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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편집국장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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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282호 입력 2009/05/26 09:53 수정 2009.05.26 09:57

박성진 편집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 일요일 낮 한때 한 시간 가까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하늘도 가신 님의 행보에 회한을 품었던 것일까. 굵은 빗방울은 조문행렬의 움직임에 아무런 흔들림도 주지 못했지만 그들의 가슴을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토요일 아침 온나라의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평범한 자연사가 아니었기에 더욱 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위로와 조문이 이어졌다. 특히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현장이 된 양산부산대병원이 하루종일 TV 화면에 집중조명되면서 뉴스의 초점에서 역사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가 살아왔던 비주류의 인생만큼이나 마지막까지도 철저히 영웅적 삶을 거부하고 '가정을 지키는 가장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청와대에서 물러난 지 1년 3개월, 귀향한 대통령 1호로 이웃과 함께 땅을 디디고 지키며 촌로로서 살겠다는 염원도 박연차게이트 수사의 유탄에 맞아 비통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많은 국민이 애도하고 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서민 대통령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철저하게 주류의 삶에서 비켜 있었던 그는 대통령 재임 중의 공과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일반대중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첫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이하는 평균적인 인생을 걸어오지 않았다. 가난으로 학구열을 발휘하지 못한 채 독학으로 세상을 향해 존재를 알린 사람이었다. 판사와 인권변호사를 거쳐 낙선을 뻔히 예상하면서 출마한 몇 번의 선거에서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무모하지만 한국정치에서 지역정서를 타파하겠다는 명분을 견지했다.
 
그는 정치계파의 전략적 승리가 아닌 국민적 인기에 영합해서 당선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물론 열린우리당이라는 정당의 공천을 받았지만 그의 당선에 절대적 공헌을 한 것은 노란 손수건과 행복돼지저금통, 젊은 층의 열화같은 지지 등이었다. 정당의 지지를 넘어선 개인적 지지가 대중 대통령을 낳았던 것이다. 그의 대통령 재임은 그 태생적 이유 때문에라도 포퓰리즘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진정한 가치는 탈권위적 정치지향에 있다하겠다. 권력이 갖는 경직되고 절대적인 구조를 과감히 탈피하여 누구와도 대화가능한 친근감으로 국민에게 다가갔다. 재임 초기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는 이전의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못한 직접대화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받게 했다. 이런 시도는 대통령으로서 무게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찬반의 논란이 있었지만 소탈하고 격의없는 대화로 인해 많은 국민에게 피를 나눈 가족의 유대감을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그를 오직 '국민만을 무서워 했던 지도자'로 기억한다. 정치적 해법이 다른 정치인들과 많이 달랐기에 아마추어라고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국민의 속마음을 헤아리는데는 프로였던 것이다. 그런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서거하였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불과 몇 줄의 짧은 유서는 오히려 그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회한, 건조하게 써내려가 흡사 종교적인 잠언처럼 원망을 배제하는 유언은 어쩌면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서서 자신의 관련사를 명백하게 밝히고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고자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그로서는 더 이상 만신창이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과 국민 앞에서 인간 노무현의 본질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고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운명이라고 못박은 그 길 앞에서 수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심했을 그에게 비난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비록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평화로운 죽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의를 지키지 못한 길이었다 하더라도, '바보 노무현' 다운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참뜻을 훼손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사랑하며, 더불어 살다간 서민의 대통령이었다. 나아가 가족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간 이 시대의 가장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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