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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식의 부족과
취약한 재난대비 매뉴얼
사회 전반 시스템
개선과 재편 필요하다
세월호참사 재발 안된다
언젠가 울산에 있는 지인 병원 개원행사에 참석하러 가던 길이었다. 행사장을 지척에 두고 사거리 신호대 앞에서 발이 묶였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 민방위 훈련으로 거리의 자동차와 행인들이 모두 멈춰 선 것이다. 10분을 대책 없이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실제로 공습이나 대규모 쓰나미가 닥쳤다면 이렇게 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민방위 훈련이란 ‘적의 군사적 침략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의해 실시되는 비군사적 방위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민방위 훈련은 1975년 법으로 제정돼 지금도 매달 한 차례씩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주로 특정한 시설물의 테러나 자연재해 등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요령을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주는 교훈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데 따른 직업윤리 부재와 구조활동 미숙이 가장 아쉽게 다가온다. 국민은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 선장이 속옷 바람으로 맨 먼저 탈출하는 장면이 공개된 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항해사가 조난에 적극 대응하기 전에 본사와 전화해 지령을 받았다는 보도도 경악할 정도였다. 이에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배가 아직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한 해양경찰이 수백명의 승객이 몰려있는 선실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스스로 빠져나온 선원 구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반쯤 기운 배 위로는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사고현장 인근에 다른 선박이 구조에 끼어들 준비가 돼 있었지만 1시간 반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구조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재난사에 부끄러운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후진국 재난구조활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이번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언론이 지나치게 경쟁적인 보도경쟁을 치르면서 선정적 보도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 국민성과 관행적 행정 유착을 문제삼아 지적한 부분은 모두가 되씹어보아야 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이다. 충격적인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각종 교통사고와 가스폭발, 화재사건도 남의 일이다. 돌아보면 내 주변에 그런 사고 희생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미리 예방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선가 유치원생에 대한 안전교육이 의무화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지 않는다. 소방교관이 실제와 유사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채 행동요령을 가르치고, 경찰이 직접 참여해 교통시설 이용과 안전요령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유치원에 들어간 첫 해 반년에 걸쳐 사회적응훈련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엄마가 무단횡단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앞 신호등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관료주의가 팽배한 재난대비 시스템도 이번 사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재난 발생 시 인명구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사전에 훈련이 돼 있지 않아서다. 지휘체계 다원화도 문제다. 전문가가 현장을 책임있게 지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매뉴얼이 확정돼 있어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재난관리체계가 지나치게 관료적인데 이유가 있다.
최근 예비군 훈련에서 실전과 유사한 ‘워 게임(War Game)’을 도입해 흥미를 유발하고 실전대비효과도 올리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과거 예비군 훈련이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실전에 투입됐을 때 과연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따라서 실전과 비슷한 감각을 유지하는 훈련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인류는 아픈 역사를 통해 진화한다고 했던가.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딛고 안정된 사회 기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잘못된 관행과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소를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