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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그리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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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생님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32호 입력 2010/05/25 10:30 수정 2010.05.25 10:29



 
ⓒ 양산시민신문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는
엘리트 중심 교육정책
다양한 진로 제공하는
참교육 선생님께 감사를


40년 전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2외국어는 불어와 독일어가 선택과목이었다. 나는 불어를 신청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간호원과 광부들의 독일행이 러시를 이루던 시기라 독일어가 선호되면서 불어는 한 반을 구성하지 못해 폐지되었다. 마뜩잖기도 했지만 독일어 공부에 소홀했던 터라 당연히 성적도 하위권에 맴돌았다. 굵은 테 안경을 쓰시고 폐가 좋지 않아 자주 마른 기침을 뱉으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독일어 선생님은 그러나 나를 퍽 아껴 주셨다. 비록 당신께서 가르치는 과목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글짓기 대회에서 종종 상을 타가지고 와 학교 이름을 빛내준다고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칭찬해 주셨다. 한 번은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에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은 이번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게 제출되어 담당교사 재량으로 20점 만점인데 기본 점수를 모두 5점씩 주기로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으로 도착한 성적표에서 내 독일어 시험 성적을 확인하니 ‘5점’이었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가끔 독일어 선생님이 생각났지만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고 그 분을 여의고 말았다. 하지만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이면 “독일어 못해도 좋으니 네가 잘 하는 글짓기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요즘 내가 아는 선생님 한 분도 제자사랑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 분은 “공부할 애들은 공부를 하게 하고 끼를 살려야 할 애들은 그 끼를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학생을 틀에 가둬 놓고 똑같은 기준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는 아이들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성과를 거두는 그런 학생들이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최근 10년 가까이 양산지역 교육의 화두는 ‘우수인재의 역외유출 방지’로 요약될 수 있다. 교육청이 나서 지역사회 기관단체와 연계한 ‘어깨동무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초ㆍ중학교 때부터 우수한 학력 소지자들에 대한 타지 유학을 억제하기 위해 양산시인재육성장학재단이 설립돼 수십억원의 예산과 후원금이 모아지고 있다. 그 뿐인가. 국회의원과 교육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교육발전을 위한 토론회까지 열리면서 지역의 명문고 육성과 성적 올리기 정책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대다수 평범한 청소년들은 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 성적 상위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진로나 적성은 특별히 배려되지 못한 채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는 방관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갈 수 있는 학교가 모두 인문계열 뿐이다. 10개나 되는 고등학교와 새로 생길 학교마저도 인문계다. 기왕에 있던 실업계 고교 한 곳도 몇 해 전에 인문계로 전환됐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미리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능이나 실기를 배우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그러려면 타지로 나가야 한다. 수재들만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타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려고, 미용이나 조리를 배우려고, 경호나 애니메이션 등 특별한 분야의 이론과 실기를 배워 하루빨리 사회에 진출하고 싶은 아이들은 주변 대도시로 이중살림을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모두를 틀에 박힌 대입준비생으로 만들고, 나아가 취업준비생으로 만들고, 끝내는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현실은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참교육이 무엇인가. 인간의 기본 됨됨이를 몸에 배게 한 뒤 사회적 관계에서 독립되게 홀로 설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하는 것 아닌가. 나중에 그들이 국가나 인류에 공헌할 만큼 큰 일에 종사하거나 비록 두드러진 분야는 아니더라도 나름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전부 수재가 되어 1등만 한다면, 그래서 우두머리가 되고자 한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튼튼한 허리에 누가 자리할 것인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스승이 많다. 교육 제도나 환경이 참교육을 저해하는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도(師道)를 지키고 있는 그분들이 있기에 이나마 세상이 흔들리지 않고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운 스승님께 안부를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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