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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주민소환 요건 완화해야
오피니언

주민소환 요건 완화해야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295호 입력 2009/09/02 09:49 수정 2009.09.0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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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내 해군기지 건설사업에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동의했다는 이유로 청구된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11%의 저조한 투표율로 개표조차 해 보지 못하고 무산됐다.

형사 처벌에 따른 당선 무효형을 받지 않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주민의 직접투표로 해임할 수 있도록 한 주민소환제도는 직접선거로 뽑은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주민의 의사에 반한 행위를 하였을 때 임기 중에도 제재가 가능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 요건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실제적인 효력에 대한 기대는 시기상조인 듯 하다.

첫째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 동의요건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광역단체장은 주민의 10%, 기초단체장은 15%, 지방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제주도의 경우를 보면 주민소환을 주도한 시민단체에서 7만7천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고 이 가운데 5만1천44명이 효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돼 전체 유권자수의 12%를 겨우 넘음으로써 주민투표가 성사되었다.

두 번째 난관은 주민의 1/3 이상의 투표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나와야 해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종 선거에서의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하향세를 이루고 있고 특히 재ㆍ보선거에서는 20~30%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33% 이상의 투표가 이루어져야 개표가 가능한 현행 규정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소환대상자인 김태환 지사의 대응전략이 '투표장에 가지 말자'고 홍보하는 것이었다니 정치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캠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런데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발언들은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무분별한 주민소환투표를 막기 위해 참여율이 저조하거나 압도적으로 부결될 경우, 소환추진자에게 투표비용의 일부를 분담시키는 등 법적·제도적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청구절차만 명시돼 있지, 청구사유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이 없어 법치주의 위배"라며 개정 의사를 강조하고 "청구사유를 법령위반·직권남용·직무유기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환추진자는 주민이다. 주민의 10~20% 이상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주민소환투표 요구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투표비용의 일부를 분담시킨다는 발상은 소환추진 대상이 가져야 할 자숙과 자성의 미덕에 반하는 것이다. 당선된 정치인의 관련 법규 위반으로 재ㆍ보궐선거가 이루어져도 이중으로 투입되는 선거비용을 당사자에게 물리지 못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주민들에게 비용 분담 운운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런가 하면 현행 주민소환제도의 대상은 지방자치단체에 국한돼 있다. 국회법에서는 국민소환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되지 않는 한 유권자가 직접 심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그런 신분보장을 받고 있는 국회가 지방 정치인의 주민소환투표 청구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3월 청구사유 문제와 관련해 "정책적 실패를 한 공직자도 대상"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의 주민소환법도 소환 사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2007년 5월 11일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된 이후로 경기도 하남시와 용인시, 서울 광진구 등에서 주민소환운동이 전개된 바 있는데 하남시의회 의원 2명이 주민소환투표 결과에 따라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하남시장과 3명의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은 경기도 광역화장장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고, 용인시도 시립화장센터 계획이 발단이 되었다. 서울 광진구는 뇌물비리로 구속된 서울시의회 의장에 대한 자격박탈이 목적이었다.

'주민 의사에 반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직접 제재 수단인 주민소환제도는 지역이기주의와 맞물릴 때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유권자의 힘을 두려워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요건이 더욱 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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