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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아! 오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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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근섭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09/12/01 10:25 수정 2009.12.03 01:17



굴곡 많은 삶 이겨온 오 시장
검찰소환 앞두고 택한 죽음
무욕의 경건함을 떠올리며
이승의 한(恨)을 불사르길


ⓒ 양산시민신문
오근섭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슴에 태극기와 양산시기를 안은 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지독히도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에 누구보다도 한이 많은 그였다. 타고난 사업 능력으로 재산을 크게 일구고 지역 최초로 대학을 설립해 이사장이 되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그를 정치 일선에 뛰어들게 하였고 국회의원과 두 번의 시장선거에서 낙선의 아픔을 맛보게 했다.

시장직에 대한 집념은 결국 2004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소원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2006년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공천심사위원을 대상으로 그림을 전달한 이른바 ‘서화로비 사건’이 불거져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시 김양수 의원과 대립 과정에서 지역에 시민연합이라는 민간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과연 오근섭’이라는 말도 들었다.

이렇듯 인간 오근섭의 인생 역정은 수많은 굴곡으로 점철돼 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호방함과 친화력은 이십대의 나이에 이미 전국양곡상연합회 회장에 오르게 했고 30대 중반이던 5공 당시 대통령선거인단에 출마해 최다득표로 당선되면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1995년 제2대 양산군의회 의원선거에 당선돼 제2대 군의회 의장과 제1대 시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오근섭 시장은 그 집념만큼이나 강한 자존심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장기 환경이 열악했던 만큼 크게 성공한 뒤에도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했고, 주변의 곧은 소리를 잘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공연히 입방아에 오르기를 여러번 했었다. 투박한 말투와 자기 중심적인 언행은 종종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 대로 ‘양산을 위해 새벽부터 설치는’ 그런 시장이 되고자 했다. 기존의 관료적 틀에 안주하던 공무원들과의 마찰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갔고 가끔 외견상 단체장의 수범사례로 칭송받곤 했다.

이런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무엇인가. 불과 몇 달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데 또다시 이런 비보를 접해야 하는 마음이 착잡하다. 특히 검찰의 소환을 몇 시간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더욱 안타깝다. 항간의 구구한 억측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한 그의 마지막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과욕에 대한 회한일까, 아니면 잘못된 비난에 대한 억울함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주변 지인들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승을 보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목도한 것은 무욕의 경건함이 아니었을까.

생전에 만난 그는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창졸간에 일개 야인으로 전락했을 때 다시금 용기를 갖게 해 준 것은 산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 끝에 “계급장이 떨어진 야인 생활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는 말도 했다. 소외된 어린 시절을 겪은 그였기에 한 순간이라도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숱한 역경과 난관을 딛고 자치단체장의 자리에 선 그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마감하게 만들지 못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오 시장은 5년여의 시장 재임중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가로막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달콤한 정보와 칭송어린 조언만 난무해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결과 밖으로 드러나는 사업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에 집중함으로써 불만을 사기도 했다.

그를 시장으로 만드는데 공헌한 사람들이 좀더 몸을 낮추고 시민의 대변자가 되었다면 천부적인 근면함과 추진력으로 무장된 그가 정말로 멋진 시장으로 임기를 다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한 많은 생을 마감한 오 시장의 명복을 기원하며, 고인이 생전에 의지하고 영감을 얻었다는 원불교 선사의 법어를 떠올려본다.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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