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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돈키호테인가, 로자 파크스인가..
오피니언

돈키호테인가, 로자 파크스인가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12/10 09:24 수정 2013.12.10 10:51






 
 
양산대종 이름 안 된다는
한 시민의 법적 투쟁
거대권력에 맞장 뜨려는
돈키호테식 언행 속에서
민의 수렴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계기 돼야

양산대종 종각 상량식이 거행된 며칠 뒤 시청 프레스센터에서는 다소 특별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시민 자격으로 ‘양산대종 명칭사용 금지 및 사업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원동면 거주 이시일 씨가 법원 심리에 앞서 입장을 밝히는 회견을 한 것이다.

이 씨는 양산대종 건립계획이 일반에 알려진 직후부터 줄기차게 ‘양산대종’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자기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양산시 관계자들에게 항변해 왔으며, 시장 면담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양산대종이라 함은 시민의 정성을 모아 설치해야 하는 것이지 한 개인의 희사(喜捨)로 만든 종에 양산대종이라는 명칭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종 건립 과정에서 시민의견 수렴 없이 자문단의 형식적인 자문을 거쳐 일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더욱 양산대종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씨의 가처분 신청에 따라 양산시는 어쩔 수 없이 담당 공무원을 출석시켜 법원의 심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심리에서 양산시는 수년 전 대종 문제를 토의했으나 시의회 반대 등으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다른 지자체의 경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개인의 자금으로 종을 제작하더라도 완공 후 양산시에 기부할 것이며, 기부자의 이름을 넣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씨의 반박은 다르다. 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작 주체인 시민 의사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름을 새겨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기증자의 이름이 남을 따름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런 쌍방의 주장은 나름 각각 일리가 있다 할 것인바, 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씨의 다소 돌출적인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이 씨는 정당 활동이나 선출직에 나선 적이 없고 특정 단체의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양산대종과 관련한 지역신문 광고 게재라든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비용 일체를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씨는 어떤 실익을 보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얻는 실리적 이익은 없다.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노인으로 힐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비를 털어서 거대한 지방정치세력에 도전장을 내민 그의 행동은 어쩌면 이 시대 특히 우리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민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50년대 미국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흑인에 대한 차별정책이 만연돼 있었다. 학교나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화장실과 버스 좌석까지도 흑백의 차별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1955년 어느 날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운전기사로부터 백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을 듣고도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로사는 경찰에 구금되지만 흑인인권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 일은 당시로써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흑인이 노예처럼 인식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젊은 여성의 용기있는 행동이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스페인의 국민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우직한 농부 산초를 시종으로 거느리고 거친 세상을 향해 나선다. 그들의 처지와 흡사한 비쩍 마른 말을 타고 나선 둘은 가는 곳마다 현실세계와 충돌하여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지만 돈키호테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이렇듯 돈키호테가 주는 이미지는 흡사 우리 속담의 ‘계란으로 바위 치는 듯’ 한 무모함의 전형이지만 그 순수성만큼은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시일 씨의 법정 투쟁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이 일로 해서 양산시가 중요한 시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민의의 수렴과 공적 당위성을 소홀히 하지 않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양산대종 문제는 이미 시의회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종 위치문제에서 시작해 지금은 종각 건립 예산의 확보과정에서 의회를 기만했다는 것이 이유다.

일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권력이 있을 때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의 남용은 법적인 제재 이전에 시민의 저항을 초래한다는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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