그 시대에 만들어진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불보종찰(佛寶宗刹)로서의 유명세와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직전에 있을 정도로 양산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유물전시관에서 기획전시중인 부부총 유물에 대한 중앙일간지 기사가 한 편 나갔는데 잘못 보도된 부분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 J일간지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된 관련기사에서 제목과 본문에 ‘가야 보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부부총은 일제강점기에 북정동 고분군에서 총독부 주관으로 도굴작업을 통해 출토유물 대부분을 일본으로 반출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반출된 유물은 일본 동경박물관에 수장, 전시되고 있다. 이번에 양산유물전시관이 개관하면서 신용철 관장이 주도해 동경박물관측과 협의를 계속해 오다가 임대 전시라는 형식을 빌어 기획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북정 고분군은 18개의 고분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번에 출토유물이 전시되고 있는 부부총은 한 쌍의 부부 시신과 함께 묻은 유물들이 발견된 곳으로 무덤의 주인은 신라시대 지방 호족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분 자체가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가야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가야 무덤 방식으로 추정되는 어떠한 증거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J일간지에서는 가야식 고분으로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지역 향토사학계와 유물전시관 측에서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유물전시관의 공식적인 항의에 해당 신문사에서는 편집기자의 실수로 돌리고 나섰다지만 지역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확인없이 오기한 부분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한 지역의 정체성이나 주민들의 애향심, 귀속감 등을 재단할 때 보통 위인, 선조를 내세우거나 유적, 유물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양산의 역사성은 신라 때 도읍인 경주(당시는 서라벌)에 버금가는 변방의 큰 도시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1999년 부부총의 2차 발굴작업을 주도했던 당시 동아대학교 박물관장 심봉근 박사는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살펴본 결과 상당한 번성을 이룬 도시였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신라 눌지왕 때 삽량주 간으로 있던 박제상 공은 고구려와 왜(倭)에 각각 인질로 붙잡혀 있던 왕자들을 구한 뒤 자신은 왜왕에 의해 참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박제상 공의 충렬지사는 단지 개인의 충성심의 발로이기 전에 신라 왕실의 부름을 받아 직접 왕명을 수행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유물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부부총, 100년만의 귀환’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한 편을 상기시키는 과거사가 있다. 1965년 제3공화국 당시 일본과의 외교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에 반출된 우리 유물에 대한 반환협정을 포함했는데 아쉽게도 부부총 유물은 일본에 잔류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한일외교협정의 평가와 관계없이 우리 지역 최대의 유적인 부부총 출토물에 대한 반환 요구가 봉쇄된 내용인 만큼 아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번 임대 전시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신용철 관장은 비록 이번 기획전이 영구적인 반환으로 직접 연결되지는 못하더라도 시민들의 관심이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면 장기적인 임대를 거쳐 유물의 본적지인 양산땅에 계속해서 남아있게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 28만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부부총 유물을 관람하고, 선조의 충절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웅상지역과 인접한 울산시 웅촌면 주민들이 용당산업단지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은 지역이기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대단히 유감스럽다. 용당산업단지는 울산시와 경계를 이루는 용당마을에 이미 조성된 웅비공단을 확장하는 수준이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가 집단을 이뤄 조업 중인 곳으로 대부분 울산의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협력업체들로 구성돼 있다. 새로 공장부지를 조성하고자 하는 곳은 수년 전에 산업단지조성계획이 수립된 곳이지만 그동안 시행사가 나타나지 않아 포기할 단계에 이르렀다가 이번에 웅비공단 입주업체가 주관사로 나서면서 27개 업체가 민간자본 방식으로 사업시행에 나섰다. 웅촌면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공장 오ㆍ폐수 처리문제다. 새로 조성될 공단 입주업체에서 나오는 오ㆍ폐수가 웅촌면에 소재하고 있는 회야하수종말처리장으로 유입돼 처리되므로써 악취 발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울산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회야하수종말처리장은 최근 1일 처리용량을 3만2천톤에서 7만2천톤으로 두 배 증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웅촌면 주민들은 이조차도 반발하고 나섰다. 회야강 유역의 오ㆍ폐수 처리문제가 양 도시의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울산시와 양산시는 물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가 얽혀 있다. 낙동강에서 취수해 울산지역 공단에 공급하는 공업용수는 양산 전역을 관로로 통과하고 있다. 도심을 지나기도 하기 때문에 토지 이용에 적잖은 제한을 주고 있다. 이 물은 중간에서 갈라져 일부가 웅상정수장으로 들어간다. 즉 웅상지역 상수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웅상지역 가정과 공장에서 발생하는 하수는 차집관로를 따라 회야하수종말처리장으로 들어가 정화작업을 거친다. 왜냐하면 하수처리장 하류에 대규모 댐이 설치돼 있고 담수된 물은 울산시 일부 지역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회야천은 평산동 천성산기슭에서 발원해 웅상지역을 횡단해 회야댐을 거쳐 동해 바다로 흘러나가는 지방2급 하천이다. 웅촌면 지역 일부를 경유하고 있지만 연장 37km 대부분의 유역이 우리 관할이다. 따라서 회야댐으로 유입되는 오ㆍ폐수는 대부분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웅상지역에서 시행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불가피하게 울산시와의 협의를 거쳐서 추진된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과다한 억제방침으로 인해 우리 지역의 도시개발이 지장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수 처리에 드는 비용도 주민들로부터 징수해 울산시에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처리장의 처리용량 부족으로 인해 사실상 수요 억제가 강요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두 행정기관 사이의 거듭된 협의와 환경부의 지원으로 회야하수종말처리장의 용량 증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웅촌면 주민들이 이러한 사업의 추진을 반대하고 우리지역 공단조성계획을 백지화하라고 나선 것은 님비현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할 따름이다. 울주군의회까지 증설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최근 웅상지역은 인근 대도시의 유동인구를 흡수하는 신흥 위성도시로서의 기능이 상승하고 있다. 편리한 교통망, 쾌적한 주거환경과 문화시설에다 상대적으로 싼 주택가격으로 대도시 시민을 유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대규모 주택단지의 신규허가나 공업단지 조성사업은 환경문제로 다소 주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주거지역과 인접한 공단의 조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앞으로의 도시 발전은 공장의 난립보다 주거환경의 최적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까지 대규모 택지나 공장용지를 조성하는 난개발을 방조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새로운 공장용지의 조성은 현지실정과 연계해 최소한의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용당산업단지는 기존 공장밀집지역의 인근에서 증설 또는 확장하는 개념이기에 반대할 명분은 지극히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지역을 관통하는 하천수를 직접 식수로 사용하는 울산시는 그것을 이유로 우리 시민의 활동을 제약해서는 안되며, 필요할 경우 환경시설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려 양 지역 주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ㆍ폐수 처리로 인한 악취를 걱정하는 웅촌면 주민들의 민원도 그런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내년 6.4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당의 행보가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지난주 도당 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을 가진데 이어 경남정치대학원 3기 개강식을 개최했다. 새누리당 경남도당은 각 지역을 순회하며 당원간담회를 통해 지역 민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내부적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민심 행보에 나서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선거는 임박한데 ‘정당공천제’라는 기본 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아니 정당공천제는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모두 공약으로 제시한 ‘기초지자체 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제도 폐지’를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선 공약 이후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검토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결과물 없이 문을 닫았다. 대다수의 국회의원이 개별적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폐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막상 국회에서 입법에 적극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전국에서 지방선거를 대비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많은 인사들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정당공천제의 폐지 여부는 또다른 이유에서 조속한 결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하에서의 후보자 결정이 항상 선거일에 임박해서 이뤄지는 폐단이 그것이다. 당내의 정치역학관계나 중앙당 사정에 의해 후보자 공천이 늦게 이뤄지다 보니 지역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해 내놓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후보자 입장에서도 당내 공천작업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될 뿐 지역 주민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무소신, 무비전의 선거공학에 의존하는 게임이 되고 만다. 한국정당학회가 이달 초 주최한 ‘2014지방선거와 메니페스토 : 현실 진단과 이행평가’ 학술대회에서 한 발제 교수는, “각 정당의 후보자 공천 시기를 앞당겨 후보 등록과 더불어 선거공약서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정책선거를 위해 정책토론회 참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다른 발표자도 선거 임박한 후보 공천은 정책 개발의 한계를 드러내 부실정책을 양산하고 인물이나 네거티브 선거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공천번복 파문이 지역정가를 강타했다. 당시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시장 후보로 조문관 전 도의원이 결정된 것은 선거를 불과 한 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경선 상대였던 나동연 후보가 제기한 공천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짐으로써 경남도당이 재차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나동연 후보를 공천자로 번복 결정했다. 이때 선거는 불과 20일 남아있었다. 정당의 후보 공천이 늦어질수록 선거에서 심판받아야 할 공약 개발이 소홀할 수 밖에 없다. 공천을 받기 전까지는 정당의 눈치보기에 급급해야 하고 후보로 결정된 후에는 현장의 선거운동에 잠잘 시간도 부족하다. 언제 정책을 개발하고 공약집을 만든다는 것인가. 선거기획사나 참모들이 만들어준 ‘장밋빛 그림책’을 들고 다니면서 반복해 읽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올해 평가에 따르면 시ㆍ도지사의 공약이행점수는 50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시장ㆍ군수에 대한 개별적 평가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가장 큰 수단이다. 주민의 손으로 뽑은 시장이 약속대로 시정을 펼치고, 지방의원들이 나서서 이행상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기초의원들까지 공천이라는 굴레를 씌워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놓은 국회가 아닌가. 정치신인들이 출마할 기회를 봉쇄한 결과로 인식돼도 할말이 없다. 얼마 전 도내 한 일간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남도내 새누리당 국회의원 16명에게 기초지방의원 정당공천제는 대부분 폐지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장의 경우는 의견이 나뉘었다. 또한 19대 국회에서 실현 가능성도 일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추세로 볼 때 기초지자체 단체장의 공천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란다. 정당의 후보자 공천 일정을 앞당겨서 보다 일찍 링에 오를 선수를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모든 후보자가 참신한 정책 개발을 통해 서로 대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침체일로의 원도심 안에서도 중심인 북부동에 60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 도심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과 선전용 전단에 따르면 모델하우스까지 개점했단다. 상공회의소 뒤편, 수십년 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제재소를 중심으로 한 블록이 아파트 건립예정지다. 20세기의 마지막까지 도심으로 각광받았던 중앙동은 군청과 경찰서 보건소 등이 있던 북부동과 교육청이 있던 남부동, 시장과 터미널이 있던 중부동 등 3개 동이 행정과 교육,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인정받아 왔다. 1983년 군청이 지금의 남부동으로 이전할 때만 해도 도심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컸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종합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이 북부동에 조성되면서 도심의 활성화는 지속되는 듯 했다. 하지만 신도시 조성사업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300만평 가까운 들판이 택지로 지정돼 신도시 조성의 삽질이 시작된 이후, 부산도시철도 2호선 연장, 부산대 의대 캠퍼스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이 성공하면서 신도시 건설은 가속도를 냈다. 여기에 편승해 원도심에 있던 각종 공공기관들이 하나둘씩 신도시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보건소, 교육청이 옮겨가자 정부공기업인 공사들도 덩달아 새 청사를 마련해 옮겨갔다. 시민의 발인 버스터미널까지 따라갔다. 2011년 마지막 남은 경찰서마저 물금 범어리로 이전하자 원도심은 그야말로 공동화(空洞化)하기 시작했다. 상주인구가 줄어드니 100년 역사의 양산초등학교도 신입생 확보가 어려워 존폐위기에 놓였다. 저녁 9시가 넘으면 인적이 드물 정도니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커져만 갔다. 한때 양산의 명실상부한 중심이었던 중앙동 원도심이 10년 이상 침체일로를 걸어오는 동안 양산시에서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 했다. ‘신도시 건설’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몰입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신도시 조성사업이 매 순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기에 사업 중단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시정의 큰 축이 집중됐다. 그 결과, 부산대학교병원과 함께 의대 캠퍼스 이전이 결정되고, 도시철도 연장사업이 결실을 맺게 됐다. 신도시 조성사업은 박차를 가하게 됐지만 원도심에 대한 행정적 관심이 멀어져 간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장 먼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구상은 민간에서 나왔다. 양산시법원 인근 중앙로 주변 지주들을 중심으로 재개발사업이 추진됐다. 상당 기간 진통을 겪으며, 다수의 지주 동의를 이끌어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그 와중에 대형 교회와 성당 등 종교시설에서 주변 대지를 사들여 교세를 확장함으로써 민간개발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상인들도 나름 연합체를 구성해 먹거리 특화골목을 조성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터미널까지 이전하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뒤늦게 시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의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원도심 활성화사업’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먼저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전문가와 지역 주민을 망라한 그럴 듯 한 단체였다. 의견 수렴을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2009년부터 10개월에 걸쳐 ‘원도심 활성화 사업계획 용역’이 진행됐다. 비용도 2억5천만원이나 들었다. 용역 결과에 따라 양산시는 원도심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쇼핑문화, 행정업무, 교육, 역사문화, 전통관광중심공간으로 나눠 총사업비 2천246억원을 투입해 모두 23개의 개별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차 사업기간인 올해가 다 가도록 제대로 추진된 사업은 단 한 건도 없다. 양산시가 한 것이라곤 삼일로 간판정비사업과 경찰서가 떠나간 자리에 시청 제2청사를 입주시킨 것 밖에 없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책임회피용 용역을 발주해 예산만 낭비한 것 아니냐는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지원을 받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노포~북정 연장사업을 이끌어낸 것을 큰 업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송 미니신도시의 부진과 경제성 논란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번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북부동지역도 공동주택 사업승인을 받은 것은 6년 전이다. 그동안 허가는 받아놓고도 시공회사를 구하지 못해 시간만 끌다보니 지주의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하고 주변환경정비사업의 보류되는 등 불편만 가중돼 왔다. 이번에 다행히 시공사가 나온 것 같은데 기업의 이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분양이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정력의 사각지대에서 민간 사업이라도 활기가 필요한 시기다.
내년 지방선거를 7개월 앞두고 출마예상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선거와 관련된 룰이 확정되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시장후보군을 먼저 살펴보면, 재선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는 나동연 시장 외에도 ‘새누리당 공천 번복’이라는 만화같은 해프닝을 통해 출마가 좌절됐던 조문관 전 도의원이 절치부심 재기를 노리고 있고, 이채화 시의회 의장과 3선의 김종대, 박말태 두 시의원의 다음 행보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도의원 중에서는 정재환 의원의 거취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운데 홍순경 도의원은 아예 시장 도전 의지를 공식화하며 민심투어를 나서는 등 젊은 패기를 과시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김일권 전 시의회 의장이 친 민주당 행보를 통해 민심을 가늠하고 있고, 그 밖에 박일배 전 시의회 의장과 박인 전 국회의장 비서관, 이강원ㆍ정병문 전 시의원 등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도ㆍ시의회 쪽의 무대로 넘어가면, 보다 많은 정치신인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목표로 출마를 공언하거나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성경호 교육의원은 내년부터 없어지는 교육의원 대신 고향인 상북면 지역에서 도의원 출마를 공식화했다. 정재환 의원의 거취에 따라 변수가 될 도의원 제1선거구에는 박성준 전 양산JCI 회장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나동연 시장의 측근인 최시철 생활체육회장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의회에 4개의 의석이 있는 웅상지역의 경우, 초선인 3명의 현역 의원들은 대부분 재선을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이채화 의장이 말을 갈아타게 되면 변수가 나올 것 같다. 이 지역에는 이윤대 웅상발전협의회 사무국장과 서준기 이통장연합회장, 백운철ㆍ허용복 씨 등이 물밑 활동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도시 주변의 양주동에서 현역인 심경숙 통진당 의원과 민주당 정석자 의원의 여성 대결 성사 여부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중선거구제도가 유지될 경우 이번에 명예퇴직한 이호근 전 동면장과 이기준 중부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이 동면ㆍ양주동 지역구에서 함께 대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모든 선거구에서 자천타천의 많은 인사가 지방정치무대에 뛰어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공천제도의 존폐와 선거구 획정 문제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정당 공천 경쟁에서 탈락하면 입후보 자체가 봉쇄된다. 따라서 공천제도 폐지는 정치의지가 강한 신인정치인의 등장을 촉구할 수 있다. 또 소선거구제도로의 전환은 시의원 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지방선거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 후보를 정당공천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실제로 처음 치른 재ㆍ보궐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하지 않는 등 실행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근 민주당에서는 공식적으로 공천 폐지 당론을 채택한 뒤 국회에서 법령을 정비하자며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에서도 입으로는 그렇게 할 것처럼 동조하고 있지만 막상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관련법 개정에 대해서는 진전의 모습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내년도 지방선거 일정상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많은 후보자들의 행보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시장 후보군만 하더라도 공천제도 폐지 여부에 따라서 출마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장 웅상지역 정서만 놓고 보더라도 공천이 폐지되면 웅상지역에 단일 후보를 내세워 시장을 배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시의원도 마찬가지다. 소선거구제도로 바뀌면 선거판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뤘던 정치쇄신특위는 이미 활동을 종료했다. 새로 논의를 시작할 특위가 구성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공천 폐지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찌 됐든,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민 의지를 관철하는 시험대가 된다. 충분한 능력과 소양을 가진 정치인이 나와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링의 룰’이 결정돼야 한다. 국회가 그들만의 이해타산에 바쁜 나머지 지방선거의 중요한 규칙 설정을 미룬다면 지독한 이기심을 지탄받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가시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