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양산시민신문 |
2003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청문회를 마치고 임명장을 받기 전에 사퇴한 첫 사례를 남긴 천 내정자는 강남지역 고가 아파트 구입자금의 출처와 금전 거래가 있는 기업가와 동반 골프여행 의혹, 부인의 명품 쇼핑 등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굴복하고 말았다.
공직 생활 24년에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올랐고 서열파괴로 검찰조직을 쇄신하라는 특명을 받은 당사자가 스스로 사퇴하고 현직에서마저 물러나게 된 것은 본인으로서도 크나큰 불행이지만 그가 몸담았던 검찰조직 전반에 악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수십억 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사업가와 부부동반으로 해외골프여행을 다녀오고 가끔 명품 쇼핑을 즐기는 상류층 인사의 행태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국회 청문회가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면서 지켜보는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천 후보자의 답변에서 묻어 나오는 후안무치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날 청문회에서 최고의 압권은 한나라당 어느 의원의 '우문현답'이었다. 후보자 아들의 결혼식을 조촐하게 교외에서 했음을 강조하다가 뒤집혀 버린 사건이었다. 박지원 의원이 질문하기 전에 시청자들은 순간적으로 정말 교외에서 가족들만의 오붓한 결혼식을 치뤘나보다 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답변하는 본인도 '교외에서 거행했음'을 강조했는데 그 곳이 초호화호텔의 뒷마당이었다는 박 의원의 지적에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 대목에서 보는이의 머리 속에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말 그대로 '귀족의 의무'이다.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의무'를 말하는 것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의 전통이 의무이자 명예로 자리잡으면서 제정 로마의 몰락이 태동되기까지 수백년간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빌 게이츠나 록펠러 등 대부호들이 엄청난 거금을 사회사업으로 출연하고 있는 서구의 전통은 상당기간 긍정적인 역사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자리잡아 왔다. 강철왕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사람이 가장 바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양반사회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선행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300년 이상 만 석의 부를 유지해 온 경주 최씨 가문이다. 최부잣집의 여섯 가지 가훈 중에는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 것과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부잣집 사람들은 부를 자랑하지 말 것을 교육받았고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만 입게 했다. 그러면서도 흉년이 들면 곳간을 아낌없이 열어 굶주린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최근 고비용의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지도층 인사의 경조사 관행에 비판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십시일반으로 품앗이하던 전통의 경조행사가 가끔 부와 권력의 과시를 위해 낭비되는 사례를 보면서 계층간 위화감을 줄이는 첩경이 바로 지도층의 사회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을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지난 주 우리 지역 유일의 종합대학인 영산대학교 설립자이자 학교법인 이사장이 별세했다. 70년대 초 봉제업을 운영해 번 돈으로 육영사업에 투신해 존경받던 분답게 엄숙한 장례가 치러졌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빈소에 도열하듯 늘어선 조화 행렬이었다. 출상이 끝나면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수백 개의 조화는 시민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지역의 사학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노력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탓에 영결식에 참석해 함께 슬퍼하는 동네사람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와 명예를 가진 지도층이 보여주는 도덕적 솔선수범이야말로 사회에 환원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