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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파란만장의 인생을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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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의 인생을 덮다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15호 입력 2010/01/19 10:44 수정 2010.01.19 10:44



부침 거듭한 63년 인생
인간적 고뇌 헤아려야
그가 두고간 과제는
남은 우리의 몫이 될 터


ⓒ 양산시민신문
고 오근섭 시장의 49재가 애도 속에 끝이 났다. 해방 직후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이겨내고 입지전적인 출세를 이뤄낸 오 시장의 60평생은 한국 근대사의 희비와 함께하는 측면이 많다.

그가 태어난 1947년은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나라가 기쁨에 들떠있던 시절이었지만 막상 민간의 생활상은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식량의 부족과 산업구조의 결여로 궁핍을 면치 못하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1950년 발생한 6.25동란의 영향으로 잿더미로 변한 국토위에서 재건의 몸부림을 치던 불행한 역사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뒤 새마을운동과 경제부흥정책을 적극 시행하여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1960년대 말까지 우리 농촌사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러한 때에 어린 시절을 보낸 오 시장은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채 생업의 현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타고난 근면함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어린 나이에 양곡상조합장에 피선되기도 했고 본능적인 이재의 능력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군 단위에서 전국 최초로 전문대학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이를 자산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지방자치시대를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이념과 한 줄기로 받아들였다. 초대 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뒤 두 번의 시장선거에서 낙선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오뚜기처럼 일어나 2전3기로 제4대 양산시장 자리에 올랐다.

5년 여의 시장 재임기간동안 과단한 추진력 때문에 많은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참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한번은 공식 인터뷰를 마치고 필자와 비공개 대화를 나눌 때다. 당시 말이 많던 시가지 가로수 식재사업과 관련해서 ‘가뜩이나 비좁은 인도에 가로수를 빼곡이 심다보니 보행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은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인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무슨 소리냐고 곧바로 담당 과장을 불러 닦달을 하는 것이었다.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운동장 광장에 설치할 때에도 시의회의 반대와 예산삭감조치에 반발해 도 예산을 끌어와서 시행하고 마는 고집을 보면서 모두들 혀를 내두른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는 ‘한다면 하는’ 시장이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지금 오 시장의 지자체장으로서의 자질과 지휘 스타일, 불도저식 사업추진과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들이 새삼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생전에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언을 바치던 무리들 중에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자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그 시대의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인생무상이요, 싸늘한 인심이 아닐 수 없다.

이제 49재도 마친 마당에 더러는 대놓고 다음 선거의 출사를 고할 것이다. 그동안 고인의 추모기간이라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나설 것이다. 가장 강력한 차기 시장후보가 사라진 마당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민을 대리하고자 출마하는 자들은 이 점은 꼭 알아두는게 좋다. 반면교사(反面敎師)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오 시장의 6년 재임에서 공과 과를 분명히 짚어내 배워야 할 점은 배우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림으로써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삽량문학회장 이종려 시인은 오 시장의 죽음 이후 세간에서 비난의 날은 세우면서 지역을 위해 수고한 업적과 고인에 대한 위령은 거론치 않음을 애석히 여겨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필자에게 보내왔다.

‘빈들에 하늘거리는/당신의 향기를/가슴으로 쓸어담아/붉은 넋 보듬으리니/ /하이얀 향기/하늘로 피어 오르고/그 뿌리 지축이 되어/내 심장을 뚫어라/ /어째서 그렇게/맥박은 멈추었으니/찾는 길손 보내는 임도/무심이로다/ /낙동강은/혼탁으로 넘쳐 흐르고/마음의 강은/마르고 말라 있나니/ /들녘에 핀 향기 가득/내 가슴을 적시었듯/긴 강물에 혼 적시어줄/당신은/하얀 국화입니다’<임이여 전문>

삼가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유족들도 본연의 가정사로 돌아가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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