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의 부끄러운 돈거래 전모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권력을 농단하고 사욕을 챙긴 권력자의 도덕불감증에 치를 떨면서 한편으로는 권력의 주변에서 그들의 주구가 되어 자신의 명예와 부와 또 다른 권력을 얻을려고 발버둥친 하수인들의 행태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이나 알고 있었는지 여부, 그리고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찰의 조사결과에 따라야 하겠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퇴임 1년이 지나자말자 권력형 비리 혐의로 소환되는 부끄러운 현실이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봉하마을 주민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역정을 내고 나선 것도 전직 대통령과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지역일을 풀어가려던 희망이 무산된데 대한 불편한 심기때문이 아닐까. 헌정사에 처음으로 퇴임 후 향리로 돌아간 한 대통령이 동네 친구들과 다정한 술잔을 기울이며 한담에 취해 여생을 보내는 아름다운 정경을 왜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일까.
노 대통령 재임기간 중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소통령으로 위세를 떨쳐 왔던 '노의 사나이들'인 박연차와 강금원 씨의 행보는 당시에도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노골적으로 노의 주변에서 막강한 자금을 주무르면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관리'해 왔던 두 기업가는 비행기 기내에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려 제재를 당할 때에도 그 위세를 드러내 숨기려 하지 않았고, 사법기관에 소환돼 갈 때에도 입가에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만큼 권력의 독배에 강하게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사회가 결국은 하나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이 관리해 왔던 비호세력들의 그물망이 어느 때도 찢어지지 않고 그 효력을 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법망을 빠져 나가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국민들의 눈과 귀와 손가락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부하 임직원들의 차명을 이용해 달러로 환전하고 여러 단계를 거친 투자 이전으로 정상적인 회계절차를 이행하더라도 결국 검은 돈의 흐름은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노무현 패밀리'는 간과했던 것일까. 아무리 몰랐다 한들 국정의 책임자였던 전 대통령의 항변은 공허하기만 하다.
권력 주변의 이른바 '로얄 패밀리' 계급의 권력을 이용한 부와 명예의 독식현상은 최근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주 발생하는 반사회적 경향이 되고 있다. 또 이러한 현상은 중앙정치무대 뿐 아니라 지방정부에 있어서도 독소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박연차게이트의 수사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한 로비가 정치인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준 것도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10여 년 동안 토호세력의 비호가 가져다 준 부정적 결말인 셈이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예산규모도 이제는 수천억원에 이를 만큼 성장해 왔다. 따라서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예산의 집행이 '쌈짓돈 주무르듯' 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의 이권을 보장하는 토지의 이용계획이나, 보상, 입지지정 등의 프로젝트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게 시민들의 바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자 주변 인사들이 솔선해서 이권의 개입을 멀리하고, 대중의 쓴소리를 잘 전달해서 위정자가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권력의 측근에서 과실을 따먹으려는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에 걸맞는 고귀한 도덕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그 명예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존경받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최준(崔浚·1884~ 1970)은 1947년 300년 내려온 재산을 모두 털어 인재 양성을 위해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과 계림학숙을 세웠다.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인 최준의 손자 최염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를 탐하고 지나치게 명예를 좇으면 결국 패망의 길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소회를 표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내려온 뒤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